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에 어울리는 따뜻한 이야기’]<4>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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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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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스 세라 지음·고인경 옮김

《“태어난 지 2, 3일이 되었을 때 유유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누나인 카를라는 깜짝 놀랐지만 나중에 천천히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면서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날마다 물약을 주었지만 효과가 없었어요. …유이스는 말도 못하고, 걷지도, 달리지도, 글을 쓰지도 못해요. 하지만 다른 아이들처럼 잘생겼고 사랑스럽습니다. 카를라는 동생이 기분 좋도록 달래줍니다. 주물러주고, 놀아주고, 이야기를 해주고, 음악도 들려줍니다. 왜냐하면 유이스는 동생이고 아주 많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시한부 아이와 떠난 세계여행

스페인 문학상인 라몬 룰 상을 수상한 저자의 자전적 에세이. 저자의 둘째 아들 유이스 세라 바를로(애칭 유유)는 알 수 없는 뇌 질환으로 성장을 멈춘 채 살아가야 한다. 눈을 깜빡일 수도, 음식을 씹어 삼킬 수도 없는 유유는 이윽고 얼마 살 수 없다는 선고를 받는다. 여기까지라면 누구나 ‘비극’ ‘절망’과 같은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울며 보내기에도 모자랄 것 같은 시간. 저자 부부와 딸 카를라는 유유와 함께 이탈리아 로마 베네치아 제노바, 미국 하와이, 캐나다, 프랑스 파리, 핀란드 등지를 여행하며 특별한 시간을 보낸다. 이 책은 그 7년간의 기억을 더듬었다.

여행지에서 가족은 다양한 경험을 한다. “축복기도를 해도 좋겠느냐”는 할아버지를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유유의 특수 휠체어를 본 유모차 회사원의 명함을 받기도 한다. 이탈리아 제노바의 해산물 레스토랑에서는 유유의 휠체어가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된다며 악다구니를 쓰는 주인과 마주하기도 한다. 안쓰러운 시선과 축복의 말, 편견에 찬 경멸의 눈초리를 모두 경험한 가족은 하루하루 수많은 감정의 변화를 느낀다.

이들 가족은 바티칸 피에트로 대성당에서 줄을 서지 않고 먼저 들어가 화려한 성당의 내부를 감상하고 프랑스 파리 유로디즈니에서도 길게 선 줄과 상관없이 먼저 놀이기구를 탄다. 누군가가 “그런 VIP카드는 어디서 살 수 있느냐”고 묻자 저자는 웃으며 아들 유유를 가리킨다. 딸 카를라에게도 유유가 ‘특별’하고 ‘중요한’ 사람이라고 일러준다. 저자는 유유의 발작도 ‘기지개 켜다’라고 표현하며 자신과 가족에게 주어진 상황을 행복하게 만든다. 따라서 유유는 짐이나 슬픔이 아니라 축복이었다.

이처럼 일상을 축복으로 감싸 안았지만 불쑥불쑥 올라오는 슬픔은 어쩔 수 없었다. 신이 나거나 아프다는 등의 반응이 없는 유유에게 저자는 바티칸 성당에서 “반응을 보여주면 뭐든 하겠다”고 맹세한다. 아들과의 소통 한 번에 모든 걸 걸겠다는 간절함이 드러난다. 활발하게 뛰어노는 조카와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사람들을 볼 때 불현듯 ‘내 아이는 절대 못할 거야’란 생각에 소름이 끼치고, 자신의 슬픈 얼굴을 보면서도 무심한 표정의 유유를 보며 울컥, 눈물을 쏟기도 했다.

아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저자의 소원은 사진으로 이뤄진다. 사진작가 호르디 리보의 도움을 받아 유유가 달리는 듯한 포즈 24가지를 찍었다. 책장을 주르륵 넘기면 마치 유유가 달음박질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울러 유유의 시각에서 쓴 간결한 글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아들을 보면서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느꼈다”며 “고통스러운 자극에 노출될 때보다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 더 자주 찾아왔다. 이 감정을 표현할 최선의 길은 기억 속에 박혀 있는 구체적 장면들을 끄집어내는 것”이라고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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