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라는 종교 통해 해탈 꿈꾸죠”

  • 입력 2008년 9월 9일 02시 56분


■창법 바꿔 4집 발표한 웅산

고교 2학년때 出家경험… 록 하다 재즈로 전향

“로커 생각 없냐고요? 하고 싶어지면 언젠가…”

가수 웅산(본명 김은영·35)이 비구니가 되기 위해 충북 단양군의 구인사로 들어간 것은 1991년 가을,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었다.

가족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채 “어느 날 문득, 절로 가고 싶다는 마음을 따르기 위해서”였다. 후회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수행중에 염불을 외워야 할 입에서 한영애의 ‘누구 없소’가 새어나왔다. 정신 차리라는 큰스님의 죽비 소리에 ‘다른’ 정신이 번뜩했다. 결국 그는 산에 들어간 지 2년 만에 가수라는 새로운 업(業)을 부여받고 절을 떠난다.

재즈 가수 웅산에게는 범상치 않은 이력이 따라다닌다. 법명을 그대로 따온 웅산이라는 독특한 이름 외에도 하산한 뒤 한때 록 밴드의 보컬로 활동한 경력도 특이하다. 비구니를 꿈꿨던 웅산과 샤우팅 창법으로 부르짖는 여성 로커 김은영, 재즈곡 ‘유 콜링 잇 러브’를 부르는 재즈보컬 웅산을 잇는 연결고리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불교가 추구하는 게 자기 해탈을 통한 무한한 자유예요. 재즈 속에서 록과 블루스, 클래식, 국악 등 다양한 장르를 녹일 수 있어요. 재즈의 강점은 여러 가지 시도들을 겁 없이 할 수 있다는 거죠. 재즈를 통해 해탈할 수 있고 자유를 찾을 수도 있어요.”

8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무대 위의 파워 넘치는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짙은 눈 화장과 붉은색 원피스 너머에는 여성적인 차분함이 느껴졌다.

그가 이번에 발표한 4집 ‘폴 인 러브’도 이제껏 앨범을 통해 보여 준 열정적이고 강렬한 창법과 달리 편안하고 나긋나긋한 ‘코지(cozy) 재즈’를 표방했다. 자작곡 ‘돈 크라이’를 비롯해 퀸의 ‘크레이지 리틀 싱 콜드 러브’ 등 익숙한 팝을 재즈 편곡으로 재해석했다. ‘어느새’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등의 가요를 웅산의 스타일로 부른 것도 들을 거리다.

로커를 꿈꾸던 그가 재즈 가수가 된 사연도 흥미롭다.


▲ 영상 취재 : 김경제 기자

“록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믿었는데 아무도 나를 찾지 않으니 믿음이 한순간에 깨진 거예요. 그러던 중 친구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음악이 있는데 록밖에 모르냐며 ‘빌리 홀리데이’의 앨범을 던져 줬죠. 그걸 듣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재즈라는 신흥 종교를 발견한 거죠.”

스물세 살부터 매일 재즈 클럽을 전전하던 그는 경기 성남시의 ‘음악마당’이라는 클럽 주인에게서 오디션을 제안받는다. 그렇게 해서 만난 사람이 한국 재즈의 1세대라 불리는 류복성 씨와 신관웅 씨. 대뜸 노래 한번 불러 보라는 주문에 나온 노래는 한영애의 ‘누구 없소’였다.

“매일 새로운 노래를 연습해 오라는 두 선생님의 미션에 시달렸어요. 당시는 힘들었는데 얼마 안 가서 입소문을 탔어요. 이 클럽에서 ‘김은영’이라는 애가 노래를 잘 부른다고 소문이 나면 저 클럽에서는 ‘웅산’이라는 애가 괜찮다는 소문이 나는 거예요. 둘 다 모두 나인데 말이죠.”(웃음)

5집을 벌써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는 그의 다음 앨범은 펑크 음악을 담을 예정. 하지만 “삶은 무모한 도전들의 결과물”이라는 그에게서 언제 다시 절에 들어갈지 록으로 전향할지는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같은 생각이었다.

“저도 모르죠. 록이 다시 하고 싶어지면 언제든 무대로 뛰어올라가 헤드뱅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만, 예전에 입었던 찢어진 청바지가 어디 있더라.”

음반 발매와 더불어 19일부터 3일간 서울 문화일보홀에서 단독 콘서트도 열 예정이다. 02-720-3933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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