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활]박인주와 홍진표

동아일보 입력 2010-07-19 19:50수정 2010-07-19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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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2008년 6월 홍진표 현 시대정신 이사를 대통령시민사회비서관에 내정했다. 그러나 일부 좌파세력이 반대하고 나서자 돌연 인사를 철회했다. 안병직 박효종 윤창현 이재교 이헌 씨 등 중도우파 지식인 12명은 당시 논평을 내고 “정부가 능력 부족이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단지 좌파의 반대로 임명을 철회함으로써 소신 없는 인사정책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광주(光州)가 고향인 홍 씨는 한때 친북(親北) 주사파 운동권의 핵심 멤버였다. 1983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한 그는 좌파 학생운동에 뛰어든 뒤 재학 중 강제 징집돼 군복무를 마쳤고 세 차례 구속됐다.

그는 어제 필자와의 통화에서 1996년 북한의 인권탄압 현실을 알게 되면서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고 밝혔다. 운동권 출신이 줄줄이 ‘벼락 완장’을 차고 호의호식하던 좌파정권 10년 동안 홍 씨는 춥고 배고픈 자유주의 시민운동의 길을 택했다. ‘386 좌파 전사(戰士)’에서 커밍아웃하고 자유주의 우파로 변신한 신지호 홍진표 최홍재 씨 등은 2004년 자유주의연대를 결성했다. 이들은 탄탄한 지적 논리와 강인한 투쟁력, 민주화와 좌익 혁명운동 성격을 함께 지녔던 1980년대 운동권의 실체에 대한 용기 있는 고백으로 눈길을 끌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지적으로 게으르고, 도덕적으로 구악(舊惡) 뺨치는 운동권 출신 신(新)기득권층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홍 씨를 청와대 수석도 아닌 비서관에 임명하려는 데 대해서조차 일부 좌파세력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것은 ‘이들이 지난여름에 한 일’을 그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대통령이 최근 박인주 평생교육진흥원장을 사회통합수석비서관에 임명하자 우파세력 일각에서 반발하고 있다. 박 수석이 한때 6·15공동선언 실천 활동에 관여한 전력(前歷)이 문제가 됐다. 청와대는 각계의 중도성향 원로들이 그를 추천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박 수석의 행보를 좀 더 지켜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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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씁쓸한 뒷맛은 남는다. MB가 2007년 대선 때 정권교체를 지지한 우파 일각에서 반대하는 수석비서관 임명은 강행하면서, 2년 전 대한민국 체제에 적대적인 세력의 반발에 무릎을 꿇고 홍진표 비서관 내정을 철회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더구나 홍 씨는 이 정권의 인적 풀에서 취약한 광주·전남 출신이다. 그의 기용은 인사를 둘러싼 지역 갈등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 지연(地緣)에 관계없이 대한민국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과 충성심이 투철한 인재들을 발탁하는 일은 지역갈등 해소를 통한 통합과 국가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된다.

이념 갈등은 좀 더 복잡한 측면이 있다. 선진국에서도 이념 논쟁이 있지만 정책을 둘러싼 공방일 뿐, 근본가치는 대체로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정파적 이익을 위해 사실조차 왜곡 조작하기 일쑤다. 심지어 최악의 세습독재국가인 북한보다 대한민국을 더 증오하는 시대착오적 세력도 존재한다. 개인의 신념과 객관적 사실이 충돌하면 신념을 포기하고 사실을 존중하는 게 바른 길이다.

MB정권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타협할 수 있는 가치와 타협할 수 없는 가치를 면밀히 구분해 대처해야 할 책무가 있다. 무원칙하고 편의주의적인 미봉책은 자칫 대한민국 공동체의 존속과 번영을 위태롭게 할 수 있고 마키아벨리가 말한 최악의 지도자, 즉 ‘경멸받는 지도자’의 길을 자초할 수도 있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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