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개혁 피로’가 저항 불렀다

  • 입력 2006년 9월 21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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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반정부 폭력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17일 부다페스트에서 시작된 시위는 사흘째인 19일부터 전국의 중소 도시에서 동시 다발 시위로 이어졌다. 부다페스트에서는 강경 진압에 흥분한 군중이 상가 유리창을 부수는 등 폭력 양상도 확대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1980년대 말 공산정권 붕괴 이후 최초의 폭력 시위로 꼽히는 이번 시위의 배경으로 ‘개혁에 뒤따른 피로’를 꼽았다. 2004년 유럽연합(EU) 가입 이후 EU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잇따라 실시한 긴축 정책에 국민의 불만이 쌓여 온 결과라는 분석이다.

∇시위 규모·강도 확대=19일 저녁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앞에는 1만5000여 명이 모여 총리 퇴진과 정부의 개혁 조치 철회를 요구하며 자정이 넘도록 시위를 벌였다. 수천 명은 여당인 헝가리사회당(MSZP) 당사 쪽으로 몰려가 최루가스를 쏘며 진압에 나선 경찰에 돌과 폭죽으로 격렬하게 저항했다. 강경 진압으로 흩어진 군중은 인근 로코치 거리에 재집결해 상가 유리창을 부수고 지방선거 벽보를 찢는 등 과격한 양상을 보였다.

이날 미슈콜츠를 비롯한 대부분의 중소도시에서 동시 다발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개혁 피로 쌓인 동유럽=헝가리 정부는 유로화 도입을 위해 2009년까지 재정적자를 EU 기준인 국내총생산(GDP)의 3%대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정부는 부가세 인상, 무상 고등교육 및 의료서비스 폐지 등 일련의 긴축 정책을 실시했다. 당연히 국민의 불만은 고조됐고, ‘정부가 거짓말만 해 왔다’는 페렌츠 주르차니 총리의 실토가 공개되면서 폭력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

유럽정책연구소의 세바스티안 쿠르파스 연구원은 “동유럽 국가들은 EU 가입을 위해 개혁을 거듭한 끝에 목표를 달성했지만, 이제 사람들은 기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개혁 피로를 느끼는 중이다”라고 지적했다.

같은 해 EU에 가입한 동유럽 국가들에서 이 같은 개혁 피로는 공통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6월에 실시된 슬로바키아 총선에서 강도 높은 경제 개혁을 추진해 온 여당이 패배하고 분배를 중시하는 스메르당이 집권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연금 수혜자와 저임금 근로자를 중심으로 정부의 개혁에 대한 불만이 확산돼 왔으며 스메르당은 이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총선 승리를 이끌어냈다. 폴란드와 라트비아에선 7월 총선에서 극우파가 득세해 보수파 정부에 합류했다.

체코의 정치평론가 지리 페헤 씨는 “EU에 가입하기 위해 실시된 개혁이 희망과 함께 커다란 좌절도 안겨줬다. EU에 가입하기 위해 참아왔던 것들이 이제 터져 나오고 있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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