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엽]김인규 KBS사장의 뉴스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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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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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KBS 사장이 11월 24일 취임한 이래 준비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노조의 출근 저지를 반나절 만에 넘어선 뒤 취임 일성으로 디지털 시대 소외 계층의 채널 접근권을 보장하는 ‘K(Korea)-뷰 플랜’과 뉴스의 개혁 방침을 공표했고 신년 초부턴 ‘걸어서 세계 속으로’의 부활 등 일부 프로그램을 개편한다. 한 직원은 “33년간 KBS에서 일한 사장의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그 머릿속이 궁금하다는 이들이 많다”고 말한다.

김 사장은 17일 일간지 문화부장과의 저녁 자리에서도 그 내공을 보였다. 그중 인상적인 사안이 메인 뉴스의 개혁이다. 김 사장은 12일 기자들에게 이 방안을 언급한 데 이어 이날도 “TV 뉴스가 심층성 전문성 정보성이 부족해 외면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 개혁의 요체는 기자가 아니라 앵커를 중심으로 한 심층 탐사보도다. ‘뉴스 9’에서 나가는 1분 20초짜리 아이템 25, 26개를 5분 이상 8개로 줄이고, 이를 앵커가 전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심층 취재를 할 수밖에 없고, TV에서 기자 얼굴과 ‘흥분 리포트’가 사라지면서 뉴스가 차분해지기 마련이다. 이는 NHK가 5년 전 시행한 것이라고 그는 전했다.

김 사장은 보도 시사와 관련해 PD와 기자의 협업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의 취재력과 PD의 ‘스토리텔링’ 전달력의 시너지를 도모하면서 PD 저널리즘의 문제인 ‘주관성’을 걸러내겠다는 것이다.

그는 또 케이블 채널의 한 프로그램을 꼽으며 가십성 TV 뉴스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가십 뉴스는 정치인들의 ‘카메라 앞 한건주의’를 조장한다”며 “가십은 뉴스를 에피소드 프레임으로 몰아가면서 순간적 재미를 주지만, 뉴스의 본질보다 이미지를 앞세워 민주주의의 토대인 소통을 방해한다”고 말했다.

김 사장이 지적한 TV 뉴스의 문제점은 한국 방송계의 해묵은 과제다. 방송 기자들은 전문성이 떨어지고, PD들은 이른바 ‘PD 저널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인 주관을 내보냈다. MBC ‘PD수첩-광우병’편이 그 사례다. 김 사장은 2008년 말 서울대 동창회보와의 인터뷰에서 “외국에 비해 한국에는 PD가 너무 많다. 프로그램 하나에 PD가 8명씩 매달리기도 한다. 방송 개혁 1번이 PD 개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에도 KBS는 심층 보도를 위해 아이템 시간을 늘리고 부장급이 마이크를 잡았으나 원점으로 돌아갔다. MBC는 기자와 PD가 협업하는 ‘피자의 아침’을 만들었다가 실패했다. 모두 조직과 시스템의 반발이 거센 탓이었다. 김 사장의 개혁 방안에 대해서도 이미 기자와 PD들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

김 사장은 “서로 이해가 안 된 상태에서 그런 반발이 나오는데 설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퇴진을 요구하는 노조의 총파업 찬반투표에서 파업안이 부결되고, 내부에서 “대선 특보라는 흠에도 불구하고 KBS를 위기에서 구할 만한 이는 사장뿐”이라는 지지가 확산된 데 대한 자신감도 보였다.

KBS가 지금까지 대표 공영방송으로 대접받지 못한 이유는 품격 있는 뉴스를 내놓지 못한 데다 김 사장이 성균관대 박사학위 논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대선 보도 등을 둘러싼 편파 논란 탓이다. 이는 수신료 현실화의 걸림돌이기도 하다. 이번 개혁의 지향점은 수신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공영방송일 것이다. 시청자들은 그런 공영방송을 오래 기다려 왔다. 김 사장의 성공 여부가 시청자의 그것과 같은 이유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김 사장의 추진 동력이 지속되길 기대한다.

허엽 문화부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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