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개혁-개방 30년]<3>깊어가는 ‘성장의 그늘’

  • 입력 2008년 3월 5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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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GDP 129위… 빈부격차에 ‘배고픈 경제대국’

《개혁개방 30년을 맞은 오늘날의 중국은 ‘하늘에 오르는 용(龍)’에 비유된다. 그러나 사회 단면 곳곳을 들여다보면 심각한 빈부 격차와 환경오염 등 당장 해결해야 할 ‘발등의 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서방 국가에서 화두로 떠오른 ‘팍스 시니카(Pax Sinica·중국 주도의 세계질서 시대)’가 아직 현실과 동떨어진 개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농민 年수입 47만원… 도시민 3분의 1도 안돼

강 70% 오염… 탄소배출 1위… 환경문제도 골치

中지도부 ‘성장통’ 치유할 발전모델 찾기 고민

○ 일당 5000원…매일 11시간 반 중노동…

중국 안후이(安徽) 성에서 베이징(北京)으로 옮겨와 8년째 미장공으로 일하고 있는 더우(竇·42) 씨의 일과는 오전 5시에 시작된다. 남들은 아직 꿈나라에 있을 시간에 흙손과 플라스틱 대야, 고무장갑 등을 챙겨 숙소를 나선다.

아침식사는 ‘더우장(豆漿·콩국)’과 팥소 없는 찐빵 ‘만터우(饅頭)’가 전부. 시간에 쫓겨 걸어가면서 먹는다. 오전 5시 반에 일을 시작해 오후 6시가 돼야 작업이 끝난다.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해도 매일 12시간 가까이 계속되는 중노동이다.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일하면 2000위안(약 26만5760원)을 번다. 그러나 이마저 8년 넘게 일한 숙련공이기에 가능한 벌이다. 중국에서 도시마다 흔히 볼 수 있는 농민공(농민 출신의 막일꾼) 중에서도 그는 형편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허난(河南) 성에서 올라온 지 1년밖에 안 된 잡부 왕우인(王武銀·45) 씨는 하루 임금이 40위안(약 5315원)이다. 한 달 1200위안의 수입으로 6명이나 되는 식구를 먹여 살린다.

“현재 수입으로 생활이 가능한가”라고 묻자 그는 “턱없이 모자란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40대 중반이라지만 얼굴은 60대 노인 같았다.

○ 빈부 격차는 영국을 훨씬 능가

중국 경제는 매년 10% 이상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서민들의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성장의 혜택이 골고루 분배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06년 농촌 주민 1인당 순수입은 3587위안(약 47만7000원). 도시 주민 1인당 1만1760위안(약 156만4080원)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상하위 계층 간 격차는 더욱 심하다. 지난해 말 유엔개발계획(UNDP)이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 중국의 소득 상위 계층의 10%가 벌어들인 수입은 전체 소득의 34.9%로 하위 계층의 10%가 번 1.6%의 21.8배였다.

1978년 개혁개방 당시 0.16에 불과했던 중국의 지니계수는 지난해 0.496으로 치솟았다. 200년 자본주의 역사를 가진 영국의 0.36(2005년 기준)보다 훨씬 높다.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0.2이면 상당히 평등한 상태를, 0.4는 상당히 불평등한 상태로 분석된다.

기자가 최근 각계각층의 중국인 100여 명에게 ‘중국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를 물은 결과 71%가 ‘빈부 격차’를 꼽았다.

후안강(胡鞍鋼) 칭화(淸華)대 국정연구센터 주임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개혁개방 이전) 비교적 평등한 나라였지만 이제는 소득의 불평등 정도가 매우 심각한 국가로 변했다”고 말했다.

○ 수출액 57%가 외자기업서 달성

올해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을 바라보고 있지만 2006년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2003달러에 그쳤다. 전 세계 209개 국가 가운데 129위로 앙골라, 아르메니아 등과 비슷하다.

