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전쟁 일보직전

  • 입력 2004년 11월 8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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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가 지난 주말과 휴일에 발생한 정부군과 프랑스군의 교전과 이에 따른 주민 소요사태로 다수의 사상자를 내면서 혼란에 휩싸였다. 코트디부아르 정부는 유혈 사태가 발생하자 즉각 프랑스 정부에 유감을 표시하고 주민들에게 진정을 당부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자국 군인과 민간인의 피해가 발생하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 아래 추가로 병력을 파견키로 하는 등 사태가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급박했던 주말 교전=6일 시작된 혼란은 정부군의 오폭에서 비롯됐다. 이날 정부군은 프랑스군 기지에 폭격을 가해 평화유지군 소속 프랑스군 9명과 미국 민간인 1명이 숨졌다.

코트디부아르 정부는 반군 점령지역인 부아케를 겨냥하다 빚어진 오폭이라고 해명했지만 프랑스군은 코트디부아르 공군 기지에 대한 보복에 나서 러시아제 수호이 전투기 2대와 헬기 5대를 파괴했다.

이어 수도인 야무수크로에서는 7일까지 정부군과 프랑스군간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군 34명이 부상했다고 프랑스 정부는 밝혔다. 반면 코트디부아르는 민간인 30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뒤따른 소요 사태=교전으로 주민 피해가 발생하자 칼과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한 수천명이 아비장과 야무수크로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프랑스인을 찾아내기 위해 집집마다 수색했으며 외국인 주택을 약탈했다. 이 과정에서 마마두 쿨리발리 코트디부아르 의회 의장은 베트남의 대(對)프랑스 독립전쟁을 언급하며 “프랑스가 길고도 힘든 전쟁에 직면했다”고 말해 사태를 부추겼다.

사태가 확산되자 로랑 그바그보 대통령은 7일 TV에 출연해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호소했다. 프랑스 정부는 8일 “일단 급박한 상태는 진정됐지만 여전히 위급하고 긴장된 상태”라며 “프랑스인 100여명을 소개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왜 이런 일이=코트디부아르는 1946년 프랑스 해외 영토로 병합됐다가 1960년 독립했다. 우푸에부아니 대통령의 장기집권 체제를 유지하다 1999년 이후 잇따른 쿠데타로 혼란을 겪어왔다.

2002년 9월 발생한 군부 쿠데타는 내전으로 확산돼 프랑스의 지원으로 단일정부 구성을 위한 협정이 서명됐으나 곧 사문화됐다. 이후 프랑스군 4600명을 포함해 평화유지군 6000명이 정부군과 반군 지역의 중간 지대에 주둔하며 완충 역할을 해 왔다.

이번 사태는 프랑스가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서 견지해 온 중립을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부군이 반군 대신 프랑스군에 총구를 겨누는 형국이 된 데다 현지인의 반프랑스 정서도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1만5000여명의 프랑스 주민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

파리=금동근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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