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세상 만들기 외길… 그 큰 발자취를 기립니다

  • 입력 2007년 9월 7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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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6일 제21회 인촌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인촌 김성수 선생의 탄생 116주년이 되는 올해는 7개 부문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인사들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심사는 부문별로 전문가 4명이 참여한 가운데 두 달간 진행됐다.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과 공적을 소개한다.》

■ 교육 부문

김정배 씨 (전 고려대 총장)

“아직 수양을 해야 하는데 너무 큰 상을 받아서 송구합니다. 못 다한 일을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로 여기겠습니다.”

인촌상 교육 부문 수상자인 김정배(67) 전 고려대 총장은 교육계와 사학계에서 거둔 많은 공적에도 겸손으로 일관했다.

고려대 총장 시절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에 기숙사를 짓고 미국에 고려대 국제재단을 만드는 등 국제화에 앞장섰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속에서도 대대적인 모금으로 오히려 대학 재정을 튼실하게 하기도 했다. 교수들의 의무 강의시간을 9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이고 연구비를 올리는 대신 업적평가를 강화했다.

그의 추진력은 역사 지키기에서도 빛을 발했다.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사를 왜곡하려 하자 정부에 고구려연구재단 설립을 건의해 이사장을 지냈다. 그는 “객관적인 사료와 연구 결과로 중국에 당당히 맞선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평양과학기술대 설립 준비로 분주한 김 전 총장은 “곧 고조선과 주변국의 역사를 망라한 책을 낼 예정”이라며 “정부가 대학에 완전한 자율권을 주고 대학도 끊임없이 변화해 우리 고등교육이 일류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공적:

한국 고대사와 동북아 역사에 정통한 국내 사학계의 권위자. 고려대 사학과 교수와 부총장을 거쳐 1998년부터 4년간 14대 총장을 지냈다. 한국사연구회와 단군학회, 한국암각학회 등 역사 관련 기관의 회장 직을 지냈고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러시아와 북한 등 현장을 누비며 한국 고대사를 국제적 관점에서 조명해 방대한 저서와 논문을 냈다.

■ 언론출판 부문

남시욱 씨 (세종대 석좌교수)

“1987년 동아일보 편집국장 재직 당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을 보도하면서 정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이 똘똘 뭉쳐 연속 특종 기사를 썼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남시욱(69) 세종대 석좌교수는 40여 년 언론계 생활을 돌아보며 “당시 동아일보 보도가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다는 점에서 역사적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1962년 기자 초년병 시절 소위 ‘삼양동 기사 필화 사건’으로 구속됐다 며칠만에 풀려난 적이 있다. 그 기사는 서울 성북구 삼양동 판자촌에서 63세 노인이 굶주림과 추위로 숨졌다는 보도였다. 그러나 기아로부터의 해방을 구호로 내걸었던 군사정권은 당황했고 급기야 북한 방송이 이 사례를 들어 남한 정부를 맹비난하자 정권은 반공법상 이적 혐의로 그를 구속했다.

그는 현 정부의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도 취재 봉쇄를 통한 언론자유 침해인 만큼 꼭 막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99년 문화일보 사장을 끝으로 언론계를 떠나 언론학계로 옮긴 뒤 ‘인터넷 시대의 취재와 보도’ ‘한국보수세력 연구’ 등 연구서를 출간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공적:

1959년 동아일보 수습 1기로 기자생활을 시작해 정치부장 편집국장 논설실장을 거쳐 문화일보 사장을 지냈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과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 이사장도 역임했다. 언론사 퇴직 후 2005년 말 출간한 ‘한국보수세력 연구’는 1950년대 말부터 기자로서 정치 사회 현장을 관찰한 내용을 토대로 보수 세력의 공과를 균형 있게 다뤘다는 평을 들었다.

■ 산업기술 부문

허동수 씨 (GS칼텍스 회장)

“고유가로 온 국민이 고통을 받는 지금 이처럼 큰 상을 주신 만큼 더 좋은 에너지를 더 싸게 공급하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인촌상 산업기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허동수(64) GS칼텍스 회장은 6일 “인촌상 수상의 영광을 회사 임직원을 비롯해 국내 에너지 업계 종사자와 함께 나누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GS칼텍스는 1979년 ‘2차 오일 쇼크’로 국내에서 석유 제품 수요가 급감하자 국내 정유업체 중 처음으로 국내에서 원유를 정제해 해외에 내다 파는 ‘임가공 수출’에 성공했다. 이를 통해 1983년 정유업계 최초로 ‘수출 2억 달러 탑’을 수상했다.

