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미은]여성비하 발언 끊이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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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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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발언이 정가의 핵폭탄이 되고 있다. 여성 아나운서 전체, 여성 국회의원 두 명, 대통령까지 거론해서 전방위적인 불쾌감과 놀라움을 선사했다. 기자들이 파면 팔수록, 그의 위험한 발언은 고구마 줄기처럼 계속 딸려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글까지 나오고, 예전의 언행에 대한 증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인식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낮은 수준이다. 한나라당은 즉각 ‘강용석 일병 버리기’에 들어갔고, 최근 들어 큰 정치 기사가 별로 없던 언론은 ‘강용석 때리기’에 힘을 모으고 있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 후진적

잊을 만하면 이런 사건이 터진다. 정치인의 ‘오럴 해저드(언어 해이)’는 정치인 개인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히 개인적인 침몰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는 점에서 늘 실망감을 안겨준다. 한 명의 실언이라고 하기엔 여성 비하 발언이 권력층으로부터 지나치게 자주 흘러나온다. 이런 사건들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 자체의 후진성을 드러낸다.

왜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것일까. 여성에 대한 비하적인 시선 자체가 우선 잘못됐다. 하지만 그걸 넘어서면 우리 사회에서 아직 공적인 담화와 사적인 담화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선이 분명해야 하는데 어디까지가 ‘공’이고 어디서부터 ‘사’인가에 대한 혼돈이 존재한다. 사석에서 하던 말이 공적인 자리에서 그냥 나온다. 그러다가 인터넷이나 언론에 글이 뜨면서 공론화되면 치명타를 맞는다. 그래서 이런 설화(舌禍)가 끊이지 않는다. 실언이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이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위험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언젠가 위험한 말을 하게 되어 있다. 본심과는 다른 말이 실수로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마음속에 있던 본심이 튀어나온다.

공직자 公私담화 구분도 못해서야

‘위대한 커뮤니케이터’가 되어야 할 공직자들이 ‘위험한 커뮤니케이터’가 되는 경우를 꽤 봐왔다. 공직에 있으면서도 공적인 인식을 갖지 못하면 이런 사고는 터질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는 두 가지 채널로 이루어져 있다. 공식적인 채널과 비공식적인 채널이다. 공식적인 채널보다 비공식적인 채널에서 중요한 이야기와 정보가 많이 오간다. 이런 이중적인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존재하다 보니 공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공적인 자리의 조심성이 없어지면서 위험한 발언이 나온다.

공직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익을 위한 마음가짐이다. 공직자의 도덕성은 보통사람과 달라야 한다. 부적절한 언행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면 공직을 포기해야 한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 졸업,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 합격,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학생 공동대표, 국회의원. 요즘 젊은이들이 부러워할 만한 강용석 의원의 ‘스펙’이다. 스펙으로만 보면 최고 엘리트인데 말과 행동이 그에 따르지 못해 공분을 샀다.

공직자의 발언은 자유로울 수가 없다. 공식적으로 기자회견을 하는 것만 공식 발언이 아니다. 인터넷 시대의 젊은 세대에게는 더 그렇다. 모든 발언은 검증의 대상이다. 미디어도 워낙 다양해지다 보니 예전처럼 그럴듯하게 공식적인 내용만 걸러주는 친절함은 기대하기 어렵다. 예전에는 엘리트가 대중을 컨트롤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대중이 엘리트를 유리 어항 속에 넣어두고 지켜본다. 이제 비밀이란 없다.

강미은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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