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컴퓨터 혁명]<上>獨슈투트가르트大를 가다

동아닷컴 입력 2010-07-02 03:00수정 2010-07-02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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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셰 질주’ 3D로 95% 재현

컴퓨터 센터 가상현실 세계 최고수준
100번 이상 했던 시험운전, 5번으로 끝

달리는 자동차 주변 ‘공기 흐름’ 계산 등
포르셰 박스터-아우디 A8 등 탄생 주역
《슈퍼컴퓨터가 필수품인 세상이 왔다. 과학기술 연구뿐 아니라 스포츠 차량 등 산업에도 슈퍼컴퓨터가 사용된다. 슈퍼컴퓨터의 가공할 연산 능력으로 인해 실제로는 할 수 없는 많은 실험이 진행된다. 슈퍼컴퓨터로 인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유럽연합(EU)과 미국의 산업·과학기술 현장을 2회에 걸쳐 생생하게 소개한다.》
독일 고성능컴퓨터센터(HLRS)의 가상현실 장치 체험 장면. 이 장비를 이용하면 슈퍼컴퓨터가 만든 3D 입체영상을 이용해 자동차를 시운전할 수 있다. 슈투트가르트=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포르셰에 탄 후 열쇠를 돌렸다. 운전석이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크르릉’ 하는 탁한 엔진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너무 빨리 달리지 말라”는 경고를 들으며 안전띠를 맸다. 가속기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포르셰 본사의 자동차 시험코스가 눈앞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시속 120km로 코너를 파고들자 현기증이 일었다. 진동을 통해 바퀴가 노면에서 헛도는 게 느껴졌다. 시속 180km를 넘자 운전실력이 한계를 드러냈다. 결국 한 바퀴 반을 옆으로 미끄러지며 벽을 들이받았다. 대형사고였다. 비명을 지르며 운전석에서 뛰어내렸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다친 곳은 없었다. 모든 것은 슈퍼컴퓨터로 만들어진 가상현실 속이다. 숨을 몰아쉬며 쓰고 있던 3차원(3D) 안경을 벗고는 “믿을 수 없다”고 외쳤다. 기자 옆에 있던 우베 뵈스너 독일 고성능컴퓨터센터(HLRS) 시각화연구실장은 “운전솜씨가 나쁘진 않다”며 웃었다.

○ 슈퍼컴은 독일 자동차산업 원동력

이 장치는 보통 자동차게임과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운전대 등은 포르셰에 쓰이는 진짜 부품이다. 세 개의 벽과 바닥까지 4개 화면에서 입체영상이 튀어나온다. 진동과 소리까지 치밀하게 재현했다. 영화 ‘아바타’조차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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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RS 시각화연구팀 연구실 전경. 방 한쪽에 각종 시뮬레이션 장치를 설치해 가상현실 환경을 구현할 수 있다. HLRS는 1982년부터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자동차 연구에 관한 한 최고의 실적을 자랑한다.슈투트가르트=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enhanced@donga.com
뵈스너 실장은 “실제 포르셰의 운전환경을 95% 재현했다”며 “여기서 운전한 데이터를 이용해 새 자동차의 안전검증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 100번 이상 실제 자동차로 시험운전을 해야 했다면 이제는 다섯 번으로 끝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조만간 연구팀은 포르셰 본사에 이 장치를 공급할 계획이다.

5월 말 방문한 독일 서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슈투트가르트는 포르셰와 벤츠 본사가 있는 자동차산업의 중심지다. 하지만 최근에는 과거와는 다른 의미로 독일 자동차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슈퍼컴퓨터 덕분이다.

슈투트가르트대에 자리한 HLRS는 독일 3대 슈퍼컴퓨터센터 중 하나다. 가상현실 연구에서는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HLRS에서 자동차 주변의 공기흐름을 가상현실로 재현해 포르셰의 신형 박스터, BMW의 미니, 아우디의 A8 등 세계적인 명차를 탄생시켰다. 2006년 나온 BMW의 신형 ‘6’ 시리즈의 연료제어장치 설계에도 참여해 엔진 성능을 크게 끌어올렸다.

특히 포르셰와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다. HLRS는 슈퍼컴퓨터 자원의 90% 이상을 포르셰에 쓰고 있다. 또 공동투자로 자회사를 설립하고 자동차 사업을 같이하고 있다. 앞으로 HLRS는 자동차 외에도 화학산업과 대규모 발전시설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미 HLRS 출신 연구원들이 창업한 ‘리콤’은 가상현실기술을 이용한 발전소 설계 분야 전문기업으로 세계 60여 개 발전소 설계과정에 참여했다.

○ 산업과 경제 활용 위해서는 정책적 지원 필요

HLRS는 국내 슈퍼컴퓨터 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과 협력하고 있다. 이곳에서 연수를 하고 있던 김재성 KISTI 박사는 “포르셰가 세계 정상급 스포츠카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슈퍼컴퓨터”라며 “기업과 연구소가 힘을 합해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는 점이 가장 부럽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부터 2일까지 4일간 대전 유성리베라호텔에서 열리는 ‘1회 국제 산업체 슈퍼컴퓨팅 워크숍’에 참석한 미하엘 레스퀴 HLRS 센터장은 “슈퍼컴퓨터는 경제성장을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영서 KISTI 원장은 “국내 슈퍼컴퓨터도 성능에서는 세계 15위에 해당한다”며 “앞으로 독일과 같은 산업 연계 모델을 적극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슈투트가르트=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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