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료인이 운영 ‘사무장 병원’ 고용의사 양심선언

동아일보 입력 2010-07-23 03:00수정 2010-07-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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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인줄 알지만 돈때문에…”
“불법인 줄 알지만 ‘사무장 병원’을 선택하면 일반 병원에서 봉직의(페이 닥터)로 근무하는 것보다 월급을 몇 배 더 받을 수 있습니다.”

2004년 성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한 신모 씨(40)는 지난해 6월 법대 출신의 한 병원경영지원회사(MSO) 대표로부터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같이 병원을 내자는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명의로 다른 병원을 개원했던 신 씨는 2명의 성형외과 전문의를 데려와 그들 명의로 P성형외과를 세우고 일하게 됐다. 의사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우고 실제 돈을 투자한 대표가 ‘사무장’을 맡아 수익을 나눠 갖는 ‘사무장 병원’에 취직한 셈이었다. 하지만 신 씨는 MSO 대표가 사사건건 병원 운영에 개입하면서 올해 5월 병원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올해 초 선배가 대표원장으로 있는 한 피부과에 취업한 A 씨는 선배로부터 ‘청담동 지점 원장 직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월급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명의를 빌려줬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 A 씨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대당 1억 원이 넘는 수술기계를 리스로 빌렸는데, 최근 리스 회사가 “왜 2000만 원을 아직도 갚지 않느냐”고 보채기 시작한 때문이다. A 씨는 “월급 의사지만 채무문제가 터지면 내가 갚아야 한다”고 했다.

의료법상 병원과 의원은 의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 명의로 한 곳만 개설할 수 있기 때문에 사무장 병원은 명백히 불법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한 개원의가 되느니 높은 봉급을 받을 수 있는 사무장 병원으로 진로를 택하는 의사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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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P성형외과에서 일하며 현금 3000만∼5000만 원이 담긴 쇼핑백을 월급으로 받았다고 털어놨다. 이에 반해 군소 병원에 취직한 봉직의들은 한 달에 800만 원을 받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사무장 병원은 광고를 해 환자를 끌어모은 뒤 필요 없는 수술을 남발하거나 수술비를 과다 청구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신촌에 성형외과를 개원한 이모 씨(50)는 “사무장 병원의 실제 주인은 경영이 어려워지면 빚을 남기고 잠적하고, 명의를 빌려준 의사가 대신 빚을 떠안게 된다”며 “환자와 의사 모두가 피해자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신 씨는 사무장 병원의 횡포를 고발하는 양심선언을 했다. 한 성형외과 전문의 포털사이트에서 그는 “제가 몸담았던 P성형외과는 실질적 주인이 의사가 아닌 ‘사무장 병원’이었다”며 “당장 금전적으로 장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무장 병원에서 일하면 평생 전과처럼 자신을 괴롭히게 될 뿐”이라고 폭로했다. 현재 신 씨와 P성형외과는 법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에 따르면 성형외과 전문의 취득자는 2008년 59명에서 지난해 65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개원을 하고 의사회에 가입한 전문의는 2008년 31명에서 지난해 21명으로 줄었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개원의가 감소하는 대신 사무장 병원은 늘어나는 추세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개·폐업을 일삼아 문제가 된 의료기관 99곳을 조사한 결과 사무장 병원 12곳을 적발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들 병원은 내원 일수를 늘리거나 본인부담금을 과다하게 받는 방법으로 2억8000만 원을 부당 청구했다. 사무장 병원을 개설한 사무장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또 사무장 병원에 고용된 의사는 부당 청구한 진료비를 환수당하고 자격정지 3개월과 벌금 300만 원의 처벌을 받는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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