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사회의 동반자, 이주여성]<下>이웃들 ‘은따’에 가슴앓이… 교류 늘려 한국사회 적응 도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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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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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에서 ‘이웃여성’으로

23일 오전 필리핀 이주여성인 레니카 지반카야 씨(왼쪽)가 출근하기 위해 전남 담양군과 이웃주민들의 도움으로 새로 지은 집을 나서고 있다. 큰딸 수윤 양(가운데)과 둘째 딸 애빈 양이 어머니를 배웅하기 위해 함께 나왔다. 담양=박영철 기자
23일 오전 필리핀 이주여성인 레니카 지반카야 씨(왼쪽)가 출근하기 위해 전남 담양군과 이웃주민들의 도움으로 새로 지은 집을 나서고 있다. 큰딸 수윤 양(가운데)과 둘째 딸 애빈 양이 어머니를 배웅하기 위해 함께 나왔다. 담양=박영철 기자
7년 전 한국의 한 농가에 시집온 캄보디아인 A 씨는 동네 목욕탕조차 마음 놓고 갈 수 없다. 탕에 들어가려 하면 자신의 검은 피부를 본 사람들이 “깨끗이 씻었느냐”, “머리를 감고 들어오라”고 하면서 눈총을 주기 때문이다. 한번은 욕탕 안에 들어가자 탕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서 나온 적도 있다고 했다. A 씨는 “말과 문화가 다른 생소한 나라에 와서 이젠 웬만큼 적응한 건가 싶다가도, 이방인 대하듯 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엄청난 소외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 마을잔치에 나만 초대받지 못해…


결혼이주 여성이 꾸준히 늘면서 지난해 15만 명을 넘어섰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남편과 시부모 등 가족 내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주 여성들에게 이웃과 지역사회의 ‘은근한 따돌림(은따)’은 또 다른 고통으로 다가온다.

주변 사람들의 냉대는 대부분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4년 전 한국으로 시집온 몽골인 B 씨(35)는 19일 초복을 맞아 마을회관에서 열린 잔치에 혼자만 초대받지 못했다.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 들은 말과 반대로 행동하거나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곤 했는데 마을 어른들이 “말을 잘 안 듣고 고집 센 여자”라며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한 중국계 결혼이주 여성은 남편의 아침밥을 차려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게으르고 나쁜 여자’라는 소문이 돌아 곤욕을 치렀다. 이 여성은 “중국에서는 보통 아침식사를 밖에서 해결한다”며 “안 해주려고 그런 것도 아닌데 속이 무척 상했다”고 말했다.

베트남에서 온 부인과 2년 8개월째 살고 있는 김진석 씨(41)는 “아내와 휴대전화 매장에 갔을 때 점원이 한국말을 못한다며 아내를 무시하더라”고 했다. 김 씨 부인 팜피니 씨(23)는 “처음 한국에 오면 주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자녀들이 겪는 차별대우도 결혼이주 여성들이 겪는 아픔 중 하나다. 2008년 경남 거제시에서는 파키스탄 결혼이주 여성의 아들 N 군(11)이 전학 온 지 얼마 안 돼 실종됐다가 6일 만에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N 군은 ‘피부색이 다르다고 놀리는 아이들 때문에 학교 가기가 싫어’ 가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부모는 N 군을 다문화 대안학교인 ‘아시아공동체학교’로 전학시켰다.

○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 정책’ 많아


국무총리실 산하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는 5월 ‘다문화가족지원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이주 여성 지원정책의 문제점으로 △각 부처 정책의 유사·중복 지원 △지방자치단체 내 전담조직 및 인력 부족 △지역과 서비스에 따른 큰 격차를 꼽았다.

결혼이주 여성 지원단체들도 같은 문제를 짚었다. 그들은 부처 간 정책이 겹치고 일회성 이벤트가 많아 예산을 낭비하고 도농 간의 지원 격차도 커진다고 주장한다. 실제 결혼이주 여성 대책이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인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해까지 17개 시군구에서 다문화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171곳으로 확대했지만 본보 조사 결과 2009년 ‘한국남자+외국여자’ 결혼 비중이 가장 높은 시군구 10곳 중 5곳에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없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외국인여성 결혼비율 1위인 전남 구례군(전체 혼인 건수의 32.4%), 4위 전남 강진군(25.6%), 5위 전남 보성군(24.8%), 7위 경북 봉화군(23.2%), 8위 경북 영양군(22.2%)에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없었다. 그 대신 서울(7.2%) 부산(6.6%) 대구(5.9%) 등 대도시에는 지원센터가 몰려 있었다. 또 정부는 올해 배우자 폭행, 가정불화 등 이주 여성 인권침해 피해사례를 광범위하게 모을 예정이라고 했지만 본보가 조사한 결과 최근까지 취합된 관련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 이주여성에 대한 실제적 지원 늘려야