세계 500대 기업에 든 중국 기업도 10년 전 5곳에서 지난해 22곳으로 늘어났지만 대부분 정부가 국유기업을 합병 또는 분할해 늘어난 것이지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500대 기업에 신규 진입한 경우는 5곳에 불과하다. 특히 브랜드 가치로 따지면 차이나모바일과 공상(工商)은행 등 단 7곳만이 500대 기업에 든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 3위의 무역대국이지만 수출액의 57.1%는 중국 내 1400여만 개 기업 가운데 4.5%에 불과한 62만300여 개의 외자기업이 달성한 것이다. 2006년 중국 관영 시장조사기관인 싸이디(賽迪)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 내 휴대전화 핵심 기술의 95%는 외자기업이 갖고 있었다.

○ 에너지 소비·환경오염이 앞질러 성장

2006년 중국의 석유 소비량은 3조4876억 t. 1990년 1억1486만 t에서 16년 사이 3배로 늘었다. 1990년 755만6000t이던 석유 수입량은 2006년 1억9453만 t으로 25.7배나 늘었다.

2006년 중국이 소모한 총에너지도 석탄 환산 기준 24억6270만 t으로 전 세계 에너지 소비량의 15.9%에 이른다. 이에 비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조6258억6000만 달러로 전 세계 GDP 48조2451억9800만 달러의 5.4%에 불과하다.

결국 GDP를 창출하기 위해 세계 평균보다 3배 넘는 에너지를 소모한 셈이다. 특히 단위소득당 소모하는 에너지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8∼13배에 이른다.

환경오염 역시 극심하다. 중국 수계의 70%는 이미 마실 수 없는 물이 됐다.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2006년 62억 t으로 미국의 58억 t을 제치고 세계 최고에 올랐다.

최근 전 세계의 눈총을 받은 식품 안전 문제와 집단 시위의 급증을 비롯해 중국이 직면한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에 따라 중국 지도부도 최근 개혁개방 30년간 추구해 온 경제발전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모습이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지난해 10월 열린 제17차 당 대회에서 과학발전관과 조화사회론을 거듭 강조한 것도 사회의 전반적인 선진화를 이룩해야 할 시급함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갖가지 난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흥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중국 경제는 아직도 여전히 빠르게 파이를 키워야 하는 단계”라며 “이런 상태에서 분배 문제와 환경오염 등 경제성장에 따른 각종 후유증이 다른 나라에 비해 일찍 불거졌기 때문에 중국 정부의 고민이 큰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 런민대 양광빈 교수

“경제 발전 하더라도 정치격변은 없을 것”

“중국이 시장경제를 선택한 이상 빈부 격차는 피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지난달 28일 중국 런민(人民)대 밍더궈지(明德國際)동 연구실에서 만난 양광빈(楊光斌·45·사진) 교수는 “영국이나 미국도 시장경제 초기에 심각한 빈부 격차와 사회 모순을 경험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양 교수는 “개혁개방 초기 다함께 부자가 될 수 없었기에 선부론(先富論)이 나왔지만 2003년 후진타오(胡錦濤) 지도부가 출범한 뒤 빈부 격차 해소를 위해 ‘조화사회론’이 등장했다”며 “중국 지도부의 이 같은 단계적 발전관은 정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 서방 학자가 “심각한 빈부 격차를 겪는 중국은 1인당 소득이 3000∼5000달러가 되면 동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는 데 대해 “한국과 대만의 경우 소득이 높아지면서 정치적 격변이 일어났지만 홍콩과 싱가포르처럼 그렇지 않은 사례도 있다”며 일반화를 경계했다.

그는 “중국인 특유의 인내심과 전통문화는 다른 나라와 다르다”며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인민의 요구가 다양해지겠지만 이것이 반드시 동란으로 이어진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2006년부터 세계에서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양 교수는 “이미 선진화된 국가들이 후발 공업국인 중국에 똑같은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다소 불공평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환경오염 문제는 중국뿐 아니라 세계 인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이므로 중국 정부도 중시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중국은 올해 6월부터 ‘수질오염예방법’을 강화하며 환경세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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