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세상]서울서 만나는 장애극복 화가 척 클로스

입력 2008-06-24 03:01수정 2009-09-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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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저마다, 온몸으로 자화상을 그린다

열한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곧이어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 신장이 좋지 않았고 글자가 거꾸로 보이는 난독증으로 어린 시절 외톨이 신세였다. 시련은 멈추지 않아 안면인식장애로 사회생활에 고통을 겪는다. 가령 갤러리에서 본 사람을 다른 곳에서 마주치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48세에 척추장애가 왔다. 팔과 다리를 쓰지 못해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렸다. 지금은 휠체어에 앉은 채 붓을 손에 묶고 작업한다. 그는 미국의 극사실주의 화가 척 클로스(68)다.

밝고 낙천적이다. 손이 엄청 많이 가고 장시간을 요하는 작업을 즐겨 한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과 남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데서 희열을 느낀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중시하기에 그에겐 실패도 미덕이다. 골방에 틀어박혀 혼자 하는 작업보다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협업과 대중과의 소통을 선호한다. 그래서 판화는 죽어가는 장르라거나, 대작을 만들 수 없다는 세간의 생각을 뒤엎고 기념비적 작품을 선보였다. 역시 척 클로스의 이야기다.

1970년대 이후 미국 현대미술을 이끌어온 작가 중 한 명인 클로스는 작품뿐 아니라 삶으로도 사람을 사로잡는다. 줄줄이 문을 두드리는 불행을 한탄하지 않고 신나는 모험이라도 되는 양 매번 정면대결로 장벽을 넘어왔다. 최악의 상황을 견뎌낸 그를 생각하면, 대수롭지 않은 장애 앞에도 쉽게 무릎 꿇는 사람들은 사뭇 부끄럽다.

‘살아온 날들 돌아보니 온통 소요다/중간 중간 위태롭기도 했다/여기 이르는 동안 단 한 번이라도/세상으로부터 나를/완벽히 봉(封)해본 적 있던가/한 사나흘 죽어본 적 있던가/없다, 아무래도 엄살이 심했다.’(손세실리아의 ‘얼음호수’)

가족과 지인의 초상을 담은 판화도 좋지만 자화상에 관심이 간다. 안경을 쓴 채 정면을 응시한 나이든 남자의 얼굴. 거대하게 확대한 증명사진을 여러 장 펼쳐놓은 듯 보인다. 꼼꼼히 보니 판화의 제작단계에서 순차적으로 찍어낸 시험쇄들이다.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9월 28일까지 열리는 ‘위대한 모험, 척 클로스’전을 통해 그의 자화상이 판화로 탄생하기까지 그 지난한 여정에 동행할 수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알리아가 7월 19일까지 현대미술 거장이 제작한 판화와 조각을 선보이는 ‘에디션’전에서도 그의 자화상을 만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구상, 가까이에서 보면 추상같다. 화면을 격자무늬 같은 ‘그리드(grid)’로 나눈 뒤 칸마다 원 등의 형태를 복합적인 색으로 그려 넣는다. 특히 30년 넘게 다양한 기법을 연구해 온 클로스의 판화는 유화보다 큰 공력이 들어가는 ‘느림의 예술’로서 미술사적으로 유화에 버금가는 무게로 인정받는다. 유화 그리는 데 6개월, 전통 판화 장인의 도움을 받아 113가지 색채가 들어간 일본식 목판화를 완성하는 데 2년이 걸렸다.

‘위대한 모험’전에선 리놀륨에 조각하거나, 지문과 종이죽을 활용하고, 산을 부어 만드는 등 다양한 실험을 거친 판화가 선보인다. 작업과정을 고스란히 공개한 전시란 점도 특별하다. 결과물보다 ‘어떻게’를 고민하는 점에서 그는 스스로를 ‘미니멀리스트’ ‘문제를 찾아다니는 예술가’라고 말한다. “나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문제의 해결만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했다고 지적해 왔다. 그보다는 문제의 창조가 훨씬 더 흥미롭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 가장 흥미롭다. 그 질문들로 해서 우리는 곤경에 빠진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스스로에게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만 있다면 그 해결책은 저절로 생겨날 것이다.”

그를 보면, 도자기가 그렇듯 인생도 깨진 곳을 붙여 나가다 보면 더욱 강해지는가 싶다. 화가 박생광은 생전에 부처의 말을 빌려 상처투성이의 삶을 의젓하게 지탱하는 한 가지 방식을 일러주었다. ‘위답비로정상(偉踏毘盧頂上) 행배동자족하(行拜童子足下)-석가의 이마를 밟을 정도의 자존심을 가지면서도, 또한 어린애 발밑에 절할 만큼의 겸손함을 지녀야 한다.’

최근 만난 ‘망치질 하는 사람’의 조각가 조너선 보로프스키는 “내 모든 작품은 자화상”이라고 말했다. ‘이 세상 가장 먼 길/내가 내게로 돌아가는 길/나는 나로부터 너무 멀리 걸어왔다/내가 나로부터 멀어지는 동안/몸속 유숙하던 그 많은,/허황된 것들로/때로 황홀했고 때로 괴로웠다.’(이재무의 ‘먼 길’) 예술가의 작품이 자기 탐사의 여정인 동시에 자기 치유의 과정이듯 평범한 사람들은 평생을 바쳐 인생이란 자화상을 엮어낸다. 많이 부족한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더 나은 나를 위하여….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는/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너무 잘나고 큰 나무는/제 치레하느라 오히려/좋은 열매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한 군데쯤 부러졌거나 가지를 친 나무에/또는 못나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에/보다 실하고/단단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신경림의 ‘나무1’)

<끝>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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