亞! 거꾸로 가는 민주화

  • 입력 2007년 10월 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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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태국-파키스탄 군사정권 폭정

필리핀-스리랑카 反정부 인사들 살해

독재정권끼리 연대… 국민 무관심 탓도

미얀마의 민주화 시위와 군사정부의 강경 진압은 아시아의 불안한 민주주의의 한 사례에 불과하다.

필리핀에선 반(反)정부 인사 탄압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베트남 정부는 지난달 다당제를 요구한 시위대를 연행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파키스탄에선 법까지 개정해 재선에 나선 현직 대통령의 출마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특히 동남아에선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달 19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 민주화를 위한 세계포럼(WFDA)’에서 참석자들은 “아시아에서 군정과 독재의 부활 조짐이 보인다”고 우려했다.

∇변함없는 군부의 힘=탄 슈웨 장군이 이끄는 미얀마 군정은 무자비한 실체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국제사회가 비난과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풍부한 천연자원을 노리는 중국, 인도 등 주변 강대국의 암묵적 지지를 업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쿠데타로 탁신 친나왓 총리를 쫓아낸 태국 군부도 막강한 힘을 휘두르고 있다. 탁신 총리의 부패에 화가 나 있던 국민은 당시 쿠데타를 반겼다. 하지만 정치에서 빨리 손을 떼고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겠다던 군부의 약속이 미뤄지자 이제는 비난의 화살이 군부를 향하고 있다.

1999년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6일 실시되는 대통령선거에서 재선이 확실시돼 파키스탄의 군정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만연한 인권 탄압, 자유 침해=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달 28일 “테러조직과 연계됐다는 주장 아래 인권운동가들의 입국까지 막으려는 필리핀 정부의 블랙리스트를 입수했다”고 폭로했다. 리스트에 오른 사람은 모두 504명.

또 필리핀 인권단체들은 반(反)정부 인사들을 겨냥한 정부의 ‘정치적 살인’이 무차별로 자행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2001년 이후 1000여 명이 살해되거나 실종됐다는 것.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스리랑카에선 지난해 1월 이후 인권 운동가 43명이 살해됐다.

정치 참여와 언론 및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례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공산당이 주도하는 베트남 정부는 여론의 다당제 도입 주장을 묵살하고 있다. 지난달 실시된 총선거에서 당선자의 91%가 공산당 소속이었다.

싱가포르도 사실상 1당 체제다. 집권 국민행동당은 의회 의석 84석 가운데 80석 이상을 꾸준히 차지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특히 언론 자유 ‘후진국’으로 분류된다. 집회를 열려면 일일이 경찰의 심사와 허가를 받아야 해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사실상 통제되고 있다.

1998년 민주화 시위로 쫓겨난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에 이어 정권을 잡은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은 민주화를 비교적 착실하게 추진하고 있지만 언론과 표현의 자유 보장에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전한 부정부패=5월 치러진 필리핀의 중간선거는 역대 최악의 폭력, 부정선거라는 오명을 남겼다. 아시아자유선거네트워크에 따르면 선거 과정에서 숨진 사람이 130명을 넘었다. 협박과 공갈로 일부 도시에서 선거가 연기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2004년 대통령선거 때 부정선거로 집권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은 남편의 부정축재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태국 군부는 군 예산을 크게 늘렸고 군 장성들에게 국영기업 운영권까지 주는 파행을 저지르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천연가스 수출로 막대한 이득을 보고 있음에도 배고픈 국민은 외면한 채 제 뱃속만 채운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퇴보하는 아시아 민주주의=프리랜서 언론인 존 페퍼 씨는 최근 한 기고문에서 “동남아에선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WFDA에 참석한 안와르 이브라힘 전 말레이시아 부총리는 “아시아 국민들은 정부가 자유를 침해하는 데도 너무 현실에 안주한다”면서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모두 경제에만 중점을 두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니트(EIU)가 선거 절차, 정부 역할, 정치 참여도, 정치 문화, 시민 자유 등 5개 분야로 나눠 평가한 2006년 민주주의 지수 순위에서 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전문가들은 아시아 국가들이 이웃 국가의 국내 문제에 눈감아주고 있어 역내 민주화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베트남의 정치 전문가 보 반 아이 박사는 “아시아 독재 정권들이 민주주의를 짓누르기 위해 서로 연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이런 현실을 짚은 뒤 “이 같은 현실이 아시아 국가들의 역내 통합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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