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자기 자식이라도 ‘피켓시위’ 보고만 있겠나

동아일보 입력 2010-07-03 03:00수정 2010-07-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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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취임식에서 중학교 3년 여학생이 축사를 했다. 여학생은 “일제고사는 1점 차로 수천 명의 학생을 줄 세우는 시험이다. 이런 시험으로 어떻게 학생들의 수준을 알 수 있다는 말인가”라며 일제고사를 없애 달라고 요구했다. 청소년 인권 보장을 주장하는 청소년단체 소속 청소년들은 ‘인권조례 ○’ ‘무상교육 ○’ ‘일제고사 ×’ ‘교원평가 ×’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참석했다. 취임식장이 온통 ‘전교조 구호’로 채워지다시피 했다.

현 정부와 교육관을 달리하는 교육감의 등장을 자축하는 자리라고 해도 너무 심했다. ‘일제고사’를 비판한 여중생은 전교조 교사의 추천으로 축사를 하게 됐다고 한다. 청소년단체 회원들은 비록 자발적으로 참석했다지만 주최 측에서 방조하지 않았는지 의심이 든다. 청소년들이 자신들과 무관한 교원평가에 대해서까지 ‘피켓시위’를 통해 의견을 나타냈다는 것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여중생의 축사 내용은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일제고사’는 전교조가 자신들이 반대하는 전국 단위 시험인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와 교과학습 진단 평가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해 만들어낸 말로 실제 교육정책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용어다. 또 이들 평가는 ‘우수’ ‘보통’ ‘기초’ ‘기초미달’이나 각 과목의 부문별 성취도만 표시할 뿐 점수를 공개하지도, 줄 세우기를 하지도 않는다. 전교조의 왜곡 선전을 그대로 따라한 것인지, 아니면 전교조 교사가 시켜서 한 말인지 궁금하다. 여중생의 축사에 객석에서 “옳소”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고, 곽 교육감도 박수를 쳤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학생들에겐 인성 교육도 필요하지만 대학에 진학하고 치열한 경쟁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학습이 더 중요하다. 외국어고에 비판적인 곽 교육감이 자기 아들을 외고에 진학시킨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방과 후 수업에 극력 반대하던 어느 전교조 교사는 자기 자식이 방과 후 수업을 받는 것에 대해선 몹시 흐뭇해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자기 자식이 아닌 남의 자식을 대상으로 어설픈 이념교육을 실험하려는 것은 역겨운 이중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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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현장에서 학생 목소리를 경청하고 참고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특정 이념의 실현을 위한 도구로 학생을 이용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곽 교육감은 취임식장에 나온 여중생과 청소년들이 자기 자식이었더라도 보고만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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