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상사 달고 오겠다던 그이…” 바닷속에서 받은 계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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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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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종 김태석 상사 사연
“진급식에 입을 정복 챙겨가 남편도 옷도 바닷속에…”
실종땐 보류 규정 고집않고…軍, 어제 예정대로 진급처리

4월 1일 진급을 앞두고 실종돼 주변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는 김태석 상사의 부인 이수정 씨가 지난달 31일 실종자 가족 기자회견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평택=김재명 기자
4월 1일 진급을 앞두고 실종돼 주변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는 김태석 상사의 부인 이수정 씨가 지난달 31일 실종자 가족 기자회견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평택=김재명 기자
“이제 상사가 된다고 얼마나 벅차했는데…. 진급식 때 입으려고 준비해 간 군복이 지금 다 남편과 함께 바닷속에 있어요. 그 옷을 입고 지금 당장이라도 돌아올 것 같은데….”

지난달 26일 천안함 침몰사고 당시 중사였던 김태석 씨(38)가 4월 1일자로 상사가 됐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김 중사는 이날 함장인 최원일 중령 앞에서 멋지게 해군 정복을 차려입고 신고식을 했을 것이다.

침몰 사고 일주일째인 1일까지도 김 상사는 백령도 바닷속에서 구조되지 못했다.

“오늘 안에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도했어요. 내 앞에서 새로운 계급장을 달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편이 돼 줄 거라고 믿었는데…”. 부인 이수정 씨(37)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렇게 긴 항해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16일 출동하기 전 사흘은 김 상사 가족에게 가장 행복한 휴일이었다. 보통 한 번 항해를 다녀오면 열흘 정도 쉬는데 이번에는 유난히 기간이 짧았다. 다소 피곤했지만 남편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는 쉬는 사흘 내내 군복에 붙어 있던 중사 계급장을 하나씩 하나씩 떼어냈다.

남편의 서툰 손놀림을 본 이 씨가 “내가 하겠다”고 말해도 막무가내였다. 김 상사는 “상사 진급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서 “이번에는 내가 직접 하고 싶다”며 빙긋 웃었다. 부인 이 씨는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던 진급”이라며 “남편의 설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16일 집을 떠나며 김 상사는 훈련복과 함께 진급식에 입을 해군 정복과 모자를 챙겼다. 부대로 복귀하자마자 진급식에 참석할 요량이었다. 집에 오는 시간조차 아까운, 그렇게 기다렸던 진급이었다.

나가는 김 상사에게 세 딸이 매달렸다. 아빠의 정복 모자를 눌러쓰며 “우리 아빠 최고”라고 외쳤다. 빙긋 웃던 김 상사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훈련을 떠났다. 부인 이 씨는 “그 뒷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 따르면 김 상사는 애초 이번에 진급할 수 없었다. ‘실종자는 진급 대상에서 보류된다’는 군 인사법 규정 때문이다. 제2함대사령부 관계자는 “2002년 벌어졌던 제2연평해전에서 순직한 한상국 중사도 실종 상태에서 진급 기일이 다가와 결국 진급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 하사였던 한 중사는 순직 사실이 알려진 후 1계급 특진해 중사가 됐다.

하지만 46명이 실종된 안타까운 천안함 사고에 군도 규정만 고집할 수 없었다. 실종된 승조원에게 모욕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고려해 군은 김 상사의 진급을 정상적으로 처리했다. 바닷속에서 그토록 바라던 상사 계급장을 달게 된 것이다.

제2함대사령부 측은 “부대에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부인에게라도 진급식을 치러 주고 싶었지만 아직 실종자들을 계속 찾고 있는 상황이라 보류했다”며 “김 상사가 빨리 돌아와 새로운 계급장을 어깨에 달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남편의 군복이 모두 바닷속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슬퍼요. 혹시 잘못되면 아무것도 추억할 수 있는 게 없을까 봐….”

부인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을 거라고 덧붙였다. “모든 실종자 가족의 마음과 똑같이 남편이 꼭 돌아올 거라 믿어요.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내 남편이고 또 해군이니까요.”

평택=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동영상=故 한주호 준위의 ‘외길인생’ 추모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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