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풍파의 아이러니… ‘백조’는 안다

  • 입력 2009년 3월 26일 02시 58분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24일 오후 취재진을 따돌리고 만찬 회동을 한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정식집 ‘백조’. 안철민 기자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24일 오후 취재진을 따돌리고 만찬 회동을 한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정식집 ‘백조’. 안철민 기자
■ 정세균-정동영 담판 벌인 한정식집 인연 화제

2000년 ‘백조’서 의기투합… 권노갑 퇴진 주장

2009년 정동영 개혁대상 몰려 옛 동지와 설전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24일 정 전 장관의 전주 덕진 국회의원 재선거 출마 및 공천 문제를 놓고 회동한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백조’ 한정식집은 두 사람에겐 특별한 장소다. 정 대표는 당초 ‘담판장’으로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정식집 두 군데를 예약했다. 하지만 회동 1시간 전 장소가 언론에 알려지자 정 전 장관 측 최규식 의원이 “두 사람이 친분을 쌓아온 곳에서 만나면 더 허심탄회한 대화가 이뤄질 것”이라며 ‘백조’를 제안했다.》

정 대표와 정 전 장관은 재선 시절인 16대 국회 초반 천정배 이강래 의원, 김한길 정동채 신기남 전 의원(당시는 현역 의원)과 ‘백조’에서 자주 어울렸고 아예 ‘백조회’란 친목회를 결성했다. 정 전 장관이 2000년 김대중 정권의 ‘2인자’였던 권노갑 당시 민주당 고문의 2선 후퇴를 외치며 ‘정풍(整風)’ 운동을 도모했던 곳도 ‘백조’였다. 이를 토대로 정 전 장관은 대선 주자로 도약했고, 상대적으로 ‘온건파’였던 정 대표는 여당 정책위의장을 두 차례 맡는 등 ‘정책통’으로 정 전 장관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한 중진 의원은 “불과 9년 전 정풍의 주역이었던 정 전 장관이 일부 재선 의원에게 거꾸로 개혁 대상으로 몰리고 아이로니컬하게도 정풍을 도모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 자기 변호를 펼쳤다는 얘기를 들으니 착잡하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15대 국회 입문 동기인 정 전 장관과의 관계는 한마디로 ‘We are friends(우리는 친구)’지만 공천이란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정신을 최우선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정 전 장관 공천 배제 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선당후사’는 정 전 장관이 3년 3개월 전 사용했던 표현이다. 당시 통일부 장관이던 그는 2005년 12월 27일 주변에서 열린우리당으로의 조기 복귀를 만류하자 “선당후사의 정신이 중요하다”며 장관직 사의를 표명했다.

정 전 장관은 24, 25일 거듭 “‘선당후사’에서 ‘선당’이란 당 지도부가 당원과 지지자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라며 ‘선당후사’를 내세워 공천 배제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정 대표와 지도부를 압박했다. 정 전 장관 측 일각에선 “공천에서 배제될 경우 무소속 출마, 신당 창당 시나리오도 각오해야 한다”고 벼르고 있지만 정 대표 측은 “명분 없는 신당은 ‘신당후사(新黨後死·신당하면 죽는다)’란 말만 남길 것”이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