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소년 만나 아이폰 ‘눈’을 뜨다

동아닷컴 입력 2009-12-15 03:00수정 2009-12-15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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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폰용 ‘빅2’인기 프로그램 만든 고교생 유주완 군

버스시간 알려주는 ‘서울버스’ 아이폰 사용자 4만명 내려받아
한글초성 검색기능 ‘콘택츠’로, 보름도 안돼 5000달러 벌어
교실에 무선공유기 설치등 기행,올림피아드 대상 ‘온라인 스타’로
《“이 공유기 누가 설치했어? 시험 문제 유출하려고 별짓을 다 하는구나!”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둔 올 7월 서울 경기고 2학년 14반. 시험 감독 선생님이 교실 구석에 설치해 뒀던 인터넷 무선 공유기를 찾아냈다. 노트북컴퓨터나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하게 해주는 기기였다.
문제의 공유기를 설치한 유주완 군(17)은 “시험과 아무 상관없다”고 말했지만 교사는 믿지 않았다. 결국 나중에 컴퓨터 전문가가 “무선 공유기만으로 시험 문제를 빼돌린다는 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한 뒤에야 오해가 풀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소년은 그저 ‘괴짜’였다. 하지만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11일 만난 소년은 사람들의 선망을 한 몸에 받는 ‘스타 프로그래머’가 됐다. 이 소년이 최근 10만 명이 넘은 국내 아이폰 사용자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프로그램인 ‘서울버스’와 ‘콘택츠(KONTACTS)’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 아이폰이 길을 열어주다

영 어보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먼저 배웠다. 친구들은 게임 개발자이고, 장래 희망은 소프트웨어 벤처기업가다. 경기고 2학년 유주완 군은 직접 개발한 아이폰용 소프트웨어가 인기를 모으면서 학교 성적도 특별할 게 없던 ‘괴짜’에서 고2의 나이에 쓸 만한 프로그램을 연이어 만든 ‘천재 프로그래머’가 됐다. 유 군이 자신이 개발한 아이폰용 ‘콘택츠’ 프로그램을 보여주었다. 황규인 기자
“학교에서 ‘아이팟터치’를 온라인으로 쓰고 싶어서 설치한 것뿐이에요….”

소년은 공유기를 설치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아이팟터치는 애플의 휴대전화 ‘아이폰’에서 카메라와 전화기 기능만 뺀 다용도 MP3플레이어. 유 군은 한때 이 기계를 하루 종일 쓰고 싶어서 부정행위 누명까지 감수했다. 결국 그 기술로 그는 콘택츠와 서울버스를 만들었다.


이달 1일 유 군이 만든 두 프로그램이 아이폰용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아이튠스 앱스토어에 등록됐다. 서울버스는 무료고 콘택츠는 0.99달러다. 아이폰 개통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약 보름 동안 국내 아이폰 사용자들은 아이튠스 앱스토어에서 이 두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내려받았다. 서울버스는 4만 명, 콘택츠는 7000명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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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군은 콘택츠로 보름도 안 돼 5000달러(약 575만 원)가 넘는 돈을 벌었다. 애플에 30%의 수수료를 내주고 남은 순수입이 그만큼이다. 유 군의 블로그에는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찬사가 줄을 이었다.

콘택츠는 한국(Korea)과 주소록(contacts)의 합성어로 국내 대부분의 휴대전화에는 있지만 아이폰에는 없는 초성(初聲) 검색 기능을 쓰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어 ‘홍길동’의 전화번호를 검색하려면 국산 휴대전화에선 ‘ㅎㄱㄷ’만 입력해도 되지만 아이폰에선 ‘홍길동’을 전부 눌러야 한다. 콘택츠를 깔면 아이폰에서도 ‘ㅎㄱㄷ’만 누르면 된다.

서울버스는 거리에서 근처의 정류장 위치를 지도로 보여주고 그 정류장에 어떤 버스가 언제 도착하는지 분 단위로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 부모님 선물은 빨간 내복 대신 까만 아이폰



아이튠스 앱스토어에 프로그램을 올리려면 ‘개발자 등록비’ 99달러를 내야 한다. 고교생 처지에서 작은 돈이 아니라서 유 군은 부모님께 이 돈을 빌렸다. 이제 돈을 벌었으니 부모님께 돈도 갚고 처음 번 돈으로 ‘빨간 내복’ 대신 아이폰을 사드릴 생각이다.

과연 공부는 잘할까? 유 군은 “학교 성적은 중간”이라고 답했다. 교과서와 문법책 대신 유명 해외 사이트에서 프로그래밍 지식을 익힌 터라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는 큰 불편이 없지만 영어 점수는 별로라고 했다.

성적 대신 유 군은 프로그래밍 경력을 쌓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홈페이지 만들기 대회에 참가하며 ‘HTML’이라는 인터넷 언어를 배웠다. 초등학교 5학년 때엔 부모님을 졸라 ‘비주얼 베이직’이란 초급 프로그래밍 언어 소프트웨어를 선물로 받았는데 11세 어린이가 선물로 종합 공구세트나 의사용 전문 응급의료세트를 요구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땐 교실에서 쓸 수 있는 ‘자리배치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얘랑 얘는 따로 앉아야 하고, 쟤랑 쟤는 꼭 붙어야 하고, 그런 걸 고민해서 반에서 자리 정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더니 담임선생님께서 마음에 드셨는지 1년 내내 그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정했다”는 게 유 군의 설명.

공부는 최고가 아니었을지 몰라도 컴퓨터의 세계에선 최고를 향하고 있었다. 유 군은 지난해 정보보호올림피아드 대상을 받았고 올해도 서울시교육청에서 주최한 ‘정보의 바다 탐구대회’ 교육감상을 받았다. 가고 싶은 대학도 KAIST 전자전산학부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던 부모님도 요즘은 유 군을 적극 지원한다. 가정의학과 의사인 유 군의 아버지부터 ‘컴퓨터 마니아’다. 유 군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늘 최신형 컴퓨터를 쓰고 계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컴퓨터를 끄는 순간 내게는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기 가장 좋은 환경이 펼쳐졌다”고 말했다.

내년이면 고3이다. 하지만 소년은 ‘수능 대박’ 대신 콘택츠 프로그램 업데이트에만 관심이 있다. 서울버스와 달리 굳이 이 프로그램을 유료로 만든 까닭은 꾸준히 기능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유 군은 “아, 내가 이걸 무료로 공개하면 1년 동안 방치하겠구나, 그렇게 되면 그건 이 프로그램을 쓰는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겉보기엔 그저 평범한 소년인데, 친한 친구 셋은 모두 스스로 게임을 개발할 줄 아는 전문가였고 장래 희망은 구글과 같은 창의적인 소프트웨어 벤처기업을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 희망은 ‘꿈’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이폰은 그 꿈에 ‘실현 가능성’이란 날개를 달아줬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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