허 회장은 또 1990년대부터 석유화학제품의 원료가 되는 파라자일렌 등 ‘아로마틱스’ 사업 투자에도 적극 뛰어들어 이 분야 최고의 경쟁력과 세계 최대 생산 규모(연간 220만 t)를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1994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한 뒤 도시가스사업, 민자 발전사업 등에 진출하며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의 도약을 이끌고 있다. 허 회장은 “더욱 효율적인 석유제품 생산과 미래 청정에너지 개발에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공적:

1966년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화학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1년 미국 셰브론 연구원을 거쳐 1973년 호남정유(현 GS칼텍스)에 입사해 30년 이상 에너지 분야에 종사하며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발전을 이끌었다. 오너 경영자이면서도 에너지 전문가로서 GS칼텍스가 단순 정제업에서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기틀도 마련했다.

■ 자연과학 부문

강석중 씨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오랜 전통을 가진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게 돼 정말 기쁩니다. 옆에서 제 연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제자들 덕분입니다.”

올해 인촌상 자연과학 부문 수상자인 강석중(57)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수상의 영광을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제자들에게 돌렸다.

강 교수는 자동차나 전자소자의 재료로 쓰이는 세라믹 소재의 핵심 제조 공정인 ‘소결 현상’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공로를 높이 평가 받았다.

그는 학문적 가치와 산업을 잘 조화시키는 학자로도 유명하다.

“소결은 작은 분말이 열을 받으면 굳으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현상입니다. 오랫동안 산업계에서 활용돼 왔지만 구체적으로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초연구 수준”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그의 연구는 기업들이 선호하는 기술로 정평이 나 있다. 강 교수는 기초연구를 수행하면서도 산업에 직접 응용되는 방안을 끊임없이 찾았다. F-4 팬텀 전투기의 브레이크 디스크 장치와 대전차용 철갑탄, 초강력 절삭공구 등 폭넓은 분야에서 강 교수의 연구 성과를 활용하고 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공적:

주요 학술지에 논문 200편 이상을 발표한 재료공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학자다.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와 나노과학기술연구소장을 지냈다. 프랑스 파리 6대학 등에서 쌓은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국방 연구와 신소재 공학 분야를 이끌고 있다. 대우중공업, 풍산금속, 삼성전기 등 국내 기업과 공동 연구를 통해 기초연구의 산업화에 앞장서 왔다.

■ 인문사회문학 부문

고범서 씨 (전 한림대 한림과학원 석좌교수)

“고독과 자유 속에 스스로 좋아서 하는 게 학문인데 사회적 인정까지 받게 돼 기쁩니다. 특히 우리나라 근대화의 기초를 닦아 민족의 추앙을 받는 인촌의 이름으로 50여 년 학문 연구를 인정받아 더욱 영광입니다.”

고범서(81) 전 한림대 한림과학원 석좌교수는 올해 초 평생 학문의 화두였던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사상을 집대성한 ‘라인홀드 니버의 생애와 사상’을 펴냈다. 900여 쪽에 이르는 이 책은 니버의 생애와 사상의 변천을 따라가면서 그가 저술한 책 18권을 요약했다. 1946년 서울대에 입학한 뒤 니버의 책에 심취해 1967년 41세에 니버가 봉직한 미국 유니온신학대로 유학을 떠났던 그에게는 평생의 열정이 담긴 책이다.

“니버의 실용주의적 윤리관과 정치관은 우리 시대에 절실한 사상입니다. 그러나 니버를 제대로 알려면 단편적 저술이 아니라 저작 전부를 읽어야 해요. 바쁜 사람들이 언제 그 책을 다 읽겠습니까. 그래서 나섰죠.”

그는 꼬박 4년간 이 책의 집필에 몰두하느라 바닥난 체력을 추스르자마자 다시 고대 중세 근현대 3부작으로 구상하고 있는 ‘서양윤리사상사’를 쓰고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공적:

1956년 숭실대 강사로 시작해 2007년 3월 한림대 한림과학원 석좌교수를 마칠 때까지 50여 년간 강단을 지킨 기독교 윤리학자다. 개인의 윤리적 삶과 개인들이 모여 이뤄지는 사회윤리의 차이를 천착한 20여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그 실천을 위해 고 강원용 목사와 함께 대화문화아카데미(옛 크리스챤아카데미) 운동을 이끌었다.

