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세속 번잡 내려놓고 겨울 수묵화속으로

  • 입력 2007년 1월 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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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 수백 년의 주산지 왕버드나무는 꽁꽁 얼어붙은 저수지의 얼음판 위에서도 그 우아한 자태를 잃지 않는다. 조성하 기자
수령 수백 년의 주산지 왕버드나무는 꽁꽁 얼어붙은 저수지의 얼음판 위에서도 그 우아한 자태를 잃지 않는다. 조성하 기자
찬란한 햇볕이 쭉쭉 뻗은 잎갈나무 숲속에 따사로이 내리쬐던 어느 겨울 아침 주산지로 오르던 산길에서 만난 풍경이다. 조성하 기자
찬란한 햇볕이 쭉쭉 뻗은 잎갈나무 숲속에 따사로이 내리쬐던 어느 겨울 아침 주산지로 오르던 산길에서 만난 풍경이다. 조성하 기자
물에 말기 전의 포항 물회. 죽도어시장 안 영광횟집.
물에 말기 전의 포항 물회. 죽도어시장 안 영광횟집.
■ 경북 내연산-주왕산 겨울여행



한겨울 찾은 산사의 오솔길. 낙엽은 지고 인적은 끊겨 호젓하기 이를 데 없다. 잿빛 하늘의 구름에 가린 해. 뿌연 해무리가 아름답다. 옮기는 발걸음 아래 바삭거리는 낙엽소리는 정취 있다. 재촉하는 이도 없고 할 일 없이 쏘다녀도 좋은 한가한 겨울날. 그곳에서 만나는 이런 풍경이 좋다. 경북 포항 내연산의 보경사 계곡, 청송 주왕산의 주산지로 겨울여행을 떠나보자.

○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 무대인 내연산 계곡

놀라는 이는 기자뿐이 아니다. 모두가 마찬가지다. ‘아니, 이렇게 좋은 데가 있었다니.’ 보경사 계곡(내연산 보경사 군립공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산사로 오르는 도중은 실망의 연속이다. 줄지어 들어선 식당이며 기념품가게 때문. 그러나 일주문 지나 경내를 둘러본 뒤 계곡의 오솔길로 접어든 이후는 생각이 바뀐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거기서 감탄사는 터져 나온다.

포항사람들이 이곳을 ‘소금강’이라고 소개했을 때만 해도 허풍기로 여겼다. 그러나 점입가경 펼쳐지는 아름다운 계곡 풍광에 이제는 표현의 한계를 느낀다. 겸재(정선·한국적 진경산수를 화폭에 펼친 조선중기 화가)라고 달랐을까. 1733년 이곳 청하 현감에 제수된 겸재. 그 역시 이 계곡에서 이 산수에 취해 그림을 그렸으리라. 나처럼 그 한계를 한탄하면서. 당시 그의 눈에 비친 산수풍광은 지금 ‘내연산 삼용추’라는 그림에 그대로 남아 있다.

하얀 바위로 이뤄진 수려한 계곡. 한겨울에도 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큰 산의 깊은 계곡은 이렇듯 물이 마르는 법이 없다. 바위 위로 펼쳐진 산등성. 거기는 늠름 담대 호기 청청의 낙락장송들 무대다. 큰 바위 하나를 움켜 쥔 절벽의 노송 하나. 지묵에 농담 짙은 동양화 한 폭이 따로 없다.

계곡의 가장자리로 난 오솔길. 한 사람이 걷기 딱 좋을 만큼 좁다. 가파르지도, 험하지도, 그렇다고 단조롭지도 않다. 바위도 지나고 흙길도 만난다. 이리 굽고 저리 돌고.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걸어도 좋을 것이다. 왼편으로 펼쳐진 계곡의 풍광. 크지도, 작지도 않아 두 눈에 담기에 적당한 규모다. 그러나 30분쯤 지나 고개 하나를 넘으면 계곡은 어마어마한 크기로 확대된다. 폭포 지형은 게서 시작된다. 십이폭포의 이 계곡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쌍생폭포가 거기 있다. 두 물이 한 소(沼)에 동시에 추락하는 흔치 않은 비경이다. 폭포경관 중 백미라는 관음폭포는 예서 40분쯤 더 올라야 만난다. 여기까지는 산보 걸음으로도 갈 수 있다.

