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총살정치와 세습

동아일보 입력 2010-07-17 03:00수정 2010-07-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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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A 씨는 요즘도 1997년 고향 청진에서 지켜본 공개총살 장면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친다. 30대 노동자가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마당에서 처형됐다. 남자는 조사과정에서 가혹행위 때문에 다리가 부러진 듯 질질 끌려 나왔다. 이웃집 개를 훔친 그의 결정적 잘못은 범행을 감추기 위해 옷가지를 태우다가 달려 있던 김일성 배지를 훼손한 것이었다. 처형은 각본대로 진행됐다. 보안원이 남자의 죄상을 열거한 뒤 주민들에게 “이런 자를 용서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몇몇이 “용서할 수 없다”고 맞장구를 쳤고 기다렸다는 듯이 총살이 집행됐다. 남자의 가족은 처형장에 끌려와 맨 앞자리에서 지켜봐야 했다.

▷지옥에서나 있을 법한 이런 반인륜 잔혹행위가 북한에서는 지금도 계속된다. 사흘 전에도 회령에서 20대 형제가 총살됐다. 북한 당국은 “서툰 짓은 하지 말라”며 주민들에게 공포(恐怖)의 각인을 찍기 위해 공개처형을 한다. 최근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내정된 3남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인민보안부와 국가안전보위부가 눈에 불을 켜고 불순분자를 색출하고 있다. 탈북자와 탈북 방조자는 물론 중국 휴대전화 소지자까지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감방이 넘칠 지경이라고 한다. 3대 세습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반인륜 공포정치가 참으로 가증스럽다.

▷북한의 공개총살은 일반 주민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3월에는 김용삼 전 철도상이, 올 3월에는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이 처형됐다고 한다. 김용삼은 굶주린 노동자들이 기관차 부품을 떼어 내 고철로 파는 바람에 100여 대가 폐차된 사건으로, 박남기는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덮어쓰고 죽음을 당했다. 북한에선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는 공포정치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슨 짓이든 해야 한다. 군부도 지난해 대청해전 실패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고 살아남기 위해 천안함 공격을 자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반인륜 행태는 2만 명에 육박하는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인터넷에는 북한의 공개처형 장면을 찍은 비디오도 올라 있다. 외교적 언사로 인권개선을 촉구하는 것은 너무 한가한 대응이다. 더구나 대한민국 안의 인권과 국정에 대해서는 사사건건 트집 잡으면서 김정일 집단의 반인륜 행위에 눈과 귀를 막는 것은 천륜에 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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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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