■ 공공봉사 부문

장순명 씨 (밀양영남병원 외과 과장)

“쑥스러워 주위에 알리지도 않았는데…. 큰 영광입니다.”

인촌상 공공봉사 부문 수상자인 장순명(65) 경남 밀양시 영남병원 외과 과장은 6일 “어려운 형제자매들을 더욱 성심으로 돕고 희망을 주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라고 밝혔다.

천주교 신자인 장 과장은 평생 봉사의 길을 걸었다.

30대 초반 정부 의료사절단원으로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2년을 지냈고 귀국 후에도 아산재단 혜성병원 외과 과장 등으로 근무하며 주말마다 의료봉사를 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충북 음성군 꽃동네 안에 있는 인곡자애병원에서 10년간 불우한 이웃과 함께했다. 2004년부터 2년간은 ‘국경없는 의사회’ 멤버로 아프리카 잠비아, 라이베리아에서 수백 건의 수술을 했다.

장 과장은 “지금 생각하면 이상을 좇아 약간은 ‘정상을 벗어난’ 삶을 살기로 결심했던 것 같지만 후회는 없다”면서도 “빠듯한 살림에 네 아이를 기르느라 아내(이영윤·60)의 고생이 컸다”고 회상했다.

지난해 12월 말 잠비아에서 귀국한 그는 1년쯤 뒤 다시 아프리카로 떠날 계획이다.

밀양=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공적:

함경남도 안변군 신고산면에서 태어나 8세 때 가족과 월남했다. 서울대 의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정부 의료사절단 단원으로 참가해 1975년부터 2년간 우간다 리라병원에서 일했다. 1994년부터는 음성 꽃동네에서 10년간 상근의사로 근무했다. 2004년부터 ‘국경없는 의사회’ 회원으로 봉사하면서 잠비아 루위아 병원에 머물렀다.

■ 특별 부문

김용준 씨 (고려대 명예교수)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잡탕 연구자인데…. 여든을 살았으니 해놓은 일이야 있겠지만 뚜렷한 업적을 남겨야 받는 상을 덜컥 주니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인촌상 특별부문 수상자인 김용준(80·한국학술협의회 이사장) 고려대 명예교수는 “나는 엉터리 약장사일 뿐”이라며 웃었다.

김 교수는 1980년부터 대우재단 자연과학분야 자문위원을 맡아 대우학술총서 출간을 주도해 왔다. 지난해 600권에 이른 대우학술총서는 인문 사회 자연과학 분야에서 국내 연구진이 이뤄낸 세계적인 성과다. 1992년부터는 계간지 ‘과학사상’을 펴내 국내 과학 담론의 활성화에 기여했다. 이 잡지에 연재한 글을 모아 출간한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2005년)는 과학과 종교의 접목에 천착해 온 노학자의 연구가 집약됐다는 평을 들었다.

그는 모태신앙의 기독교인이었으나 1948년 함석헌 선생을 만난 뒤 ‘과학 없는 종교는 미신에 불과하고, 종교 없는 과학은 흉기’라는 신념으로 과학과 종교의 접점을 찾는 데 헌신했다.

그는 “2000년부터 해 온 석학연속강좌도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공적:

박정희 정부와 전두환 정부 때 두 차례나 해직되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과학과 종교를 아우르는 지식의 구축에 몰두해 왔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 미국 텍사스 A&M대 대학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5∼1993년 고려대 화학공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씨ㅱ의 소리’와 계간 ‘과학사상’ 편집인을 지냈다.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 한국학술협의회 이사장으로 있다.

제21회 인촌상 심사위원

▽교육 △위원장: 김병수 포천중문의대 총장 △위원: 김기영 연세대 석좌교수, 정동윤 고려대 명예교수, 김병채 한양대 교수

▽언론출판 △위원장: 유재천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위원: 최현철 고려대 언론대학원장, 김경희 지식산업사 대표, 김인규 성균관대 초빙교수

▽산업기술 △위원장: 김기협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원장 △위원: 안영옥 듀폰 상임고문, 이장규 서울대 교수, 한승일 한국기계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

▽자연과학 △위원장: 한민구 서울대 교수 △위원: 김두식 연세대 교수, 금동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장진 경희대 교수

▽인문사회문학 △위원장: 홍기삼 동국대 명예교수 △위원: 김문환 서울대 교수, 신복룡 건국대 교수, 조남현 서울대 교수

▽공공봉사 △위원장: 김성이 이화여대 교수 △위원: 강철희 연세대 교수, 최균 한림대 교수, 한혜빈 서울신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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