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이야기’ 20선]<13>인간의 달력, 신의 축제

동아일보 입력 2010-07-08 03:00수정 2010-12-0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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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가 벤치마킹한 ‘동지버선’
《“조상님들은 수천 년 생활을 이어 오면서 전통 신앙을 잉태시켜 왔다. 피와 살 속에 배어 있는 새로운 해를 맞을 때의 설렘과 기대 심리는 십이지 신앙의 뿌리를 키워왔다. 농사와 관련된 24절기와 단오, 복날, 칠석의 잡절 잔치는 농업 생산력과 관련된 역사적 경험 과학이고 통계의 지혜였다.”》

◇인간의 달력, 신의 축제/이종철 지음/민속원

전북 익산시가 고향인 저자는 어린 시절 사금광산을 운영하는 할아버지가 명절 때면 시골 장에서 햇과일과 새끼돼지를 사와 이웃에게 동네잔치를 베푸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할머니는 초파일에 떡과 과일, 쌀을 가지고 전북 전주시 안행사에 가서 제를 올렸다. 초여름에는 모시개떡, 밀전병, 백설기를 만들고 성주신(집을 다스리는 신)에게 고사한 뒤 이웃 아낙들을 대접했다. 저자는 세시풍속과 잔치가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저자는 국립민속박물관장과 한국전통문화학교장을 지낸 무형문화재 전문가다. 그는 농촌문화가 사라지면서 이런 전통들도 함께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며 기록으로 남길 필요성을 느꼈다. 책에는 저자가 목격한 세시명절 속의 한국인의 일상이 꼼꼼히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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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중 가장 큰 명절인 설은 전날부터 흥겹다. 섣달그믐날 밤 집안의 어머니들은 복을 일구어내는 복조리를 부엌 앞이나 문지방에 걸어뒀다. 할머니들은 머리를 빗을 때 빠진 머리카락을 빗첩에 모아두었다가 문 밖에서 태워 재액을 물리쳤다. 설날에는 마을의 액을 쫓고 행복과 장수를 불러오는 매구굿을 쳤다. 이때는 부잣집, 가난한 집 모두가 대문을 활짝 열고 무사태평을 축원했다.

지금은 거의 잊혀졌지만 삼짇날(음력 3월 3일)도 과거에는 큰 명절이었다. 이날 처녀들은 강남에서 돌아오는 제비를 먼저 보면 그해 운이 좋다고 해 제비를 향해 긴 옷고름으로 고(고리)를 걸어 ‘제비마중’을 했다. 삼짇날은 부엌살림의 필수인 장을 담그는 날이기도 했다. 고추와 숯을 띄워 메주 간장의 독을 제거하고 부정을 막기 위해 새끼 금줄을 쳤다. 봄을 맞이하며 자유로운 분위기를 즐기던 삼짇날은 고려시대에 가장 번성했다가 유교의 엄숙주의가 기승한 조선시대부터 잊혀진 명절이 됐다.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월 칠석(음력 7월 7일)의 풍습도 다채로웠다. 이날은 칠석 차례를 지냈는데 올벼를 사당에 천신하고 샘을 깨끗이 치워 떡을 놓고 샘고사를 지냈다. 부인들은 밤에 칠석단, 서낭당에 개떡과 밀전병, 햇과일을 놓고 가족의 무병장수를 빌었다. 한강 이북에서는 칠석맞이라고 해 쌀이나 돈을 가지고 무당집을 찾아 촛불을 켜고 축원을 올렸다.

동짓날은 현재 팥죽을 쑤어먹는 풍습만 남았지만 예전에는 ‘작은 설’이라고 불렀다. 이날은 달 보기 점을 했는데 달이 완전히 지고 동이 터 오면 풍년이 들고, 달이 지지 않고 날이 새면 시절이 나쁘다고 점쳤다. 동지부터는 해가 토끼 꼬리만큼 길어진다며 노인에게 원기가 돌아오라고 목이 긴 버선을 바쳤는데 이를 ‘동지버선’이라고 했다. 저자는 “유럽의 크리스마스축제가 당시 동양의 동지 축제를 본뜬 것”이라며 “크리스마스는 갈수록 번성하는데 동지는 소멸해 가는 세태가 안타깝다”고 말한다.

저자는 “가난했던 시절 역경을 이겨냈던 것은 유머와 여유였다. 잊혀진 명절 풍습을 되살려 세상의 따뜻함과 마음의 풍요를 복원하자”고 제안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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