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 ‘월드컵 벤치마킹’

  • Array
  • 입력 2010년 6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박지성 선수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는 전유동 군(왼쪽). 전 군은 아버지 전한수 씨(가운데)가 축구 경기를 함께 보며 알려준 리더의 역할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박지성 선수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는 전유동 군(왼쪽). 전 군은 아버지 전한수 씨(가운데)가 축구 경기를 함께 보며 알려준 리더의 역할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지구촌의 축제 2010 남아공 월드컵. 하지만 초중고생 학부모에게 월드컵은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한국대표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거리응원을 하느라 새벽에 별을 보며 귀가하는 자녀도 한둘이 아니다. 축구 강대국 간 ‘빅 매치’를 보기 위해 밤을 새우며 TV 앞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더구나 코앞에 다가온 기말고사가 더 걱정이다.
“월드컵 경기 그만 보고 기말고사 공부를 하라”는 부모와 “4년에 한 번뿐인 월드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자녀 사이의 신경전도 벌어진다. 피할 수 없다면 이용하라. 월드컵 경기도 지혜롭게 이용하면 자녀의 학업과 학교생활에 도움이 될 ‘교재’로 사용할 수 있다. 월드컵을 교육적으로 활용하는 노하우를 살펴보자.》
“아빠, 이번에 우리나라와 경기하는 그리스는 어떤 나라예요?”

“그리스에 대해서 궁금한가 보구나. 일단 지구본에서 어디 있는 나라인지 알아볼까?”

초등학교 2학년 딸과 5세 아들을 둔 서울 동북고 허일범 체육교사(36·서울 강동구)는 자녀와 함께 월드컵을 보기 위한 준비로 분주하다. 허 교사의 준비물 1호는 지구본. 한국대표팀이 상대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허 교사는 “아이들은 한국대표팀이 상대하는 국가에 큰 관심을 갖게 마련”이라면서 “지구본을 활용해 해당 국가의 위치를 알려주고 ‘먼 나라 이웃 나라’ 같은 학습만화를 함께 보며 해당 지역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정보를 얻도록 함으로써 교육적 흥미로 연결시키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축구 경기를 보는 도중에도 딸의 질문은 끊이질 않는다. “그리스 응원단은 왜 ‘갑옷’을 입고 있느냐”라는 질문부터 “우리나라는 밤인데 왜 축구 경기를 하는 곳(남아공)은 아직 해가 떠 있느냐”는 질문까지 다양하다. 그때마다 허 교사는 세계지도 같은 시각자료와 백과사전, 관련 서적을 고루 활용하며 ‘상대 국가의 역사와 문화’ ‘시차의 개념’을 설명해준다. 허 교사는 “단순히 함께 응원하는 것에서 나아가 딸의 사소한 질문에 귀를 기울이고 상세히 설명해주면 월드컵 경기도 지식의 창고로 변한다”고 말했다.

월드컵 경기를 ‘인성교육’의 생생한 소재로 삼을 수도 있다.

중학교 1학년 딸과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둔 김덕희 씨(39·여·서울 강남구 대치동)는 월드컵 경기를 통해 자녀에게 ‘협력의 중요성’을 알려줬다. 김 씨는 12일 한국과 그리스의 경기가 끝난 뒤 아이들에게 “한국대표팀이 강팀인 그리스를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니?”라고 자연스레 질문을 던졌다. “박지성 선수가 잘해서”란 아이들의 답에 김 씨는 박지성 선수의 골 장면을 예로 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박지성 선수가 상대의 공을 가로챈 뒤 드리블을 해 골을 넣었지. 박지성 선수 혼자 잘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박주영이나 이청용 선수 같은 동료들이 제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잘해줬기 때문이야. 서로 협력하면서 그리스 선수들을 상대편 골대 가까이서부터 압박했기 때문에 박지성 선수가 공을 뺏을 수 있었던 거지. 이런 작은 과정 하나하나가 모여서 팀 전체에 좋은 결과로 나타날 수 있었던 거야.”

김 씨는 자녀의 공감을 더 이끌어 내기 위해 자녀가 평소 좋아하던 과학 분야에서 유사한 일화를 찾아냈다. 어떤 책에선가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주위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라고 읽은 내용을 떠올린 것. 김 씨는 박지성 선수를 뉴턴에, 다른 선수들을 뉴턴의 친구들에 비유하며 “공부할 때도 모르는 문제를 혼자 끙끙대는 것보단 친구와 서로 도와가며 해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평소 무엇이든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던 둘째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친구들과 함께 토론하며 수학문제를 풀었다’고 말하더라고요. ‘내가 아는 문제라도 친구들을 도와주면서 한 번 더 복습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고도 하고요. 축구 경기를 눈으로 직접 보면서 협력이란 무엇이며 왜 중요한지를 몸으로 느낀 것 같아요.”(김 씨)

월드컵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의 영웅적 면모를 교육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아이들이 자신의 ‘롤 모델’을 정하고 선수들의 리더십을 ‘벤치마킹’하는 계기로 삼도록 할 수 있는 것.

전유동 군(9·서울 상수초 3)은 이번 그리스전을 보고 박지성 선수에게 푹 빠졌다. 단순히 박지성 선수가 멋지게 드리블해 골을 넣는 모습에 환호하는 아들을 본 아버지 전한수 씨(42·서울 노원구)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전 씨는 아들에게 “박지성 선수가 진정으로 멋진 이유는 자기 개인의 기량을 뽐내며 골을 넣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팀의 주장으로서 다른 선수들에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누구보다 많이 뛰어다니기 때문”이라고 일러주었다. 전 씨는 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박지성 선수가 동료들에게 분주히 패스를 하는 장면 하나하나를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음으로써 승리를 확정한 것처럼 팀이 위기에 처해 있는 순간 자기 능력을 100% 발휘해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는 것도 리더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축구 경기를 보면서 대화를 하니까 아버지의 말씀이 잔소리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제가 미처 보지 못했던 점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제가 반에서 회장인데, 요즘 박지성 선수 같은 리더가 되려고 노력해요. 반 친구들에게 지시를 하기보다는 솔선수범해서 준비물을 챙겨오려고 해요. 공부에 어려움을 느끼는 친구가 있으면 먼저 다가가 시험범위나 진도를 알려주려고도 하고요.(웃음)”(전 군)

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