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맛따라]도다리로 끓여낸 쑥국… “입맛은 이미 봄”

  • 입력 2006년 3월 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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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시 한산도 제승당 수루에서 본 한산대첩의 현장, 한산만. 거북등대 뒤로 안개에 가려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통영과 다리로 연결된 미륵도의 미륵산이다. 통영=조성하 여행전문기자
경남 통영시 한산도 제승당 수루에서 본 한산대첩의 현장, 한산만. 거북등대 뒤로 안개에 가려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통영과 다리로 연결된 미륵도의 미륵산이다. 통영=조성하 여행전문기자
《바람은 아직 차갑건만 이곳저곳에서 피어나는 봄기운은 놓칠 수 없다. 절기는 입춘 우수를 지나 경칩(6일)을 바라보는데 사람들의 옷차림은 겨울. 아직도 봄이 양지 녘에 길게 누운 게으른 고양이의 털끝에 머문 줄 아는 듯하다. 이번 ‘맛 따라 길 따라’는 봄맛을 찾아 떠난다. 봄 도다리로 쑥국을 끓여 새봄을 숟가락째 떠먹는 청정해역의 통영(경남)을 찾았다.》

한산도 동백은 아직 꽃망울을 맺지 못했다. 그래도 봄은 통영 도처에서 가득하다. 시장의 좌판, 양지바른 언덕, 식당 상차림 등. 오전 4시의 통영 서호시장. 좌판 빼곡한 시장통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장어, 도다리, 졸복, 아구, 물메기, 멍게, 해삼, 굴, 파래, 미역…. 바다를 통째로 퍼부은 듯 별별 해물이 다 있다.

봄의 미각, 도다리. 시장에 널려 있는 도다리는 대부분 산 것이다. 어른 손바닥보다 큰 놈으로 네 마리를 샀다. 방금 위판장에서 나온 팔팔 뛰는 것들인데 네 마리에 1만 원만 내란다. 도다리가 ‘봄맛의 대표선수’가 된 사연.

“요마이에(이맘때) 꿀(굴)캉(과) 홍합캉 모다(모두) 묵기(먹기) 시작하몬 살이 도톰하게 오르지예.”

물고기도 수온이 내려가는 겨울에는 먹이를 잘 먹지 않아 살이 빠진다고 한다. 그러다 계절이 바뀌고 수온도 오르면 먹잇감을 찾기 시작해 살도 오른다. 그래서 이맘때의 도다리가 인기를 끈다는 것이다.

오전 4시부터 경남 통영과 거제의 식당 주인들로 북적대는 서호시장 어물전.

경남 사람들은 생선국을 즐겨 먹는다. 그 국거리는 복어 광어 장어 갈치 등 주로 흰살 생선이다. 심지어는 고등어로도 국을 끓여 내는데 신기하게도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도다리도 국으로 끓여 내는데 그것이 요즘 식도락가의 까다로운 입맛을 한번에 잠재운 ‘도다리쑥국’이다. 야들야들한 살로 맛깔스러운 국물을 우려낸 봄 도다리. 그 국에 봄 내음 향긋한 쑥을 넣으니 봄의 미각으로 이만한 게 있을까.

한려수도 바다 생선의 집하장인 통영의 봄맛. 여기서 그칠 리 없다. 겨울 진미 굴이 들어가면 멍게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 사철 잡히는 멸치도 이맘때 잡히는 놈은 회무침으로 오르는 또 다른 봄의 전령이다.

도다리와 환상의 조합을 이루는 쑥은 섬마을 아낙네들이 밭이랑이나 둔덕에서 따는 여린 것이다. 청정해역의 맑은 공기 속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자란 쑥. 그 자체가 자연의 맛이다. 통영 도다리쑥국이 관심을 끄는 것은 이처럼 순수한 자연의 맛을 간직한 덕분이다.

식도락을 여행의 화두로 삼은 이가 이곳을 찾는다면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더 있다. ‘통영 다찌’라는 독특한 음주 문화를 가진 주점이다. 마산의 통술집, 전주의 막걸리집처럼 술값에 안주값을 포함해 받는 형태다.

충무교 아래 바닷가의 통영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빌딩 안에 ‘통영 다찌’(055-649-5051)를 찾았다. 주문은 ‘술 몇 병’이 전부다. 소주는 병당 1만 원, 맥주는 6000원. 테이블당 기본 3만 원. 그러면 안주는 술의 양에 맞춰 계속 나온다. 주로 통영 앞바다에서 나는 싱싱한 해물이 회, 조림, 구이 등으로 나온다. 통영의 바다 맛을 보자면 다찌 집이 최고다.

