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126>‘愛人敬天’ 도전 40년

  • Array
  • 입력 2009년 11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49>IMF극복

1997년 외환위기로 휘청일때
저리자금 대출-거래처 알선 등
日협력사들 우정에 감동받아

와키치 나가노 JSP 회장(왼쪽)이 2001년 애경에 기증한 친필 현판. 일본 미쓰비시가스화학 자회사인 JSP는 애경
계열사 코스파의 합작사다. 미쓰비시가스화학은 1973년 1차 오일쇼크 당시 원료를 공급한 데 이어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애경에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와키치 나가노 JSP 회장(왼쪽)이 2001년 애경에 기증한 친필 현판. 일본 미쓰비시가스화학 자회사인 JSP는 애경 계열사 코스파의 합작사다. 미쓰비시가스화학은 1973년 1차 오일쇼크 당시 원료를 공급한 데 이어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애경에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뒤 한국 경제는 1990년대 중반까지 고도성장을 지속하며 선진국 문턱에 바짝 다가선 듯했다. 그러나 1997년부터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시작으로 연쇄 부도가 일어나면서 재계 곳곳에 법정관리 신청 도미노가 시작됐다. 국가신인도 역시 추락의 길을 걸었다. 대기업 연쇄 부도와 같은 실물경기 침체, 주가 하락과 환율 상승, 금융시장 불안 등 총체적인 경제난국 앞에 국가부도 위기를 절감한 정부는 1997년 11월 21일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1997년 한 해 동안 30대 그룹 가운데 16개 그룹이 몰락하는 등 한국 기업은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애경그룹 역시 국가부도 사태를 피할 수 없었다. 1997, 98년 2년간 당기순이익 적자를 보였다. 그러나 1999년에는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258%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면서 흑자로 반전하는 등 비교적 위기 상황을 빨리 탈출했다.

애경그룹은 1996년 3월 애경그룹 ‘21세기 경영이념 선포식’을 열고 조직 개편과 회계제도 개선 등의 구조조정을 외환위기 이전에 마무리해 다른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성장 여력이 있었다. 대부분의 기업은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인원 감축 또는 사업부문 축소 등 생존에 급급했던 상황이었다. 일본 협력사인 미쓰비시(三菱)가스화학과 다이니혼(大日本)잉크화학공업, 이토추(伊藤忠)상사 등 3개사가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미쓰비시가스화학은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원료를 공급해줘 ‘공장 불 끄기 직전’의 애경을 살린 적이 있다.

외환위기 당시는 국내 모든 기업이 힘들었던 시기라서 한국에서는 도움을 받을 곳이 없었다. 담보가 충분해도 대출이 어려울 정도로 은행 문턱은 높았고, 외화가 부족해 원료를 제때 수입하기도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측 협력사는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다해 줄 테니 무엇이 필요한지 말씀해 보시라”면서 발 벗고 나서줬다. 나는 평소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사람인데 위기상황에서 이런 말을 듣자 눈물이 핑 돌았다.

이들의 말은 허언(虛言)이 아니었다. 일본 측에서는 운영 자금으로 엔화를 연 3∼4%의 낮은 이자로 빌려주었다. 당시 연 20∼30%의 고금리를 주고도 자금을 쉽게 마련하지 못했던 시기에 가치가 높은 외화를 저리에 빌려주는 일은 수십 년간 협력관계를 맺어온 신뢰가 아니면 있을 수 없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원료를 구입할 때도 외화가 있어야 하는데 일본 협력사는 외상으로 원료를 공급해줬고, 원료 대금으로 외화를 받지 않고 우리 제품을 대신 받는 등 물물교환에 나서 줬다.

일본의 10대 종합무역상사였던 이토추상사는 중개무역을 통해 애경 제품을 수출하도록 거래처를 소개해주었고, 당시로서는 큰돈인 300억 원을 5년 넘게 상환하지 않고 쓸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 돈은 일본 은행에서 이토추상사가 저리로 대출을 받아 우리에게 다시 빌려주는 방식으로 융통했는데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일본 협력사와 애경그룹의 긴밀한 협력관계가 일본에도 알려져 노무라증권 리서치센터 관계자가 애경과 일본 측 협력사의 인연에 대한 인터뷰를 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나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애경은 일본 회사뿐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의 회사와도 합작관계를 맺고 함께 일한 적이 있다. 서양의 합작사는 계약서에 명시된 자신의 의무는 성실히 수행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예전에 애경과 합작을 했던 유럽의 다국적기업은 법정다툼까지 가서 결별했지만 당시 호주지역 총책임자는 애경을 좋아해 개인적으로 한국에 놀러오기도 한다. 일본에 대해 속마음과 겉마음이 다르다고 흔히 말하지만 나는 일본 협력사를 통해 이들이 우정과 신뢰를 깊이 나누는 방식에 대해 배운 점이 많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