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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람속으로

대우학술총서 600권 발간 주도하고 퇴임하는 김용준 이사장

입력 2010-12-30 03:00업데이트 2010-12-30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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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편수로만 학자평가 풍토 안타까워”
노학자는 대한민국 학술의 미래에 대한 염려가 많았다. 김용준 한국학술협의회 이사장은 “학문은 생존을 위한 생활과는 거리를 둘 수 있어야 발전하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는 학문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정신을 더 고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의미 있는 길은 오랫동안 걸을 수 있는 법이다. 시장원리에만 맡긴다면 세상 빛을 보기 힘들었던 학술서를 30년 동안 꾸준히 발행하는 일이 김용준 한국학술협의회 이사장(83)에게는 그런 길이었다. 1980년 고려대에서 해직된 것이 계기가 돼 대우재단의 지원 아래 학술총서 발행 업무를 맡았던 김 이사장은 그동안 600권의 학술총서를 내고 연말에 퇴임한다.

28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대우재단빌딩 18층 집무실에서 만난 김 이사장은 먼저 생산력과 효율성의 잣대로만 학계를 바라보는 정부와 사회의 시각을 안타까워했다.

“학자들이 전문 분야에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믿고 맡겨야 합니다. 천편일률적으로 논문 편수로만 평가를 하니 두세 개를 묶어 걸작을 낼 수 있는데도 논문을 쪼개 양만 늘리는 일이 생기지요.”

학자들은 자신의 학문 분야에서 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객관성을 위한답시고 양적인 평가에 치중한다면 결코 아인슈타인 같은 학자를 양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지난 10여 년 동안 대학과 학문이 권위를 많이 잃었다”며 “정부나 사회가 대학과 학술을 보호하고 키워야 한다는 자세를 보이지도 않고, 학계와 학자들은 전문가로서의 고집과 자부심을 상실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이사장은 1984년 복직 이후 고려대 교수(유기화학)와 한국학술협의회 일을 겸하다 1993년 명예퇴직 이후에는 다시 전업으로 학술지원 업무를 주관했다.

대우학술총서는 여느 학술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발행된다. 학술 분야에서 필요한 주제를 공모 받고 필자는 대우재단 산하 한국학술협의회에서 자문단을 구성해 적합한 필자를 찾아 맡기는 식이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사재 200억 원을 출연해 당시 ‘대우문화복지재단’에서 학술지원 업무를 시작할 때 김 이사장을 포함한 학계 원로와 학자들이 1년여의 조사연구 끝에 기초학술연구지원을 위한 이런 모델을 만들었다.

“이사회에서 주제를 선정한 뒤 필자를 찾기 위해서는 다시 철학이나 생물학 물리학 등 관련 분야 학자들로 구성해 필자를 물색했지요. 주제 제안자와 필자가 같은 경우도 있지만 다른 경우도 상당합니다. 그런 경우의 필자는 해당 분야에서 다른 학자들로부터 어느 정도 인정받은 학자라는 것을 의미하지요.”


김 이사장도 직접 필자의 평판을 조사하러 지방을 찾곤 했다. 그는 “1980년대 전북대에 있는 필자 후보 모르게 그곳까지 찾아가서 주변 교수에게서 후보자의 실력과 평판을 듣고 온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긴 세월 학술총서를 발행하면서 버리지 않은 원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학술 분야의 씨앗을 보존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김우중 전 회장이 기금을 출연하며 유일하게 부탁한 말인 “우리 사회의 불우 부진한 분야를 돕는 데 써 주었으면 합니다”라는 뜻을 학술 분야에 적용한 원칙이었다. ‘인도게르만어지역의 분류’ ‘서양 고문서학 개론’ ‘중국의 다구르어와 어윙키어의 문법·어휘 연구’ 같은 희귀한 분야의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연유다.

대우재단의 지원 아래 그는 지금까지 1800명의 학자를 대상으로 1370건의 연구를 지원했고 그 성과를 담은 학술총서를 600권 발행했다. 인문과학 218종, 사회과학 127종, 자연과학 208종, 다학제 47종 등이다. 한국학술협의회는 2000년부터는 동서양 학술고전 번역사업도 시작해 ‘순수이성비판 1·2’ 등 지금까지 30종을 출간했고 2006년부터는 학문간 공백을 메우고 학계의 동향을 전하는 데 초점을 맞춘 학술지 ‘지식의 지평’을 1년에 두 차례 발행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앞으로도 학술서 발행은 계속될 것이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600권이나 되는 학술서를 꾸준히 발행했다는 것 자체가 한국 학술계에 의미 있는 일”이라며 “바람이 있다면 1980년대 이후 올려주지 못하고 있는 1500만 원의 저술비를 인상할 여건이 마련됐으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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