○ 여행정보

▽찾아가기=대전통영고속도로 이용. 판교에서 4시간. ▽꼭 찾아볼 곳 △서호시장: 오전 4시에 개장. 새벽에는 통영 거제의 식당주인이 생선과 야채를 사느라 북적댄다. 여객선터미널 앞. △한산도: 통영항에서 카페리로 25분 거리(6.7km). 한산대첩 현장이 내려다보이는 제승당(이순신 장군의 삼도수군 본영)은 가볼 만한 곳. 해안도로(총 13km)는 드라이브 명소로 예스러운 섬마을이 인상적이다. 유성해운 055-645-3329 △통영유람선터미널: 매물도, 해금강, 한산도행 유람선 출발. 멸치 등 건어물(대전건어물 055-644-6505)과 생굴(대양수산 011-864-2017)도 판다.

▽패키지 여행=통영(서호시장 새벽장 보기)과 소매물도를 들르는 무박 2일 일정. 4일 출발(서울), 5만8000원. 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720-8311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비린내 없는 통영 생선국 비결은 된장

50년 전통의 서호시장 안 ‘원조 시락국’ 식당. 장어를 13시간 넘게 곤 육수의 맛이 일품이다.

생선국 하면 이맛살을 찌푸리는 이가 많다. 비린내 때문. 그러나 통영 생선국을 맛보면 달라질 것이다. 살아있는 생선, 담백한 양념, 다듬는 방법 등이 어우러져 비린내 없이 바다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어머니에게 전수받은 대로 도다리쑥국을 37년간 끓여 온 ‘분소식당’ 여주인 김명숙(42) 씨에게 맛의 비결을 물었다. “비결예? 글쎄예, 뭐라카꼬….” 김 씨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도다리쑥국을 소개했는데 정리하면 이렇다.

도다리는 산 놈만 쓰고 요리는 주문받은 즉석에서 한다. 조리법은 간단했다. 물에 소금 간을 약간 하고 무를 넣고 끓이다가 생선을 넣는데 쑥은 먹기 직전에 넣는다. 비린내를 없애는 요령은 된장. 물이 끓을 때 약간 넣는다. 한 그릇에 7000원. 유람선 횟집(055-646-5859) 등 통영시내 대부분의 횟집에서 먹을 수 있다.

이 집의 생선국은 다양하다. 장어를 토막 내 콩나물에 고춧가루 풀어 끓이는 통영식 장엇국과 맑게 끓여 내는 복국은 사계절용. 5월 장갱이 매운탕, 여름 쑤기미 매운탕, 겨울 물메기탕은 계절음식이다. 생선회도 내는데 대부분 뼈째로 썰어낸다. 여객선터미널 앞. 오전 6시∼오후 7시 영업, 매월 첫째 월요일 쉼. 055-644-0495

두 번째는 ‘시락국’이다. 배추나 무의 부산물인 시래기로 끓인 된장국을 경상도에서는 시락국이라고 부른다. 서호시장의 대장간 골목에는 50년째 장어로 시락국을 끓여 내는 ‘원조 시락국’이 있다.

오전 3시 반. 식당 문이 열리자 홀 안 좌석(15개)은 금방 동이 난다. 모두 위판장을 찾은 어민과 상인들. 여주인은 무쇠 가마솥에서 연방 국을 퍼 나르고 식객들은 테이블 앞에 늘어선 반찬통에서 원하는 반찬을 접시에 담기 바쁘다. 된장에 박은 고추, 젓갈, 무채, 김치…. 반찬 수는 열다섯 가지. 생선젓갈만 빼고 모두 야채다.

처음 온 손님에게는 식사법을 알려 준다. “국에 제피(산초가루) 좀 치고 정구지(부추)도 듬뿍 넣으이소. 다지기(다진 양념)는 여(여기에) 있고….” 15년 전 어머니(4년 전 작고)에게서 물려받아 부인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김태선(55) 씨의 설명이다.

김 씨가 냉장고 문을 열고 찜통을 보여주는데 거기에는 곰국처럼 하얀 기름으로 덮인 국물이 있었다. 장어를 13시간 이상 곤 육수다. 창고에는 지난가을 수확한 무청을 절인 시래기가 대형 플라스틱통 안에서 숙성 중이었다. 시래깃국 맛은 이런 정성에서 비롯된다. 말이(국에 밥을 만 것) 3000원, 따로(국 밥 따로 제공) 4000원. 오전 3시 반∼오후 6시 영업. 서호시장 안(여객선터미널 앞). 055-646-5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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