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당]고교평준화 재고

입력 2005-07-21 03:10수정 2009-10-01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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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평준화를 재고해야 한다”는 18일 정운찬 서울대 총장의 발언을 계기로 30여 년간 시행돼 온 고교평준화 제도에 대한 논란이 재개되고 있다. 국가경쟁력을 생각해서라도 하향 평준화를 불러온 고교평준화 제도를 재검토할 때가 됐다는 문제 제기와, 고교평준화가 학력을 저하시켰다는 연구 결과는 없으며 학교의 지나친 입시기관화를 막는 데 기여한 정책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선택권 보장 당연▼

평준화 제도는 1970, 80년대에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국가가 학교와 교육 내용과 평가 등을 표준화하고 이것의 전체적인 질을 높이고자 하였다. 그래서 양질의 교육이 값싸고 신속하게 보급될 수 있었다. 게다가 중하위층 학생들의 학력을 끌어올려 학력 신장에도 기여했다. 평준화는 이처럼 산업화시대, 소품종 대량생산시대에는 나름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고 본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급격하게 산업사회에서 글로벌 지식기반사회로 변하고 있다. 세상이 변하면 장점도 단점으로 곧장 전화하는 법이다. 평준화제도는 어떠한가.

평준화는 모든 것을 표준화하는 체제다. 평준화를 단지 ‘학군별로 무작위로 학교를 배정하는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본질을 파악하기 어렵다. 평준화는 학교를 표준화하고, 교육 과정, 교육 내용, 교육 방법 등을 표준화하고 평가와 입시도 표준화한다. 그리고 표준화된 매뉴얼대로만 하면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교육’ 그리고 그 결과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자유주의교육과는 대조가 된다.

평준화 체제는 교육에 있어서 계획경제, 정경유착과 같다. 계획경제와 정경유착하에서는 창의성을 살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 기술개발이나 경영혁신보다 권력과 결탁하는 게 유리하다. 마찬가지로 평준화하에서 교장은 학교를 특성화하기보다는 교육청과 좋은 관계를 맺어 예산을 더 많이 받아오기 위해 노력한다.

교사는 지역 및 학생의 특성에 주목해 특성화된 교재를 개발하기보다는 이미 표준화돼 있는 교재를 적용하는 데 주력한다. 학생은 자신의 적성이나 소질을 살리는 학교를 선택하지 못하고 교육 환경이 좋은 학군을 찾는 길밖에 없게 된다.

평준화는 교육의 형평성을 오히려 저하시키고 있다. 평준화는 부산물로 명문 학군을 만들었다. 서울의 강남 등 전국의 ‘교육특구’들은 부유층이 아니고는 진입하기 어렵다. 게다가 부유층은 평준화로 인한 교육의 손실을 사교육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만회한다.

결과적으로 평준화는 교육에 의한 사회계층의 고착화를 강화한다. 현 정부가 부동산 가격 안정을 지향했으나 시장원리를 무시한 결과 무참하게 실패했던 이유를 평준화에서도 발견한다.

교육은 전 국민의 관심사이다. 그리고 국민의 교육적 수요는 다양하다. 평준화를 원하는 국민도 많거니와 평준화를 반대하고 수정을 원하는 이도 많다. 그러므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다양한 교육선택권을 보장해 어느 계층도 국가사회로부터 소외받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따라서 학교는 다양할수록 좋다. 또 교육은 특성화, 전문화될수록 좋다. 평준화를 원하는 국민을 위해서 평준화 학교도 둘 일이다. 그리고 학교별 시험을 통해 선발하는 학교, 또는 무시험을 통해 선발하는 학교 등도 보장해야 한다. 학생과 교사로 하여금 ‘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자유주의교육도 당연히 인정받아야 한다.

21세기 교육은 공정성과 형평성을 추구하는 국가보다는 창의성과 수월성을 추구하는 자유로운 민간에 의해 준비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명희 공주대 교수·역사교육학

▼획일적 입시교육 회귀▼

중학교 졸업생 중 98% 이상이 고교에 진학한다. 고교 졸업생 중 80% 정도가 대학에 진학한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중고교를 다닐 때와는 몹시 다른 상황이다.

서울대를 졸업한 두 분 선생님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정 총장의 고교평준화 재고 필요성 주장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한 분은 중고교를 다닐 때 앞에서 세 번째 줄 이후에는 앉은 적이 없다고 했다. 대학 4학년 때 교생실습 나가서 교실 뒤에서 수업을 참관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바라본 교실은 정말 ‘새로운 세계’였고 자못 충격적이기까지 했단다.

또 한 분은 과학고를 졸업하고 서울대에 진학하신 분이다. 그 선생님은 입학 후 1, 2학년 때에는 크게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고교 시절의 심도 있는 교육을 이어나갈 교육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 총장의 평준화 재고 이야기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른 자리에서 몇 차례 비슷한 형태의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그 발언에 깔려 있는 논리를 접하면서 ‘세대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소수의 성적 우수자들만이 교육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그 시절의 교육 형태를 최선의 교육으로 착각하는 인식의 한계다. ‘성적 우수자만이 엘리트’라는 폐쇄적 사고가 무섭다.

또 특기, 적성, 흥미, 관심이 다른 각각의 학생에게 획일적 입시교육만을 강요하는 것을 극복하자는 그동안의 교육개혁 운동을 비웃는 듯하다. 획일적 입시교육의 폐해는 ‘교실 뒷줄의 새로운 세계’에서 보듯 여전히 엄존하고 있는데 말이다.

5만∼10만 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 영재를 얘기하는데, 나는 그런 식으로 부양받고 싶지 않다. 또 부양대상으로 전락한 5만∼10만 명에 속하는 사람들은 어떤 심정일까? 만일 그 영재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생각이 없다면 또 어떻게 되는가? 최근의 국적포기 사태가 말해 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영재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재가 길러지는 과정이다. 대중적이고 민주적인 과정을 거쳐 공동체적 가치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인간의 얼굴을 한 영재’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영재는 탁월한 자기능력을 공적 유익을 위해 쓰지 않고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만 몰두하게 될 수도 있다. 교실에서 앞만 보는 교육을 강요하지 말자. 옆도 보고 뒤도 보고, 교실 밖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지식기술자가 아닌 지성인을 길러야 할 것 아닌가?

정 총장은 특수목적고에서 조기 영재교육을 받은 학생과 일반계 고교 출신 입학생에게 같은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서울대의 현실, 고교 평준화를 결과의 평균화로 왜곡하면서도 막상 선별된 교육을 받은 학생들에게 그에 걸맞은 특성화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는 서울대의 무능력에 대해 먼저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그가 본질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선발이 문제인가, 대학의 교육력이 문제인가? 선발에 집중된 논의를 각급 학교의 교육력 제고를 고민하는 쪽으로 확대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을까?

김영삼 서울 대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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