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 “일장춘몽… 날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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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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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대 ‘의학전문대학원 폐지-의대로 U턴’, 벌집 쑤신 듯

“3년을 준비해왔는데… 반수까지 하는데…
바늘구멍 의대… 진로 어떻게 바꿔야 하나”
교사들도 “진학상담때 해줄 말 없다” 한숨만

그래픽 임은혜 happymune@donga.com
《고3 이모 양(18·서울 서초구)은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의·치의학 교육 제도 개선 계획’을 듣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일단 서울대 화학과에 진학한 뒤 같은 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에 도전해 의사가 되려는 계획이었지만 이젠 서울대 의전원에 지원할 기회조차 사라졌기 때문이다.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의·치의학 교육학제를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교과부 발표와 동시에 그간 의·치의대와 의전원을 병행 운영하던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주요 대학이 의전원을 폐지하고 의대체제로 돌아가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의대체제를 결정해도 의전원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지금으로부터 4년 후인 2014년이지만 내년 초 대학에 입학할 이 양의 졸업 시기는 일러야 2015년임을 감안하면 서울대 의전원 지원은 사실상 물 건너간 셈이다.》
의전원 대신 의대 입학으로 목표를 높이는 것도 만만찮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30일 정도 남은 상황에서 의대 합격 수준으로 점수를 올릴 자신도 없을뿐더러 쉽게 출제됐다는 6월 평가원모의고사에는 오히려 점수가 소폭 떨어졌기 때문이다. 고1 때부터 목표 학교와 학과를 뚜렷이 정해놓고 일로매진해 왔기에 수능 성적에 맞춰 지방 의대에 진학하겠다는 결정도 쉽지가 않다.

이 양은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진학담당 선생님을 찾아가 상담을 받아봤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해 답답하다”면서 “지금껏 의전원을 목표로 공부하던 친구들 중 몇몇은 아예 의사란 꿈을 포기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주요 대학 의전원을 통해 의사가 되길 꿈꾸던 상위권 고3과 재수생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우선, 목표를 상향조정하는 것부터가 여의치 않다. 의예과 지원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주요 대학의 의예과에 가기 위해선 수능 성적 누적백분율이 상위 0.1∼0.2%(1000명 중 1, 2등)에 들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리 외국어는 반드시 만점을 받고 언어와 탐구영역에서 3문제 이상 틀리지 않아야만 노려볼 수 있단 얘기다. 지방에 있는 의대도 합격 기준점수가 높은 건 마찬가지다.

아예 의사의 꿈을 접고 새로운 진로를 찾는 학생도 적지 않다. 고3 정모 양(18·서울 노원구). 불과 한 달 전까지 ‘의사가 아닌 내 인생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던 정 양이지만 지금은 관심을 전혀 두지 않았던 기계나 전기전자 관련학과의 수시모집에 지원해볼 생각이다. 정 양은 “지금 성적으로 의예과 합격은 꿈도 못 꾸거든요. 의예과는 합격 기준점수도 높은데다가 매년 경쟁도 치열해 재수해도 꼭 붙는다는 보장이 없어요. 3년 내내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공부해 왔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재수생도 뒤숭숭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생명이나 화학 관련학과 입학 후 의전원행을 목표로 하던 학생 중 일부는 의대 진학을 새로운 목표로 정하고 벌써 삼수, 사수까지 바라보는 학생도 등장하고 있다.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 반수를 결정한 수험생도 고민이다. 김모 씨(19·여·경기 안양시)는 올해 서울의 일류대학 생물학과에 합격했다. 김 씨는 ‘의과대학 수료과정이 의전원 과정보다 2년 빠르다’는 이유로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반수를 준비했다. 김 씨가 다니는 대학의 의예과에 합격하면 더 빨리 의사가 될 수 있고 혹시 불합격하더라도 의전원에 가면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러던 중 김 씨가 다니는 대학이 의전원을 폐지하고 의대체제로 전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만약 1학기를 휴학하지 않았다면 2014년 2월 졸업이 가능해 김 씨는 의전원에 딱 한 번 도전할 수 있었지만, 이젠 그 기회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김 씨는 “의전원 존폐 여부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무턱대고 반수를 결정한 것이 후회가 된다”면서 “의전원을 운영하는 다른 대학에 갈 생각은 없으므로 이젠 오로지 이 대학 의예과에 합격하는 방법밖엔 없다. 큰 압박감을 느껴 수능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의전원을 통해 의사가 되기로 계획했던 고3 아들을 둔 학부모 A 씨(48·여·서울 강남구)는 얼마 전 아들 모르게 한 입시전문업체를 찾았다. 아들이 그동안 받았던 학교 내신 성적표와 모의고사 성적표 20여 장을 모두 챙겨갔다. A 씨는 진학상담 전문가에게 아들의 성적을 보여주며 ‘서울이나 수도권 의과대학에 갈 수 있는지’ ‘모의고사 점수가 부족하다면 수시모집으로 의대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지방 의대의 경쟁률이나 합격기준점수는 어느 정도인지’를 물었다.

A 씨는 “아이와 ‘지방에 있는 의전원에 갈 생각이 있는지’ ‘혹시 다른 진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를 두고 말을 나누고 싶지만 혹시나 공부 의욕을 잃어버릴까봐 쉽게 얘기를 못 꺼내고 있다”면서 “왜 하필 내 아들이 입시를 치를 때 이런 (의·치의학 교육제도개선 계획) 발표가 나는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고3 담임교사 및 진학지도 담당교사들은 그 어느 때 입시보다 더 큰 부담을 안게 됐다. 학생들이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하지만 마땅한 입시전략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상담을 필요로 하는 학생 수도 적지 않다. 서울의 한 고3 담임교사는 “자연계의 경우 한 반의 4분의 1은 의전원을 염두에 두고 공부를 해왔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진학지도부장 교사는 “막상 상담을 온다고 해도 어떤 얘기를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 곧 수능을 볼 아이들에게 ‘재수해 의대에 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의대와 의전원, 대학들은 어떤 선택을?

교과부 발표에 따라, 대학들은 의대와 의전원 중 하나의 체제를 선택해야 한다. 현재 의대와 의전원을 모두 운영하는 병행 대학, 기존 의대체제를 유지해온 미전환 대학, 의대를 폐지하고 이미 의전원으로 전환한 완전전환 대학(표 참조)을 막론하고 모두 의대, 의전원 중 한 곳을 택해야 하는 것.

현재 병행 대학 12개 가운데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중앙대 동아대 영남대 등 6개 대학은 의대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성균관대와 한양대, 동국대는 아직 공식발표하지 않고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의대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주대 충북대 전남대는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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