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고려인삼,태국사신이 루이14세에 진상”

입력 2007-09-18 06:55수정 2009-09-26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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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과 중국, 일본인들은 역사적으로 우리의 고려인삼을 어떻게 인식해 왔을까. 16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충남도 주최로 열린 ‘고려인삼의 역사 문화적 가치 재조명을 위한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자들은 “서양과 주변국들은 고려인삼을 신비의 영약이라며 구하지 못해 안달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발표된 건양대 이철성 교수의 ‘코리아-인삼의 나라’, 중국 중산(中山) 대 웨이즈장(魏志江) 교수의 ‘중국인의 고려삼 인식과 인삼무역’, 일본 텐리(天理)대 나가모리 미쓰노부(長森美信) 교수의 ‘일본에서의 조선 인삼’을 중심으로 18세기 이후 해외에 비친 고려인삼의 위상을 알아봤다.》

▽서양, ‘루이 14세 진상품’=벨기에 사람인 고셍은 1902년 펴낸 여행기 ‘조선’에서 “한국 인삼은 진귀한 특산물로 태국의 사신이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를 알현할 때 진상했다”고 전했다.

이보다 훨씬 앞서 1737년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이 발간한 ‘신중국지도첩’의 ‘조선왕국전도’에는 한복에 모자를 쓴 채 인삼을 들고 있는 조선 노인의 모습이 삽화로 실렸다. ▶그림 참조

서양인들은 조선을 본격 탐사하기 전에 이런 삽화를 통해 베일에 가려진 미지의 조선을 인식했다.

인삼의 약효와 특징에 대해서는 1711년 프랑스 예수회 선교사 자르투가 서간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서양에 처음 소개했다.

“제가 인삼 뿌리를 스케치한 후 뿌리의 절반을 날것으로 씹어 먹고 한 시간 후에 보니 맥박이 훨씬 강해져 있었습니다. 식욕이 증진되고 원기가 전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일본, ‘효녀들, 인삼 구하려고 몸 팔아’=일본은 임진왜란 이후인 1609년 조선과 다시 국교를 열었다. 당시 조선의 최고 히트 상품은 인삼이었다. 동의보감을 비롯한 조선의 각종 의학서가 전해지면서 조선 인삼의 효능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나이 어린 여인들이 조선 인삼을 구입해 부모의 난치병을 고치려고 유곽(遊廓)에서 몸을 팔았다는 이야기가 만담이나 연극의 소재로 등장했다. 또 모양이 비슷하나 독성이 있는 가짜 인삼 20∼30종이 나돌아 큰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17세기에는 실직한 무사들이 수수료를 받고 조선 인삼을 사다 주는 일을 했다. 이들은 인삼을 구하지 못하면 “고용주에게 면목이 없으니 절복(切腹) 하겠다”며 자살소동을 빚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조선 인삼을 사들이기 위해 당시 통용되던 은화보다 순도가 50%나 높은 ‘인삼대왕고은(人蔘代往古銀)’이라는 순도 80%짜리 특주은(特鑄銀)까지 만들었다. 조선 상인들이 순도가 낮은 은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중국, ‘조선 홍삼, 아편 해독에 특효’=1840년대 영국산 아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중국에서는 조선 홍삼이 해독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인기를 끌었다. 그 즈음 중국의 조선 홍삼 수입액은 최고조에 달했고 19세기 후반에는 서해상에서 홍삼 밀매가 성행했다.

1921년 고려인삼은 중국에서 600g(1근)당 130원에 팔렸는데 이는 미국산의 7배, 일본산의 30배였다.

웨이 교수는 “1919년 3월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안창호 김기원 등 인사들은 중국 동북 지역과 상하이 등지에서 고려인삼을 팔아 독립운동 경비를 마련했다”며 “한중 간 고려인삼 무역은 한국 독립운동에도 이바지했다”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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