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무조건 싫다” 스타 잡는 묻지마 악플

동아일보 입력 2010-08-11 09:50수정 2010-08-1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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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스타 20명 설문
“악플(누리꾼들의 악의적인 댓글)에 시달리기 싫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란 업적을 세운 허정무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월드컵 이후 사임 의사를 밝히며 한 말이다. 허 감독은 최근 한 방송에선 “2000년 대표팀을 이끌던 당시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러니 네 애비가 죽지’란 충격적인 댓글을 본 뒤 지금까지 댓글을 읽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프로 감독 시절 ‘경남 유치원장’이란 별명으로 친근한 이미지였던 조광래 축구대표팀 신임 감독도 최근 악플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다. 조 감독은 “대표팀 감독이 된 후 이유 없는 악플이 늘었다. 주목받는 만큼 악플도 느는 모양”이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 스포츠 스타 노리는 ‘진화하는’ 악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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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들에게 쏠리는 악플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예인의 자살 뒤엔 악플로 인한 상처가 있었다. 하지만 연예인 못지않게 악플의 공포에 떠는 사람들이 또 있다. 바로 스포츠 스타들이다.

격투기 스타인 ‘골리앗’ 최홍만은 2008년 그의 미니홈피에 “누가 내 마음을 알까.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썼다. 당시 부상 후유증 등으로 주춤하면서 엄청난 악플 공세에 시달리자 이렇게 적었다.

농구선수 서장훈(전자랜드)도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젠 좋은 기사도 달갑지 않다. 기사 내용에 상관없이 악플이 쏟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축구 스타 기성용(셀틱)은 올림픽대표 시절인 2007년 대표선수들에게 악플이 쏟아지자 미니홈피에 “답답하면 너희들이 가서 뛰든지”라고 썼다가 큰 곤욕을 치렀다.

과거엔 일부 ‘문제 있는’ 스포츠 스타들에게 악플이 집중됐다면 이제는 그 대상과 시기를 가리지 않는다. 연세대 황상민 교수(심리학과)는 “최근엔 스포츠 스타가 언론에 노출되면 처음엔 선플(좋은 댓글)이 달리다 어느새 악플로 탈바꿈한다. ‘국민 동생’ 소리를 듣던 김연아(피겨스케이팅), 박태환(수영) 등도 악플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선수 40% “악플 때문에 사람 만나기 꺼린적 있다”30%는 “불면증에 시달려”

○ 불면증, 대인기피증, 운동 후회까지…

스포츠 스타들은 악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문화평론가 이문원 씨는 “스포츠 선수들은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 ‘악플도 관심의 대상’이라며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연예인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악플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스포츠 스타 20명을 대상으로 한 본보 설문조사에서도 ‘악플을 의식한다’가 10명, ‘매우 의식한다’가 4명이나 됐다. ‘악플로 인해 불면증에 시달린 적이 있다’는 6명, ‘악플 때문에 사람 만나기를 꺼린 적이 있다’는 8명. 3명은 ‘악플로 인해 운동한 걸 후회한 적이 있다’고 답해 충격을 줬다.

스포츠 스타들에게 유독 악플이 집중되는 이유는 대중이 스포츠를 순수한 아마추어 영역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서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대중은 스포츠 스타들에게서 순수함을 원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기대 불일치 효과가 작용해 악플을 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포츠 스타와 나를 동질화하는 경향도 이유. 단순한 운동선수가 아닌 내가 속한 집단의 대표로 인식하다 보니 기대수준이 높아져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악플을 쏟아낸다는 얘기다. 이문원 씨는 “특히 우리나라는 과거 못살던 시절 스포츠가 국민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주요 매개체로 작용했다. 그러다 보니 스포츠 스타들에게 열사봉공의 정신을 강요하고 또 그들에게 부여하는 기준의 틀도 엄격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넷의 영향력이 커지며 무한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언론매체가 점점 더 선정적인 제목을 뽑고, 부실한 기사를 쏟아내는 점 역시 누리꾼에게 악플의 빌미를 제공하는 중요한 이유로 꼽혔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선수들 악플 대처 10인 10색▼

차두리-박주영 “보면 고통… 아예 안봐”
김연아-이동국 “비난 싫다… 더 열심히”



최근 끝난 남아공 월드컵에서 ‘차미네이터’란 별명을 얻으며 인기몰이를 한 차두리(셀틱). 평소 성격이 털털하고 입담 좋기로 유명한 그이지만 언론 앞에만 서면 입이 무거워진다. 몇 년 전 그가 경험한 악플의 아픈 기억이 남아서다. 그는 “악플의 충격을 겪은 뒤 가급적 인터뷰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인터넷 댓글을 잘 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전했다.

악플이 스포츠 스타들이 겪어야 할 운명이라면 이에 적절히 대처하는 건 숙명이다. 스포츠 스타들은 저마다 악플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원인제거형’. 가슴 아플 일이 없게 아예 인터넷 댓글을 보지 않는 방법이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수호신으로 자리 잡은 임창용(야쿠르트)은 기사는 읽되 댓글은 읽지 않는다. 가끔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지만 이내 마음을 접는다는 게 그의 설명. ‘얼짱 배구 스타’ 김요한(LIG)도 댓글을 건너뛰는 스타일이다.

단순히 댓글을 읽지 않는 수준을 넘어 언론 인터뷰 등을 되도록 피하면서 악플 빌미를 원천봉쇄하는 스타들도 있다. 차두리나 박주영(모나코), 농구 김승현(오리온스) 등이 이런 유형이다.

‘무시형’도 있다. 어떠한 악플이 달려도 한눈으로 읽고 한눈으로 흘리는 방법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블루 드래곤’ 이청용(볼턴)은 간혹 악플을 봐도 씩 한번 웃을 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농구 방성윤(SK)도 마찬가지. “악플도 관심의 표현 아니냐”며 웃어넘기는 대범한 성격의 소유자다.

‘피겨 퀸’ 김연아는 ‘오기형’이다. 김연아는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성적이 안 나오면 광고 찍고 놀다 연습 안 해서 그렇다는 비난이 나온다. 그런 소리가 듣기 싫어 오기가 생겨 더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부활에 성공한 축구 스타 이동국(전북)도 “악플은 고통스럽지만 동기 부여가 되는 자극제 역할도 한다”고 했다.

마지막 유형은 ‘취미생활형’이다. 누리꾼들의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적절한 취미생활 등을 통해 푸는 방법이다. 음악 마니아로 알려진 ‘마린보이’ 박태환(단국대)은 악플로 인한 스트레스를 음악으로 달랜다. 그는 “음악이 없었다면 성적 부진 이후 팬들로부터 시달린 고통과 외로움을 달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등산 낚시 바둑 게임 등도 스포츠 스타들이 악플로 인한 충격을 달래는 취미생활이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동영상= 허정무 감독 사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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