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바람처럼 물처럼, 한잔 술을 마실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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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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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채수철 그림 제공 포털아트
향수-채수철 그림 제공 포털아트
음주 문화는 민족의 고유 정서를 반영합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우리 민족의 음주 전통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지닌 것은 단연 풍류(風流)입니다. 물과 바람은 자연스러운 흐름의 상징이고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음의 표본입니다. 신라의 화랑도도 풍류도를 바탕으로 했고 조선시대의 음악, 시, 그림이 어우러진 양반의 음주 전통도 풍류를 앞세운 것입니다. 이름 하여 음풍농월(吟風弄月),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대상으로 시를 짓고 흥취를 자아내며 즐겁게 논다는 뜻입니다. 지금처럼 각박한 세상에 음풍농월은 무릉도원의 꿈 얘기 같지만 여유가 있고 여건이 된다면 누구나 그렇게 유유자적한 삶의 운치를 누리고 싶어 할 것입니다.

태평성대의 벼슬아치는 신선처럼 끼리끼리 모여 놀았습니다. 살구꽃이 필 때, 복숭아꽃이 필 때, 연꽃이 필 때, 국화꽃이 필 때, 매화가 필 때마다 한 번씩 모여 술을 마시며 시가를 읊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술과 안주, 붓과 벼루가 지참물입니다. 술은 취흥을 부르고 취흥은 풍류를 부릅니다. 가야금과 거문고, 붓과 벼루, 소리와 시문이 있어 풍류는 더욱 융성해집니다. 술친구를 부르는 이규보의 편지는 지레 술맛을 당겨 입안에 군침이 돌게 합니다.

‘요사이 우리 집에서 술을 빚었는데, 자못 향기롭고 텁텁하여 마실 만합니다. 어찌 그대들과 함께 마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지금 살구꽃이 반쯤 피었고 봄기운이 무르녹아 사람들을 취하게 하고 다감하게 합니다. 이처럼 좋은 계절에 한잔 없을 수 있겠습니까?’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선조의 풍류는 그림의 떡입니다. 한잔 술을 마시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여유보다 폭탄주를 돌려 빨리 취하고 빨리 놀고 빨리 헤어지려는 속성에 길들어 음주문화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척박합니다. 술이 넘쳐나고 술집이 넘쳐나도 풍류를 누릴 만한 공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먹고 마시는 포식문화가 있을 뿐 운치를 느끼게 하는 음주문화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진정한 풍류는 술이 아니라 삶의 자세에서 우러나는 것입니다. 바쁜 일상에 여백을 만들고 변화 없는 일상을 창의적으로 운영하면 얼마든지 풍류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한잔 술을 마실지라도 바람처럼 물처럼 마음이 자유롭게 흘러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을 수 있으려면 항상 자신의 중심을 유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외부에 의존하거나 그것에 휩쓸리는 삶은 타인의 술 상대는 될지언정 스스로 풍류의 주체가 되지는 못합니다.

바람처럼 물처럼 자유로운 삶, 그대의 발길은 언제나 자유롭습니다. 관성을 깨고 가지 않은 길을 얼마든지 갈 수 있습니다. 낯선 풍경, 낯선 사람 속에 혼자 앉아 조용히 잔을 기울이며 낯선 인생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적조했던 친구를 만나 마음의 잔을 나눌 수도 있고 혼자 앉아 자신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풍류는 마음의 여유, 마음의 자유, 그리고 나눔의 정서에서 우러나는 것입니다. 마음이 울적한 퇴근길, 마음에 떠오르는 사람을 만나 권커니 잣거니 인생의 애환을 나누어 보세요. 각박한 현실을 살지라도 한잔 술의 풍류에 마음을 실으면 누리지 못할 풍요가 무엇이겠습니까.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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