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의 진화? 멀쩡한 벤처 집어삼키고 수백억 빼돌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27일 13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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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 벤처업체를 인수한 뒤 300억 원대의 회삿돈을 빼돌리고 주가조작을 일삼은 기업사냥꾼과 조직폭력배 일당이 검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겉으로는 번듯한 사업가로 변신했지만 주가조작꾼 등에게 협박이나 폭력을 서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김희준)에 따르면 2007년 3월 폭력조직인 김제읍내파 두목 이모 씨(46)는 기업사냥꾼 김모 씨(44)와 함께 공기청정기 등을 제조하는 코스닥 상장업체 CTC를 인수했다. 1년 후 이들은 2008년 1~3월 회삿돈 77억 원을 빼돌렸고 246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하면서 증자대금 24억 원을 가장(假裝)납입했다.

이 회사는 2008년 4월 노모 씨(46)에게, 2009년 2월 윤모 씨(43)에게 잇달아 넘어갔지만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이들은 각각 69억 원과 160억 원의 회삿돈을 빼돌리는 한편 폭력조직인 광주콜박스파 조직원 염모 씨와 장모 씨를 각각 부사장과 부회장 자리에 앉혔다. 염 씨 등은 자본금 110억 원을 건네받아 주가조작에 나선 전문 주가조작꾼들의 실적이 좋지 않자 자본금을 다시 내놓으라고 협박해 20억 원을 받아냈다. 이들은 또 CTC사 주식을 대량 매도해 주가를 떨어뜨린 주주 A 씨를 골프우산 등으로 수십 차례 때려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이 씨 등 3명의 사주가 차례로 빼돌린 회삿돈은 모두 306억 원. 이들은 직원들의 임금을 체불하면서도 회삿돈을 빼내 사채를 갚거나 유흥비, 해외여행 경비 등에 쓰는 등 호화생활을 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2002~2005년 연 매출액이 200억 원이 넘었던 CTC는 올해 3월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빈껍데기 회사가 돼 결국 상장폐지됐다. 검찰은 이들이 유상증자를 실시하며 가장납입을 반복하거나 사채로 대여금을 정상적으로 갚은 것처럼 분식회계를 해 그동안 상장폐지를 피해왔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의 혐의로 이 씨와 김 씨를 구속 기소하고, 노 씨 등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27일 밝혔다. 또 달아난 염 씨 등 5명을 기소중지하고 분식회계에 필요한 돈을 빌려준 사채업자 2명을 벌금형에 약식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유흥업소 갈취나 분양시장 개입에 매달리던 조직폭력배들이 무자본 인수합병(M&A)과 횡령, 주가조작 등 금융시장에 진출하면서 범죄수법이 더욱 진화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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