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제균]‘노무현 곁불’ 쬐려는 후보들

동아일보 입력 2010-05-10 03:00수정 2010-05-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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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때 친노(親盧)는 폐족(廢族)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역대 최다표차 참패에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족과 친지, 집사와 측근, 후원자 등이 거액의 금품수수와 청탁에 연루된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자칭 타칭 친노 중에서도 노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는 이들이 속출했었다.

그런데 딱 1년이 지난 지금, 노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우거나 ‘노무현 정신 계승’을 주장하는 6·2지방선거 후보들이 넘쳐난다. 지난해 5월 23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일국의 대통령의 비운은 국민의 가슴을 울렸다. 그날 노무현은 육체적으로는 생명을 끝냈지만, 정치적으로는 부활했다. 그 1주기의 열흘 뒤에 이번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노무현 추모 열기를 표로 연결하려는 정치인의 속성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비운에 간 전직 대통령을 추모하는 마음과 그 대통령의 정치적 공과를 구분해 내는 것은 눈 밝은 유권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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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노무현은 ‘실패한 대통령’이었다. 그 자신도 회고록에서 “참여정부는 절반의 성공도 못했다”며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실패와 좌절의 기억”이라고 토로했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 이념 논란 등으로 노무현 정권 내내 시끄러웠지만 남긴 실적이 거의 없다.

△정치적으로는 대연정, 개헌 등 설익은 어젠다를 추진해 무위에 그쳤고 △외교적으로는 한국의 국제적 좌표를 착각한 ‘동북아 균형자론’ 같은 이상주의에 빠졌으며 △경제적으로는 포퓰리즘 부동산 정책으로 오히려 집값을 폭등시켰다. 공공부문을 키워놓고 ‘그래 큰 정부 맞다’고 어깃장을 놓아 국민의 억장을 무너지게 하기도 했다.

지난 대선 때 어떤 네거티브 공격에도 지지율이 빠지지 않은 ‘이명박 현상’의 가장 단단한 버팀목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피로감이 아니었던가. 이번 선거에서 ‘노무현’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앞세우려는 후보들은 그 이름이 유권자에게 추모의 정과 함께 실정(失政)까지 연상시키지는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

게다가 노풍(盧風)에 기대어 출마하는 후보 가운데는 개인적인 문제를 안고도 출마를 강행한 이들마저 눈에 띈다.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우광재, 좌희정’만 봐도 그렇다.

노 전 대통령 가족이 받은 수십억 원의 금품은 환수되지 못했지만, 사건은 그의 죽음으로 종결됐다. 하지만 이광재 의원에 대한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 의원은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2심 재판 절차가 진행 중이다. 더구나 지난해 3월 구속되면서 의원직 사퇴는 물론이고 정계 은퇴까지 선언한 그가 버젓이 강원지사를 향해 뛰는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까.

충남지사를 노리는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47억 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혐의 등으로 징역 1년을 살았다. 특히 2003년 8월에는 불법 대선자금 재판이 진행되는 가운데 당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100만 원짜리 수표로 2억 원을 받아 ‘구악(舊惡) 정치인 뺨친다’는 얘기도 들었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에서 ‘노무현 정신’을 표방하는 이들은 제대로 그 정신을 배우지 못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노 전 대통령은 적어도 곁불은 쬐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정치적 사지(死地)로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갔다. 노무현 후광효과로 곁불을 쬐려는 이들이야말로 노 전 대통령을 욕되게 하는 게 아닐까.

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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