신라 때 창건된 보경사는 내연산 계곡의 명당에 깃들인 고찰이다. 태백준령 깊은 골 안에서도 내연산 연봉에 반달 모양으로 둘러싸인 형국이다. 적광전 대웅전 등 당우 14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듯 그 배치가 정답다. 적광전 문지방 아래의 목제 해태 상과 그 아래 놓인 옥돌받침은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귀한 유물이다. 부도와 원진국사비 역시 보물로 지정된 귀중한 유산이다. 절 입구에 놓인 화강암 수반. 그 감로수의 수면에 비친 절 풍경은 절대로 놓치지 말자.

○ 얼음에 갇힌 왕버들 풍경이 아름다운 주산지

겨울 주산지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세 철 내내 늘 명경지수를 유지하며 물에 잠긴 왕버드나무를 거울처럼 오롯이 담아내던 유리수면. 마침내 동장군에 밀려 잿빛 무채색의 얼음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 역시 멋지다. 왕버드나무도 마찬가지다. 이파리가 모두 떨어져 나가 볼품없이 변했지만 우아한 자태만큼은 이전과 진배없다.

물 대신 얼음 천지로 변한 겨울 주산지. 얼음판 위로 거뭇거뭇 드리운 나목 그림자는 색다른 멋을 풍겼다.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 다가오는 자연의 형상. 사람의 짧은 생각으로는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못하는 한계 너머의 초월적 실체이기에 멋지고 값지다.

주산지를 둘러싼 호반의 오솔길. 얼음호수를 걷는 맛도 좋지만 주산지로 오르고 내리는 산길 역시 매력적이다. 불과 10여 분이면 오르는 호젓한 산길. 한 시간이라도 내내 걷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햇볕 따사로이 내리쬐는 겨울 아침이면 더더욱 그렇고. 벌거벗은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순도 100%의 햇볕샤워 덕분이리라. 사족 하나를 붙인다면 주산지는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김기덕 감독)에 등장하는 바로 그 연못이다.

포항·청송=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과메기를 알았다면 이젠 물회를 느껴볼 때

포항 물회. 그 맛을 한번이라도 봤다면 절대 잊지 못하는 우리네 토종음식이다. 비린내는커녕 깔끔하면서도 구수하고, 동시에 고소하기까지 하다. 고추장을 푼 칼칼한 국물은 생선국 이상으로 입맛을 당긴다. 숙취에 회 한 점이 부대끼는 속을 진정시키기에 그만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러나 아침 해장거리로 물회를 들이켜 본 술꾼들은 모두 안다. 숙취로 쓰린 속 다스리기에 이 물회만 한 것이 없음을.

생선회라면 세상 지존임을 자칭하는 일본인. 그들도 ‘물회’라고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렇게 되묻는다. “아니, 생선회를 물에 말아 먹어요?”

그런 ‘엽기적인’ 조리법이 일본에는 없어서다. 그런 ‘무지’가 우리라고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아직도 전국화되지 못한 채 포항 이북 동해안에서나 맛볼 수 있는 희귀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회 맛을 제대로 보자면 그 본산인 포항으로 가야 한다.

포항에서 물회는 ‘참새 방앗간’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포항에서 물회 한 사발을 들이켜지 않고는 못 배긴다. 과메기처럼 물회 역시 포항의 토속음식이다. 어느 날 갑자기 상품화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뱃전에 던져 둔 잡어 몇 마리 주워 그 즉시 채 친 뒤 고추장에 비빈 다음 물에 말아 후루룩 들이켜며 고기잡이 다녀와 출출한 속을 달래던 어민의 소박한 ‘패스트푸드’가 물회다.