정부는 올 3월 다문화가족정책 실무위원회 운영을 국무총리실에서 여성가족부로 이관했다. 총리실 산하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는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고 각 부처 사업을 지원하는 사령탑 역할을 맡게 됐다. 교육과학기술부, 외교통상부, 법무부, 행정안전부 등 각 부처의 역할도 명확히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어 교육과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맡고 교과부는 다문화가족 자녀 교육지원을 중점으로 한다는 식이다. 다문화가족 등 외국인주민 현황조사는 매년, 다문화가족 조사는 3년에 한 번씩 시행할 계획이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크게 늘린다. 건강가정지원센터와 통폐합해 2012년까지 모든 시군구에 센터를 열 예정이다. 또 도시, 농촌, 도농복합형 등 지역 특성에 맞게 지원사업 추진 모델을 개발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다문화가족지원 정책 전반의 추진 기반을 넓히고 서비스 전달 체계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포석이다.

여성가족부 위탁 전국다문화가족사업지원단 강복정 기획홍보팀장은 “전국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결혼이주 여성들이 스스로 모임을 만들어 지역봉사를 나가거나 다른 결혼이주 여성들을 교육하는 ‘자조 모임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강 팀장은 “정부가 이 같은 모임에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등 결혼이주 여성들이 지역사회와 자발적 교류를 할 수 있도록 실제적 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박진우 기자 pjw@donga.com

이미하 인턴기자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4학년

■ 전남 담양군 상운마을 레니카 씨의 되찾은 희망

“남편잃고 주저앉은 나를 이웃들이 일으켜 세웠죠”

《23일 전남 담양군 대덕면 상운마을. 담양에서도 산간오지로 꼽히는 곳이다. 김용각 이장(70)은 낯선 차량이 마을에 들어오면 차번호를 일일이 적는다고 한다. 김 이장은 “요즘 성폭행범이나 사기꾼 등이 하도 많다고 해서 낯선 사람들이 나타나면 꼭 확인한다”고 말했다. 김 이장이 외지 사람을 경계하는 것은 지척에 살고 있는 필리핀 이주여성 레니카 지반카야 씨(34)와 그녀의 두 딸 수윤(10·초교 4학년), 애빈 양(8·초교 2학년)을 지키려는 이유도 있다. 상운마을 주민 40여 명에게 레니카 씨는 가족과 같은 존재다.》


레니카 씨는 10년 전 한국으로 시집온 결혼이주여성이다. 화목하게 살던 그에게 2007년 10월경 불행이 닥쳐왔다. 소 값 폭락으로 빚이 늘자 남편이 극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은 것. 졸지에 남편을 잃은 레니카 씨는 설상가상으로 살던 집까지 비워야 할 처지가 됐다.

레니카 씨의 딱한 사정을 접한 이웃 주민들은 마치 피붙이를 보살피듯 도왔다. 큰딸 수윤 양이 다니는 학교에서 모금운동을 했는데,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까지 온정을 보탰다고 한다. 광주에서 작은 철물점을 하는 남장희 씨(63)는 1000여만 원을 기부했다. 이 돈으로 118m²(약 36평)의 집터를 사들였다. 어떤 부자(父子)는 레니카 씨 가족의 새집을 짓는 공사를 도왔다. 혈육 같은 이웃들의 도움으로 2008년 7월 11일 레니카 씨 가족은 50m²(약 15평) 크기의 작지만 소중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레니카 씨는 새 보금자리가 완성되던 날 “많은 이웃들의 도움으로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너무 고맙다”며 울먹였다. 당시 레니카 씨의 아픔을 함께하던 이웃사촌들은 여전히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있다.

남 씨 부부는 며칠 전 레니카 씨의 집을 조용히 찾았다. 한 손에 수박을 들고 레니카 씨 집을 방문한 남 씨 부부는 영락없이 딸집을 찾은 부모의 모습이었다. 남 씨는 “새집을 지은 지 2년이 된 데다 레니카 가족이 잘 사는지 살펴보고 싶었다”며 “레니카가 딸들을 잘 키우며 밝은 모습으로 사는 것을 보고 기분이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레니카 씨는 담양군 창평면에 있는 한 한과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일과 두 딸을 꼼꼼히 챙기는 억척 주부가 됐다. 또 “요즘 두 딸의 교육이 가장 걱정”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한국 엄마들의 ‘평범한’ 고민을 읽을 수 있다.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고 싶은 소박한 욕심도 생겼다. 레니카 씨는 “믿고 의지하던 남편을 떠나보내고 딸들을 혼자 키워야 한다는 걱정에 눈앞이 캄캄했는데, 이웃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며 “이국땅에서 꿈과 희망을 갖게 해 주신 이웃 친척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딸들을 훌륭하게 키우며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담양=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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