[日지하철 의인 이수현 26일 10주기]이수현은 일본인의 마음속에 10년간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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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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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을 잇는 다리’가 되겠다던 당신의 마음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아로새겨져 있어요. 일본에 더 많은 친구가 생겼으니 하늘에서 외롭지 않기를 기도할게요.” 이수현 씨가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2001년 1월 26일. 요시오카 후유키(吉岡芙由紀·와세다대 교육학부 3학년) 씨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한국인 유학생이 일본인을 위해 숨졌다는 뉴스를 TV로 지켜보았을 때 받은 충격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고 한다.“한국인들은 일본인을 싫어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목숨까지 잃어가며 일본인을 살렸다니 이해할 수 없었죠.”》
요시오카 씨는 철이 들수록 이 씨의 행동이 얼마나 힘든 결정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한한 고마움으로 다가왔다. ‘뭔가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의 빚을 갖고 있던 그는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고인의 부모에게 감사편지를 보냈다.

이후 이 씨 부모와 편지 왕래가 이어졌고 요시오카 씨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더 깊어졌다.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한국 역사를 공부했다. 2009년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지뢰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에 가입하고 1년에 한 차례 이상 방한해 휴전선 부근 농가를 찾아 농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처럼 10년간 일본에는 한국과 일본의 가교가 되고 싶어 하는 ‘제2, 제3의 이수현’이 많이 생겨났다. 성별과 세대를 초월해 이 씨가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제2, 제3의 이수현’

일본의 한류(韓流) 성지로 일컬어지는 신오쿠보(新大久保). 한국 음식점과 드라마 DVD, 음반 판매점이 즐비해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신오쿠보역의 1층 개찰구를 지나 2층 플랫폼으로 올라가는 중간계단 벽에는 이 씨를 기리는 추모의 글이 새겨진 기념물이 있다. 10년이 지났어도 해마다 1월이면 찾는 사람이 적지 않다.

10주기를 닷새 앞둔 21일 오후 3시경 이곳을 찾은 50대 중년 부인 4명이 추모 글을 읽어보며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들은 “지날 때마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 추모 글을 한 번씩 읽어보고 묵념을 한다”고 했다.

2001년 1월 26일 이수현 씨가 숨진 신오쿠보역 벽에는 이 씨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모의 글이 새겨진 기념물이 있다.
10년이 흘렀지만 해마다 1월이면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도쿄 인근 가나가와 현에서 온 한 여성이 추모 글을 읽고
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2001년 1월 26일 이수현 씨가 숨진 신오쿠보역 벽에는 이 씨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모의 글이 새겨진 기념물이 있다. 10년이 흘렀지만 해마다 1월이면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도쿄 인근 가나가와 현에서 온 한 여성이 추모 글을 읽고 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 식지 않은 추모 열기

지난 10년 동안 일본에서는 이 씨를 기리기 위한 각종 추모 행사와 이벤트가 끊이질 않았다. ‘이수현장학회’는 대표적인 사례다. “수현이 같은 유학생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고인 부모의 뜻에 따라 2002년 1월 설립된 장학회는 지난해까지 모두 16개국 485명(1인당 10만 엔)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장학회 측은 해마다 1월에는 추도식을, 10월에는 장학금 수여식을 해왔지만 올해를 끝으로 추도행사를 장학금 수여식으로만 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매년 2월에는 한국의 청년들을 일본으로 초청해 양국 젊은이들의 우호를 다지기 위한 한국청년초빙사업이, 매년 7월에는 평화등산대회가 실시되고 있다. 2007년 1월 이 씨를 추모하기 위한 한일 합작영화 ‘너를 잊지 않을 거야’ 시사회에는 일왕 부부가 참석해 화제가 됐다.

○ 한국의 추모 사업

이 씨의 고향 부산에서는 ‘의인 이수현 정신 선양회’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2005년부터 매년 부산지역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글짓기 대회를 열고 있다. 사단법인 부산한일문화교류협의회도 지난해 이 씨를 기리는 한국, 일본 대학생 교류 모임을 매년 열기로 결정했다. 고인의 부모는 사고 이듬해인 2002년 한일 정부에서 받은 각종 훈장과 표창장, 감사장, 두 나라 국민들이 보낸 편지, 고인이 생전에 아꼈던 기타와 산악자전거를 고려대박물관에 기증했다. 유품 일부는 고려대 100주년 기념관 내 ‘고려대의 의인들’ 전시장에 진열되고 있다.

고인의 모교인 부산 내성고, 부산 낙민초교, 고려대, 부산어린이대공원에는 추모비가 있다. 내성고는 매년 학교 정문 이수현비(碑) 앞에서 추모식을 열고 있다. 내성고와 고려대는 매년 이수현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

2008년 발족한 이수현 의인 문화재단 설립위원회도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10주기 추모식을 연다. 이 씨의 동생은 오빠를 기리는 홈페이지(www.soohyunlee.com)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성금 10년간 줄이어… 年 50명에 장학금 지급”▼

이수현장학회의 다니노 사쿠타로(谷野作太郞·75·사진) 회장은 “이수현의 희생 스토리는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며 “매년 약 50명의 일본 유학생을 지원하는 장학회에는 10년 동안 성금이 끊이지 않았으며 성금이 이어지는 한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80년대 주한 일본대사관 공사를 지낸 직업외교관 출신으로 장학회를 이끌며 일본 내 이수현추모열기를 잇는 버팀목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 장학회의 아라이 도키요시(新井時贊·61) 부회장도 ‘이수현의 10년’을 떠받치고 있는 사람. 이 씨가 다녔던 어학원 아카몬카이(赤門會) 이사장이기도 한 그는 추도행사와 장학회 운영, 기념사업 등을 도맡아 한다. 재일교포 2세인 그는 “많은 일본인이 부산의 이수현 묘를 참배하고 있다”며 “수학여행 간 일본 학생들이 그의 묘에 묵념을 하고 이수현의 부모님은 묘 근처 일본인 무연고자 위령탑을 찾는다. 이수현은 이처럼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을 결정적으로 바꿨을 뿐만 아니라 한일관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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