그런 물회도 사실 들여다보면 별것 아니다. 국수 가락처럼 썬 생선회에 채 친 무와 배를 올리고 그 위에 참기름 두른 뒤 고추장에 비빈 다음 맹물에 부어 만 것일 뿐. 그러나 포항 밖 어디서고 그런 물회를 맛보기란 쉽지 않으니 대체 그 맛의 비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찾은 곳이 포항 시내의 죽도어시장이다. 포항 물회가 상품화된 곳이다. 그 주역은 이곳에 좌판을 펼쳤던 억척순이 ‘포항 아지매’들. 투박한 사투리와는 달리 솜씨 좋게 채 친 생선살을 야채와 함께 고추장에 양념 얹어 사발 한가득 담아내고, 숙취로 쓰린 속 풀라고 거기에 맹물을 부어 후루룩 들이켜게 했던 생선다듬기의 ‘타짜’들이었다. 그 역사도 벌써 50년. 이제 물회는 포항의 간판 먹을거리가 됐고 점차 외지인의 입맛까지도 길들이고 있다. 장담하건대 과메기처럼 물회가 전 국민의 입맛을 사로잡을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포항 사람들 말은 한결같다. 물회는 죽도어시장에서 먹어야 제 맛이고 제격이라고. 그 이유는 뭘까. 죽도어시장을 찾았다. 회 맛의 핵심은 당연히 싱싱한 생선. ‘그러면 그렇지.’ 기자 눈에 그 해답이 보였다. 시장 안에 자리 잡은 공동어판장과 어선이 수시로 오가는 어판장 앞으로 난 물길(동빈 내해)이다. 1년 365일 쉼 없이 열리는 이 재래시장. 그 어물전에 나오는 생선은 매일 오전 6시면 경매가 시작되는 이 어판장에서 공급된다. 이 점은 다른 수산시장과 별다를 것이 없다.

그런 죽도어시장에 ‘비밀병기’가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어판장과 한길 사이의 물길. 밤새운 그물질에 잡혀 선창 물속에 담겨 온 펄펄 뛰는 산고기가 곧바로 이 수로를 통해 시장까지 운반돼 활어 위판장을 통해 상점과 노점에 뿌려진다. 양식된 활어는 여느 시장과 마찬가지로 탱크에 실려 시장에 운반되지만 이 역시 물가에 자리 잡은 천혜의 위치 덕분에 운반거리가 짧아 선도가 뛰어나다. 그런 형국이니 죽도어시장에서 생선 싱싱함의 등급을 물으면 잔소리가 되고 거기에 토를 달면 헛소리가 된다. 부산 자갈치시장과 포항 죽도어시장의 공통점. 그것은 똑같은 위치와 방식에서 온다. 생선 횟감의 가격은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저렴하다. 최근 대구포항고속도로 개통(40∼50분 소요)으로 주말이면 더더욱 붐빈다.

○ 여행정보

◇포항 죽도어시장 ▽주소=포항시 북구 죽도1동 574-1(죽도어시장 상인회) ▽주차=시장 주변에 3000대 주차 공간. 공동 어판장 건너편 물가에 버스전용 주차장(11대분). ▽문의=죽도어시장 상인회 054-247-0180 ▽횟집=식당 60여 곳, 생선코너 200곳. 4년 전부터 정비사업을 펼쳐 시장통이 넓고 깔끔해졌다. 물회는 모든 식당에서 낸다. 고래고기 전문점도 두 곳 있다. △영광횟집: 사철 나는 광어 도다리 우럭을 주로 쓰는데 물회 한 사발에 1만 원. 해삼물회(1만5000원) 전복물회(3만 원) 등 주문형도 가능. 054-247-0180

포항=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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