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 “어린시절 예술과의 만남… 내 삶을 이끌어주는 원동력”

동아일보 입력 2010-07-20 03:00수정 2010-07-20 03:0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X선 사진을 예술로 승화시킨 정태섭 연세대 의대 교수
하버드대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 성소라 씨

《미국 명문대의 자기소개서엔 특별활동을 기입하는 공간이 따로 있어 음악, 체육, 미술 등 예체능활동을 기록할 수 있다. 전공이 아닐지라도 예체능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한 학생은 입학사정관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예체능활동이 전공분야에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믿음과 더불어 다양한 경험을 갖춘 전인(全人)적 인재를 요구하는 추세에 따른 것이다. 예체능활동은 자녀의 인성, 학업뿐 아니라 인생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면서도 예체능 방면으로도 탁월한 삶을 사는 두 사람을 만났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 활동을 통해 스스로를 재 충천할 뿐만 아니라, 전공분야에 대한 이해와 깊이를 가일층 높였다. 자녀를 ‘예체능형 인재’로 성장시키고 싶다면 이들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연세대 정태섭 교수가 X선으로 촬영한 자화상 ‘와인과 영혼’.
연세대 의대 강남세브란스 병원 영상의학과 정태섭 교수(56)는 ‘X선 사진’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지난해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현재 유엔난민기구에서 활동하는 성소라 씨(25·여)는 사회학과 미술을 공부하며 하버드대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두 성공인은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접했던 예술에 대한 기억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입을 모았다.

정 교수는 어린 시절 자신을 매일 무릎에 앉히고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등의 그림을 보여주던 아버지를 기억했다. 정 교수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예술과 과학의 합일(合一)을 보여준 사람이다”라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 데생, 인생에 대해 설명했다. 아버지 덕분에 정 교수는 자연스럽게 예술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초중생 땐 혼자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보면서 전축이나 망원경을 설계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빈치처럼 다재다능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성 씨는 가족과 함께 국내 곳곳을 여행하면서 음악과 미술에 대한 감성의 기초를 마련했다. 성 씨는 “여행지로 갈 때 아버지가 차안에서 항상 틀어주셨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과 차창 밖으로 그림 같이 펼쳐지는 산과 들, 강의 풍경이 지금도 생생하다”면서 “이후에 어디에서든 같은 곡을 들으면 이때의 행복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고 했다. 그는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소위 국어, 영어, 수학을 가르치는 학원에 다닌 적이 없다. 하지만 집 앞 상가에 있는 피아노, 바이올린, 미술학원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다녔다.

음악과 미술은 두 사람의 청소년기와 청년기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성 씨는 중학교 때 1년 간 바이올린을 전공하려고 미국에서 유학했다. 하루에 10시간 이상 연습을 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고민했다. 음악이 정말 좋았지만 전공보다는 평생 취미로 연주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주요기사
하버드대 래드클리프 오케스트라에서 제 2 바이올린 수석 주자로 연주했던 성소라 씨.
성 씨는 한국에 돌아와 일반계고를 다니면서 미국대학에 지원할 준비를 했다. 미국수학능력시험(SAT) 공부를 하면서도 음악, 미술과 관련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고등학교 때 처음 동양화를 배우면서 서양과 동양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

이 생각을 기반으로 그는 ‘마당’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썼다. 꽃과 나무로 가득한 서양식 정원과 여백의 미,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우리네 마당을 비교한 것. 하버드대에 지원할 때는 이 논문과 동양화 작품, 자신의 바이올린 연주를 담은 CD를 제출했다. 하버드대에 입학한 뒤 성 씨는 하버드 레드클리프 오케스트라 회장으로부터 오디션 초청 편지를 받았다. 성 씨는 “지원할 때 보냈던 CD가 오케스트라에도 보내져 오디션 기회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음악이 대학생활의 또 다른 네트워크를 형성해준 셈이다.

한편 X선 영상을 이용한 작품 활동을 하는 정 교수는 “예술과 관련된 취미는 모두 중고생 때 만들어졌다”면서 “이때는 의학, 예술, 과학과 관련된 분야의 관심을 폭넓게 가질 수 있었던 시기”라고 말했다.

의과대학에서 공부하고 병원에서 근무할 때 그의 예술적 감성이 되살아났다. 1995년 정 교수는 컴퓨터단층촬영(CT) 사진을 정리하다 인체사진으로부터 예술적인 아이디어를 얻었다. 암 덩어리가 하트 모양으로 보이는 뇌 단면, 돼지 코처럼 생긴 척추 단면 등 특이한 인체사진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이 때부터 정 교수는 CT와 X선으로 환자 대신 카라, 튤립, 단풍잎 등을 찍었다. 작품이 탄생했다. 그는 “작품에 대한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다. 내 주특기(영상의학)를 살려 예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즐거웠다”고 했다. 전시회도 열었다.

정 교수는 대학 입시, 수능만을 목표로 달려가는 청소년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시험성적만 강조하는 환경에서는 학생들의 감성이 메마르고 상상력이나 창의력이 길러지지 않는다”면서 “어릴 때 얻은 미술에 대한 지식, 감성, 동경이 지금 내가 하는 일과 결합돼 새로운 예술의 영역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어릴 때부터 길러온 예술적 소양은 성 씨의 하버드대 입학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 대학생활을 한결 풍성하게 만들었다. 성 씨는 하버드대 오케스트라에서 비즈니스 매니저를 맡아 오케스트라 200주년 기념 방한 연주회 기획을 맡았다.

뿐만 아니다. 하버드대에선 시각 환경과 설치미술 등 미술 분야 강의의 인기가 높다. 한번은 단 10명이 들을 수 있는 강의에 70명이 모였다. 실기시험으로 수강생을 선발했다. 시험문제는 ‘도토리 한 알’을 묘사하는 것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그림자와 도토리 표면을 세밀하게 묘사할 때 성 씨는 도토리를 자른 단면을 그리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상상해 그렸다. 결국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성 씨는 “동기 중엔 미국 스키대표선수, 콜롬비아 수영대표, 오케스트라 악장, 케냐에서 작품 전시를 한 아마추어 화가까지 다양한 학생들이 있었다”면서 “꼭 상을 받거나 대단한 활동을 하지 않더라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며 배운 경험이 학업에도 연결될 것이라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