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콘서트 여는 직장인 트리뷰트 밴드 연습실을 가다

입력 2005-11-26 03:01수정 2009-09-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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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영부인 밴드’의 정관훈, 신창엽, 안철민, 전홍석, ‘더 애플스’의 정우철, 표진인, 김준홍, 박용준 씨. 김재명 기자
“위 아 더 챔피언∼, 마이 프레엔즈∼.”

23일 오후 10시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건물. 고요한 주택가에 영국 출신의 록 밴드 ‘퀸’의 히트곡 ‘위 아 더 챔피언‘이 울려 퍼졌다. 진원지는 건물 지하 연습실. 노란 재킷에 흰 바지를 입고 콧수염을 붙인 한 남자가 열창을 하고 있었다. 모습뿐만 아니라 창법까지도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를 빼닮았다. 같은 시간 연습실 한쪽에서는 뾰족 구두, 보안관 재킷 등으로 ‘비틀스’ 복장을 한 남자 네 명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 벌써 10시네. 이제 슬슬 몸이 풀리는데…. 우리도 연습해야지.”

“지금까지 티켓 6장 팔렸대. 근데 3장은 내가 아는 사람이 산 거야….”

진짜라 하기엔 어딘가 어색한 이들. 얼굴에 주름도 지고 배도 나온 영락없는 직장인들이었다. 진짜보다 2% 부족하지만 즐거운 그들은 바로 직장인 트리뷰트 밴드인 ‘영부인 밴드(0vueen band)’와 ‘더 애플스(The apples)’.

이들이 26일부터 내년 5월 27일까지 6개월간 월 1, 2회 비정기적으로 서울 종로 시네코아 채플린홀에서 합동 콘서트 ‘록 프라이드 비틀스 VS 퀸’을 연다. 4 대 4로 ‘맞장’을 뜨는 이들에게 라이벌 의식이나 승패는 관심 밖이다. 그저 ‘음악’을 할 수 있기에 퇴근 후가 즐거울 뿐이다.

▽정관훈(29·영부인 밴드·전자부품 엔지니어)=1997년 PC통신 ‘나우누리’에서 ‘퀸 동호회’를 제가 직접 만들었는데 다들 그때 만났죠. 처음엔 그냥 동호회였는데 어느 날 진짜 ‘퀸’처럼 우리가 연주하고 노래해 보자 해서 2000년 밴드를 만들게 됐어요.

▽표진인(39·더 애플스·정신과 전문의)=저희 형하고 저, 그리고 준홍이 형이 고등학교 때부터 ‘비틀스’ 마니아였어요. 어느 날 형이 프랑스의 ‘비틀스’ 트리뷰트 밴드인 ‘겟 백 밴드’ 공연을 보고 “우리라고 못할 거 있느냐”며 밴드를 결성했죠. 그 후 형은 탈퇴했고 2002년 인터넷을 통해 나머지 두 멤버를 영입해 밴드를 만들었어요.

트리뷰트 밴드는 특정 밴드를 흠모하는 뜻에서 만들어지는 밴드다. 그들의 음악을 비롯해 패션까지 완벽히 모방하는 것이 트리뷰트 밴드의 목표. 전문 뮤지션이 아닌 ‘영부인 밴드’와 ‘더 애플스’ 멤버들은 이를 위해 철저한 이중생활이 필수다. 낮에는 조신한 직장인이지만 밤이면 열정적인 뮤지션으로 변신해야 한다.

▽안철민(32·영부인 밴드·무역회사 근무)=부모님 몰래 밴드 활동을 하니 어떨 땐 베이스 기타 가지고 나가다 걸려서 혼나기도 하죠. 지금도 부모님은 음악 그만하고 빨리 결혼이나 하라고 성화세요.

▽김준홍(44·더 애플스·건설업)=저도 처음엔 아내 몰래 밴드 활동 했어요. 일요일에 연습실에 갈 때면 산에 간다고 말하고 배낭을 메고 나왔어요. 지금도 고가의 악기를 아내 몰래 사요. 그래도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저보다 존 레넌을 더 좋아하는 걸 보면 신기해요. 아들도 밴드 하면 어쩌죠?

‘영부인 밴드’는 ‘퀸’을 한국식으로 해석한 것. 내친 김에 이들은 ‘퀸(Queen)’의 ‘Q’를 숫자 0과 ‘v’로 나눠 ‘0vueen(영부인)’이라는 기발한 단어를 만들었다. ‘더 애플스’의 경우 ‘비틀스’가 만든 레코드사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직장 동료들은 이들을 보며 “부럽다”지만 부러움 뒤에는 감수해야 하는 나름의 고통이 있다.

▽신창엽(31·영부인 밴드·반도체 엔지니어)=제일 힘든 건 멤버들과 시간 맞춰 만나는 거죠. 또 퇴근 후에도 몇 시간 동안 연습하니 육체적으로 견디기 힘들 때도 있어요.

▽정우철(36·더 애플스·음식점 매니저)=음악이란 정답이 없는 건데 저희는 정답이 있는 음악을 하잖아요. 똑같이 연주하지 못하면 관중한테 욕먹는 건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도 이들은 “공연장 조명이 켜지고 관중의 함성을 들을 때면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고 말했다.

▽김준홍=사실 우리도 국민연금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자녀 교육은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평범한 직장인들이랍니다. 다만 청년시절 음악에 쏟았던 열정을 잊지 못해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는 것뿐이에요. 우리와 같은 30, 40대들이 우리를 보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전홍석(30·영부인 밴드·음향 엔지니어)=비록 아마추어 직장인 밴드지만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퀸’을 6개월간 확실히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더 애플스’ 멤버들, 이 말에 노려보며 말했다.

“너무 자신감 보이는 거 아니야? 우리 ‘더 애플스’도 파이팅이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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