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만난 사람] 두산 전상열 전력분석요원 “시즌 내내 벤치 신세…남는 힘 가을에 쏟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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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30일 07시 00분


페넌트레이스에서는 동료들을 빛나게 하는 선수였지만, 가을만 되면 그는 자기 스스로 빛을 발하며 주연이 됐다. 은퇴한 뒤 처음으로 맞는 가을. 전력분석요원인 전상열은 다시 ‘조연’의 자리로 돌아왔다.잠실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페넌트레이스에서는 동료들을 빛나게 하는 선수였지만, 가을만 되면 그는 자기 스스로 빛을 발하며 주연이 됐다. 은퇴한 뒤 처음으로 맞는 가을. 전력분석요원인 전상열은 다시 ‘조연’의 자리로 돌아왔다.잠실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대수비·대주자 등 19년간 백업 인생
포스트시즌만 되면 방망이 확 달라져
PS 통산타율 4위…가을 사나이 명성
프런트로 맞은 가을 “조연 역할 충실”프로야구 29년 역사를 통틀어 포스트시즌에서 50타석 이상 출장을 기준으로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한 타자는 누구일까?

1위는 지난해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서 52타수 22안타로 0.423을 기록한 박정권이다. 2위는 장효조(103타수 37안타, 0.359), 3위 서정환(81타수 29안타, 0.358) 모두 이름값이 있는 스타들이다. 그러나 4위는 조금 다르다.

19년 동안 뛰었지만 대부분의 시간 그의 보직은 대수비와 대주자 ‘백업’이었다. 그것도 꼭 필요한 대타가 아닌 빠른 발과 발군의 수비능력이 강점인 수비전문요원.

하지만 그는 가을만 되면 펄펄 날았다. 시즌에는 벤치에 머문 시간이 더 많았지만 포스트시즌이 시작되면 수비 뿐 아니라 타석에서도 불을 뿜었다.

그 주인공은 현재 두산에서 전력분석요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전상열(38)이다. 포스트시즌 타율 0.357(84타수 30안타). 두산과 롯데의 준플레이오프 첫 경기를 앞둔 29일 잠실구장 두산 사무실에서 그를 찾았다. 전상열은 지난해 현역에서 은퇴한 후 전력분석팀에서 프런트 생활을 시작했고 마침 준플레이오프 상대 롯데를 담당했다. 그의 계절이었던 가을이지만 이제 전상열은 또다른 가을의 시작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전상열은 한사코, 그리고 간곡히 인터뷰를 마다했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는데 선수도 아닌 제가 인터뷰할 게 뭐 있겠습니까?” 거듭 팬들, 큰 경기를 앞둔 후배를 위해 몇 마디를 청하자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오늘 실패해도 내일 또 새로운 기회가 있는 페넌트레이스와 달리 포스트시즌 벼랑끝 승부다. 10년차 베테랑도 무거운 중압감에 어이없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 가을야구다. 그러나 전상열은 거꾸로 평상시 백업이면서 큰 경기에서 유독 강했다.

비결을 묻자 그는 “이상하게 이맘때만 되면 힘이 펄펄 솟는다”고 수줍게 웃었다. 역대 포스트시즌 통산 타율 4위라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묻자 깜짝 놀라며 “전혀 몰랐다. 포스트시즌에서 안타를 곧잘 쳤지만 그렇게 순위에까지 들었나?”라며 미소를 지었다.

전상열은 1992년 삼성에서 데뷔해 지난해 은퇴할 때까지 19년을 뛰며 2할5푼 이상 타율을 딱 5번 기록했다. 풀타임을 뛴 2004년 타율이 0.274로 가장 높은, 타격보다는 수비에서 더 인정받는 선수였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에서는 2005년 한화와의 플레이오프서 3경기 동안 10타수 6안타 4타점을 올리며 최우수 선수(MVP)에 뽑히는 등 전혀 다른 선수처럼 보였다.

2005년 한화와의 플레이오프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 3경기에서 10타수 6안타 4타점을 올리며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당시 전상열은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뒤통수를 맞으면서도 마냥 행복했다.스포츠동아DB
2005년 한화와의 플레이오프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 3경기에서 10타수 6안타 4타점을 올리며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당시 전상열은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뒤통수를 맞으면서도 마냥 행복했다.스포츠동아DB

전상열은 “솔직히 큰 경기에 누가 안 떨리겠냐.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긴장을 즐겼다. 상대 관중들이 부르는 노래에 박자도 맞추고, ‘그래 포스트시즌은 페넌트레이스 보너스 경기잖아’그렇게 자기 암시를 하며 경기 자체를 즐기려 했다”며 “사실 시즌 때 많이 쉬어서 가을에 더 힘이 나지 않았을까? 수비가 더 강조되는 특성상 기회가 좀 더 있었고 운이 좋아 조금 활약했을 뿐이다”며 겸손하게 자신만의 가을야구 비결을 털어놨다.

이번 가을은 그에게 새로운 출발이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가 아닌 프런트로 첫 가을, 상대팀 롯데 담당 전력분석요원으로 많은 준비와 고심 끝에 얼마 전 브리핑을 끝냈다고 했다. “처음에는 컴퓨터에 상황을 입력하기 바빠서 경기를 잘 못볼 정도였어요. 이제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경기의 주인공은 선수들입니다. 전력분석은 참고사항일 뿐입니다. 그래도 온 힘을 다해 승리를 도와야죠.”

인터뷰를 마치고 푸른 그라운드에서 사진 촬영을 제의하자 전상열은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라운드는 선수들이 있을 곳입니다. 이제 전 제 자리에서 가을마다 더 크게 응원해야죠.”

잠실 |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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