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 희망의 노래 들려준 ‘판도라의 음악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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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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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판도라(www.pandora.com)’라는 이름의 인터넷 라디오를 들으며 이 글을 씁니다.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의 ‘사이언티스트’를 지나 선바이포의 ‘푸로 돌로르’처럼 생소한 라틴 음악이 나오고, 구구돌스의 ‘베터데이스’처럼 한때 즐겨 듣던 밴드의 잘 몰랐던 노래도 등장합니다. 이 노래들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제가 좋아하는 노래란 겁니다.

판도라는 2000년 1월 팀 웨스터그렌이라는 미국 청년이 창업한 벤처기업입니다. 약 70만 곡의 노래 가운데 사용자가 좋아할 것으로 짐작되는 노래를 추천해주는 회사죠. 이 회사는 이른바 ‘닷컴 버블’이 사그라지던 때 창업했기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온갖 위기를 넘기며 ‘생존’을 목표로 한 힘든 시기를 보냅니다.

그러자 최근 들어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아이폰과 무선인터넷 덕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아이폰의 무선인터넷 기능을 통해 판도라에 접속해서 70만 곡이 넘는 판도라 라디오의 새 노래를 즐기기 시작한 겁니다. 라디오처럼 노래 사이에 광고를 넣고, 재생 중인 노래가 맘에 들면 애플의 음악상점인 아이튠스 뮤직스토어에서 살 수 있게 하며 수수료를 받은 덕분에 이 회사는 창사 10년 만에 드디어 지난 분기 첫 흑자를 냅니다. 그 배경에는 데이터 통화량을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무선인터넷을 쓰도록 했던 미국 통신사 AT&T의 무제한 데이터통화 요금제도 한몫했습니다. 올해 판도라는 1억 달러(약 1150억 원)의 매출을 예상합니다.

매출과 이익보다 놀라운 건 이 서비스에 대한 사용자들의 애정입니다. 약 4800만 명이 매달 평균 11.6시간 판도라에 접속하고, 매일 평균 3만5000명이 새 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웬만한 라디오 채널 이상입니다.

음악은 한때 인터넷의 발전으로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콘텐츠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음악은 인터넷 덕에 가장 큰 혁신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새 음악을 듣지 않습니다. 그건 요즘 음악이 형편없기 때문이 아니라 어린 시절과 비교해 새 음악 가운데 우리의 귀를 만족시킬 만한 음악을 찾을 시간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터넷은 집에서 녹음한 인디 음악조차 대중과 만나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판도라와 같은 추천형 음악 서비스는 그런 음악을 우리 귀로 ‘배달’해 줄 겁니다. 음악 산업에게 인터넷이란 초기엔 온갖 불행을 안겨다준 ‘판도라의 상자’였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라디오 ‘판도라’는 그 상자 속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희망’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

※ 판도라는 저작권 문제로 미국에서만 서비스됩니다. 한국에서 접속하면 ‘접속 불가’ 화면이 뜹니다. 저는 가상사설망(vpn)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인터넷 주소를 얻은 뒤 듣고 있습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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