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서 감성 꽃피듯 광고 모티브도 인문학이 딱”

동아일보 입력 2010-07-05 03:00수정 2010-07-0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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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학중앙연구원서 인문학 강조한 광고인 박웅현 씨

아이디어 짜낼 땐 몰랐지만
평소 접하던 책-그림서 영감

인문학은 그 자체가 즐거움
학자들 바깥과 많이 소통해야
《“여기 오신 선생님들은 청류(淸流)고, 이렇게 맨발에 슬리퍼 신고 다니는 저는 탁류(濁流) 중의 탁류가 아닐까 하는데요. 어떻게 저 바깥의 저잣거리가 돌아가고 있는지를 오늘 한번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일 오후 경기 성남시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의 한 강의실. 굵은 장맛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한중연의 교수 연구원 등 50여 명이 이날 연구전문직포럼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정장 차림이었지만 강단에 선 강연자는 티셔츠와 찢어진 청바지, 삭발한 머리, 뿔테 안경으로 뚜렷한 대조를 보였다. 광고기획사 TBWA코리아의 박웅현 전문임원(사진)이었다. 그는 ‘사람을 향합니다’ ‘생각이 에너지다’ ‘청바지와 넥타이는 평등하다’ 등 인기 광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칸 국제광고제의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박 임원이 준비해 온 파워포인트 자료를 화면에 띄우자 자두가 그려진 빨간색 바탕에 노란색 물음표가 떴다. “과연 아이디어는 어디에 살까요?”라는 질문을 던진 그는 “아이디어를 낼 때는 잘 모르지만 나중에 복기(復棋)해 보면 그때야 책, 그림, 음악 그리고 일상 속에 아이디어가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고 말했다.

“비발디는 저한테 씹다 버린 껌이었어요. 초등학교에서 배우고 사방에서 벨소리로 나오는 익숙하고 지겨운 음악이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비발디의 음악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지더군요.”

이 체험을 통해 그는 한 피로해소제 광고에 비발디의 ‘사계’를 배경음악으로 삽입하고 ‘××× 씨의 피로회복제는 상상력입니다’라는 카피를 내놨다. 2004년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에서 본 앙리 루소의 ‘꿈’을 통해 얻은 영감은 2008년 이동통신 광고의 밑바탕이 됐다. 김화영 산문집 ‘바람을 담는 집’에서 읽은 폴 세잔의 말 ‘나는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는 한 정유회사 광고의 ‘생각이 에너지다’라는 카피로 바뀌었다.

박 임원이 이날 강연을 하게 된 것은 TBWA코리아와 한중연의 인연 덕분이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등의 책을 낸 박 임원에게 5월 말 한중연이 TBWA코리아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국학 대중화 프로그램 ‘미루(美樓)’를 열자고 제안했고, 이날 강의는 그 답례로 마련됐다. 2009년 시작한 ‘미루’ 프로그램은 한중연 내에서만 진행돼 왔으나 TBWA코리아에서 처음으로 외부에서 열렸다. 앞으로도 외부 강의의 폭을 넓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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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임원은 “우리 회사에서 열린 미루 프로그램에서 한형조 교수님이 퇴계가 ‘일상(日常)이 곧 성사(聖事)다’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도’를 봐도 그렇다. 그냥 말 타고 가는 평범한 일상인데 그걸 아름다운 그림으로 표현하지 않았나? 아무것도 아닌 것에 잘 감동받는 분들이었다. 바로 그게 창의성”이라고 말했다.

박웅현 TBWA코리아 전문임원이 2004년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에서 본 앙리 루소의 ‘꿈’(위)은 4년 뒤 한 통신사 광고로 이어졌다. 박 임원은 “처음 봤을 때는 광고에 쓰겠다는 생각을 못했지만 뒷날 떠올랐다. 이런 인문학에 대한 일상적 경험이 아이디어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그는 광고의 핵심을 ‘일상’이라고 말했다. 일상 속에서 누구나 공감할 만한 순간을 광고로 만들어야 마음을 끌 수 있으며 일상에서 특별한 것을 발견해낼 줄 아는 감성은 인문학을 통해 길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문학은 수원지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여있는 인문학이 아니면 아이디어를 어디서 찾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TBWA코리아에서 고미술사를 강의했고 이날 박 임원의 강연에도 청중으로 참석한 윤진영 한중연 국학자료연구실 연구원은 “TBWA코리아에 가서 강의를 할 때 직원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옛 그림을 한 장 보여줄 때마다 ‘우와’ 소리가 나며 반응이 좋았다”며 “원래 TV를 거의 안 보는데 그날 이후 광고만 따로 챙겨본다. 30초라는 짧은 시간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보며 우리는 연구를 하며 그런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박 임원은 인문학자와 사회의 소통을 강조하는 말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현대사회는 결핍이 결핍돼 있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을 제대로 느낄 수 없죠. 하지만 인문학을 접하고 나면 달라집니다. 인문학은 그 자체가 즐거움이고, 사람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여기 인문학 하시는 분들이 바깥과 소통을 많이 하시길 바라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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