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대형… 뱀 대형… 100.5km 치열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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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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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로 대로서 횡대로 달리다 한강바람 맞자 뱀처럼 변화
힘아낀 리더들 반환점서 가속 마지막 2km 5번째 승부수
선두그룹 16명 이내 흩어져

2009 투르 드 서울 국제사이클대회에 출전한 엘리트 선수들이 이순신 장군이 내려다보고 있는 세종로 사거리를 질주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앞을 출발한 선수들은 200m를 달린 뒤 우회전해 신문로부터 본격적인 레이스를 시작했다. 특별취재반
2009 투르 드 서울 국제사이클대회에 출전한 엘리트 선수들이 이순신 장군이 내려다보고 있는 세종로 사거리를 질주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앞을 출발한 선수들은 200m를 달린 뒤 우회전해 신문로부터 본격적인 레이스를 시작했다. 특별취재반

■ 양보없는 레이스 현장

전열(戰列)은 견고했다. 수많은 국지전과 네 차례의 큰 전투가 있었지만 잠시 흩어졌던 대오는 다시 하나로 뭉쳐졌다. ‘모든 선수가 한꺼번에 들어올 수도 있다’는 전망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좀처럼 깨지지 않을 것 같던 대오는 5번째 공격에서 무너졌다. 결승선을 약 33km 앞둔 지점이었다. 비 내리는 가을 아침. 서울 도심을 수놓았던 2009 투르 드 서울 국제사이클대회 레이스를 밀착 취재했다.

○ 핫 스프린트까지 탐색의 연속

세종문화회관 앞을 출발한 선수들은 세종로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했다. 5차로의 쭉 뻗은 신문로가 나왔다. 선수라면 누구나 흥분할 만한 길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속력을 냈다. 광범위한 1차 공격이다. 그러나 넓고 굴곡 없는 길이 독주를 허용할 리 없다. 평소 같으면 앞 사람 뒤에 붙어 바람을 피할 선수들이 비 때문에 앞에서 튀는 물을 피해 옆으로 늘어선다. 넓은 도로가 어느새 자전거로 꽉 찼다. 강변북로에 진입했지만 변함이 없다.

2차 공격은 한남대교 밑(13.6km)에서 벌어졌다. 한 선수가 오른쪽에서 부는 바람을 피해 왼쪽 끝 차선으로 치고 나갔다. 날개를 펼친 독수리 같던 대형이 뱀처럼 바뀌었다. 다시 한 선수가 오른쪽 앞으로 나갔다. 뱀 꼬리가 뒤를 잇는다. 간격이 좀처럼 벌어지지 않자 뱀은 다시 독수리가 됐다. 힘을 아끼기 위해서다.

선수들은 43km 지점에 있는 핫 스프린트를 앞두고 바짝 힘을 냈다. 이 지점을 1∼3위로 통과하면 별도의 상금을 받기 때문이다. 시속 45km 안팎이던 속도가 60km까지 올라갔다. 핫 스프린트는 국내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마련됐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레이스에 활력을 주기 위해서다. 일종의 애니메이터(생기를 주는 것)다.

○ ‘로열 패밀리’의 공격은 달랐다

반환점(창동교·45.9km)을 돌자 마음이 급해진 일부 선수들이 3차 공격을 시도했다. 효과는 없었다. 5km 정도를 더 달리다 4차 공격이 이어졌다. 가평군청의 조현도가 대열에서 100m 앞으로 달려 나갔지만 역시 무위에 그쳤다. 웬만한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로열 패밀리’가 나설 차례다.

로열 패밀리로 불리는 각 팀의 리더들은 전반에는 무리하지 않는다. 팀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힘을 비축한다. 좁고 딱딱한 안장 위에 앉아 있지만 다른 선수들이 고생하는 것에 비하면 안락의자다. 반환점은 안락의자에서 내려올 때가 됐음을 뜻한다.

조호성(서울시청)이 선두로 치고나왔다. 독일 팀 누트릭시온 스파르카세 선수 2명이 뒤를 따랐다. 하나 둘 더 따라붙어 16명으로 늘어난 선두 그룹은 동작대교 밑(67.6km)에서 메인 그룹과의 격차를 1km 가까이 벌렸다. 5차 공격은 성공했다.

비로소 형성된 선두 그룹은 마지막 스퍼트를 하기 전까지 한팀이나 마찬가지다. 자기들끼리 경쟁하다 보면 남 좋은 일만 시켜주기 때문이다. 서로 손짓을 주고받으며 페이스를 조절했다. ‘우승자는 여기서 나오면 된다’는 암묵적 동의다. 바람에 맞서야 하는 선두 자리는 돌아가면서 맡았다.

선두에 있던 디르크 뮐러(누트릭시온 스파르카세)가 75km 지점에서 손을 번쩍 들었다. 안장이 흔들린다는 이유였다. 뒤따르던 팀 차량이 따라붙어 안장을 조절했다. 뮐러가 차를 잡은 채 한참을 달리자 심판원이 경고를 했다. 10초만 쉬어도 피로가 어느 정도 해소돼 더는 반칙이기 때문이다.

골인 2km 정도를 앞두고 16명의 선두 그룹도 흩어졌다. 조호성은 마지막 500m를 혼자 달렸다. 뮐러는 그를 따라잡지 못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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