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뭐가 살림살이고 작품인지…불안하고 허술한 일상을 담다

동아일보 입력 2010-07-13 03:00수정 2010-07-13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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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오픈 스튜디오를 여는 설치미술가 이주요 씨

뒤쪽 작은 선풍기 바람 받아
전기 없이도 도는 선풍기 등

서로 기대고 있는 작품들 속에
작고 여린 존재에 대한 연민이…
설치미술가 이주요 씨는 집 겸 작업실로 쓰는 공간 곳곳에 선풍기, 철망, 쿠킹포일 등 주변사물을 활용해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고미석 기자
《2년 전 그가 매트리스만 달랑 들고 세를 든 서울 이태원시장길 근처 연립주택 2층. 지금은 방과 부엌, 마루에 살림살이와 작품이 제법 친하게 어우러지며 북적댄다. 그래도 현관을 열고 들어선 첫 느낌은 ‘이제 막 이사 왔나’ 싶다. 비닐로 꽁꽁 포장한 물건 등 작품인지 짐인지 헷갈리는 정체불명의 물건이 온통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설치미술가 이주요 씨(39)에게 집은 소중한 작업실이자 의미 있는 전시공간이다. 딱히 전시나 판매를 염두에 두고 작업하지 않는 그는 그때그때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주변의 하찮은 물건을 이용해 즉흥적 시각 언어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공간과 교감이 중요한 작업을 작가의 체취가 담긴 곳에서 만나는 것은 그의 미술 언어와 가장 잘 통하는 길인 셈이다.》

이화여대를 거쳐 미국 영국에서 수학한 뒤 해외에 머물며 활동해온 작가는 2006년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그가 특유의 어눌한 선 드로잉으로 만든 아트 북, 최소한의 재료와 최소한의 개입으로 만들어낸 볼품없는 작품은 애처롭고 허술한 것의 작은 목소리를 담아낸 ‘시각적 시(visual poetry)’로 다가온다. 동시에 ‘미술이란 무엇인가’ ‘작품의 진정한 가치와 생명력은 어디서 생겨나는가’를 성찰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최근 국제미술상인 양현미술상의 첫 한국인 수상자로 선정된 작가가 전시 형식의 오픈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워낙 낯을 가리는 성격인지라 미술계 지인 몇 명만 초청해 작업을 보여주었는데 23∼27일, 10월 중에 일반에게도 공개할 작정이다. 장소와 시간 제약이 있어 소수만 참여 가능하다. 신청은 재단법인 양현(02-3770-6730)에서 e메일(info@yanghyun.org)로 받는다. 규모와 속도에 대한 강박이 압도하는 시대, 작가 스스로 선택한 소박하고 느린 삶의 방식이 스며든 작품에서 절실한 울림과 따스한 위로를 체험할 기회다.

○ 겸손한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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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는 그가 석쇠와 가시 철망으로 제작한 별난 설치작품 겸 방범창이 자리한다.
어릴 때부터 몸이 작고 약했고 감성은 잘 벼린 칼날처럼 예민했다. 조용히 사는 것이 삶의 목표였던 그는 건강과 능력 등 세상이 들이미는 폭력적 잣대에 티 나지 않게 저항하는 방법을 미술에서 찾고자 했다.

낯선 사람들과 직접 부딪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처음에는 책에 마음이 더 쏠렸다. 추운 방과 몸을 덥히는 방법을 소개한 ‘가습과 난방’(2002년), 아프거나 피곤할 때 두 사람의 신체를 이용해 통증을 더는 방법을 그린 ‘TWO’(2005년) 등 체험을 바탕으로 한 드로잉북을 펴낸 이유다. 어설픈 듯해도 따라하면 효과가 있다는 게 작가의 말이고, 그냥 책장만 넘겨도 궁핍한 현실에서 반짝이는 유머 감각이 유쾌하다.

지난 10여 년간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을 떠돌며 겪은 타자의 체험, 근원적 외로움과 불안은 책과 더불어 기존 사물을 활용한 오브제에 녹아든다. 기발한 창의력으로 주변 사물을 소소하게 변형시킨 작업에서 주어진 악조건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화시키고 적응해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 수줍은 초대

시간이 흐르면서 녹아내리는 얼음 덩어리.불안정한 지지대가 위태로운 삶을 엿보게 한다.
마루에 놓은 대형 선풍기는 전원이 꽂혀 있지 않은데 돌아간다. 살펴보니 바로 뒤에 작은 선풍기가 바람을 쏟아낸다. 현관에는 합판으로 연결한 불안한 지지대에 얼음 덩어리가 놓인 알루미늄 쟁반을 올려놓았다. 방 안에는 절친한 동료이자 그가 조수로 활동했던 박이소(1957∼2004)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제작한 ‘박이소 오마주’ 중 의자가 놓여 있다.

스스로의 심리적 기억이나 상태를 오브제로 기록한다고 말하는 작가. 집을 둘러보면 허술하게 조립되고 불안하게 서로에게 기댄 작품이 대부분이다. 변화의 과정에 있는 듯 어설프고 어수선해 보이나 불완전함, 불안정성, 불확실성에 대한 차진 사유를 길어 올린다. “처음엔 미술의 힘을 안 믿었다. 지금은 기록이 불가능한 것을 불러내는 것이 미술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쓸모와 가치에 따라서만 평가받는 세상에서 새로운 것은 탄생할 수 없다고 믿는 작가. 작고 여린 것에 대한 눈물겨운 공감과 연민을 표현한 그의 작업은 예술은 결국 삶이 버거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숨쉬기가 낫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속삭인다. 한 번도 야무지게 세상과 맞서보지 못한 모든 존재에게 응원을 보내며….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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