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토털사커' 스페인에 무너진 '토털사커 원조' 네덜란드

동아일보 입력 2010-07-12 15:50수정 2010-07-2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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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니, '4-3-3'이니 '3-5-2'니 하는 것 다 숫자 놀음 아닌가요?"

축구의 포메이션 얘기가 나오면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공격과 수비수의 수를 몇 명을 두고, 이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의 포메이션 결정은 축구 전술의 핵심이다.

이런 의미에서 1974년 서독월드컵 때 네덜란드축구대표팀이 구사한 '토털사커'는 혁신적인 전술이었다. '토털사커'는 '3-4-3' 포메이션을 기본 축으로 미드필드와 공격진에 많은 선수를 배치하는 전술이지만,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개념 하에 포지션 구분 없이 전 선수들이 많이 뛰면서 수비보다는 공격에 보다 중점을 두는 전술이다.

'토털사커'는 공을 갖지 않은 선수들도 빠르게 이동해 공간을 만들어야 하고, 정확하고 유연한 패스로 경기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공격과 수비는 전원이 함께 해야 하며 자기 진영에서 공을 멀리 차내면 수비수들도 전진해 공격에 참여할 준비를 해야 한다. 공격하다가 공을 빼앗기면 서너 명의 공격수들이 포위하면서 적극적인 태클로 다시 빼앗거나, 상대가 서둘러 패스하게 함으로써 정확도를 떨어뜨려 수비수들이 상대 공격에 대비할 시간을 벌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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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토털사커'는 엄청난 체력, 그리고 공격과 수비력을 겸비한 특급선수들을 요구하기 때문에 좀처럼 구사하기가 힘든 축구전술로 꼽힌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한국축구대표팀은 '3-4-3' 포메이션을 축으로 파워 넘치는 '토털사커'를 구사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이를 위해 레이몬드 베르하이옌 체력 담당 트레이너를 두고 1년 5개월간 '입에서 단내가 나고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의 체력훈련을 시행했다.

12일 열린 2010 남아공월드컵 결승전. 이 한판이야말로 한층 업그레이드된 '토털사커'를 구사하는 스페인이 '토털사커의 원조' 네덜란드를 꺾은 경기라고 평가할 수 있다.

스페인은 '4-4-2'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카를레스 푸욜(바르셀로나), 헤라르드 피케(바르셀로나), 세르히오 라모스(레알 마드리드), 호안 캅테빌라(비야 레알) 등 수비수들까지 적극 공격에 가담하는 '토털사커'를 펼쳤다.

여기에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바르셀로나), 사비(바르셀로나), 사비 알론소(세스크 파브레가스) 등 특급 미드필더들이 뛰어난 패싱력으로 경기의 완급을 조절하며 완벽한 '토털사커'를 선보였다.

반면 '토털사커의 원조'인 네덜란드는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토털사커'를 버리고 '4-2-3-1'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한 '실리축구'를 택했다. 아르연 로번(바이에른 뮌헨)이나 디르크 카윗(리버풀), 한 명 만을 최전방 '원 톱'으로 포진시키고 미드필드진에 2중의 수비벽을 구축해 '선 수비, 후 역습공격'을 펼쳤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스페인의 파상 공세에 볼 점유율에서 44%-56%로 밀리고, 경고를 9개나 받으며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스페인이 이런 '토털사커'를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은 '토털사커의 시조' 격인 네덜란드 출신 요한 크루이프가 감독으로 1988년부터 9년 간 스페인의 명문클럽인 바르셀로나를 지도했기 때문. 1974년 서독월드컵에서 네덜란드대표팀을 이끌며 '토털사커'의 중심축 역할을 했던 '축구천재' 크루이프의 전술이 바르셀로나 팀에 녹아들었고, 바르셀로나 출신들이 주축을 이룬 스페인축구대표팀도 자연스럽게 '토털사커'의 진수를 펼칠 수 있었던 것.

한국선수 중에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토털사커'를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 적임자로 꼽힌다. 2002 월드컵에서 박지성이 '히딩크의 황태자'로 떠오른 것도 히딩크 감독이 구사하는 '토털사커'를 잘 수행해냈기 때문이다.

허정무 감독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박지성 같은 선수 서 너 명만 더 있어도, 세계 정상의 문을 두드려볼만하다."

90분을 쉴 새 없이 뛸 수 있는 체력, 상대 공격의 맥을 끊는 수비력, 드리블과 패싱력, 그리고 골 결정력을 고루 갖춘 '멀티 플레이어'. 앞으로 한국축구에 이런 '제2의 박지성'이 여러 명 탄생해야만 하는 이유다.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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