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줌인]“난 도시농부… 내 식탁은 내가 지켜요”

입력 2004-06-24 17:04업데이트 2009-10-09 19:59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요즘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이 늘면서 호미를 들고 땅으로 나서는 사람들이 늘었다. 깨끗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여가 활용과 생태적 차원에서도 도시농업은 장점이 많다.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농약과 제초제,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산물이 우리 식탁의 화두가 된 지는 오래다. 풍요와 편리함, 경제성을 등지고 사람들은 비싸고 질 좋은 먹을거리를 찾아 나선다.

유기농산물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 식품을 못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기농산물을 사 먹는 것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수입농산물을 유기농산물로 속여 팔거나 유기농산물 함량을 부풀렸다가 적발되는 사례도 있기 때문. 여기에 최근 불량만두 사태는 식생활 전반에 대한 불신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래서 사람들은 땅으로 나가 손에 호미를 든다.

이들은 “믿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심고 기른 것뿐”이라고 말한다. 풀 한포기 나지 않는 아스팔트로 뒤덮인 회색 도시에 삶을 의지하면서도 집 주변 주말농장에서, 또는 자신의 집 베란다나 옥상에서 땀을 쏟으며 먹을거리를 자급자족한다.

이들은 도시농부(都市農夫)다.》

○ 소비에서 생산으로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원지동에 있는 한 주말농장.

권명광 홍익대 수석부총장(63·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이 뙤약볕에서 잡초를 뽑고 있다. 부인과 아들 내외는 다 자란 상추를 따고, 손자는 제 몸집만 한 물통으로 물을 주느라 분주하다.

온 가족이 일요일마다 주말농장에 나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이제 3년째. 농약이나 제초제를 쓰지 않기 때문에 잡초를 솎아주는 게 번거롭지만 그래도 흐뭇하기만 하다.

“손자에게 농약이 들어간 야채를 먹이는 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내 손으로 지어 먹이니 의심할 여지가 없죠.” 3평 남짓한 밭에서 나오는 채소류는 다섯 식구가 끼마다 먹는데도 늘 남아 이웃에 나눠준다. 농심(農心)이 아파트 벽을 허무는 것이다.

부인과 손자를 데리고 밭으로 나온 대기업 K사 고모 부회장(61·서울 강남구 개포동)은 올해 처음 농사란 걸 지어봤다. 부인의 몸이 약해지면서 ‘안전한 것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일.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면서 부인도 건강을 되찾았고, 임신한 며느리가 맘 놓고 야채를 먹는다. 주말 골프 약속도 마다한 채 손에 흙을 묻힌 지 6개월. “직접 씨 뿌리고 가꿔 먹자니 희열이 느껴진다”면서 땀과 땅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이 새삼 경이롭다고 한다.

권 부총장이나 고 부회장 같은 ‘초보 도시농부’들이 주말농장으로 몰리고 있다. 예전에는 현직에서 은퇴했거나 농사에 향수를 느끼는 노년층이 많았지만 요즘엔 깨끗한 먹을거리를 찾아 나선 젊은층이 더 많다. 서울시 농업기술센터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주말농장 참여자의 59%가 30∼40대, 41%가 50대 이상이다.

○ 내가 지은 것만 믿는다

주말농장 등을 통해 농사에 어느 정도 자신이 붙은 사람들은 ‘나만의 텃밭’을 찾아 나선다. 땅이 없어도 옥상이나 베란다에서 화분이나 스티로폼 상자만으로 각종 채소를 기른다.

주부 소혜순씨(37·경기 남양주시 지금동)는 농촌 출신인 남편이 유기농산물을 사먹는 것조차 못미더워하자 직접 농사에 나섰다. 소씨는 시멘트 바닥으로 된 좁은 마당에 이웃들이 내다버린 화분 20여개를 가져다 놓고 상추 쑥갓 케일 가지 토마토 고추를 키운다. 퇴비는 방앗간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이 전부다.

소씨의 남편은 텃밭에서 배추 무 열무 등 김장거리를 짓는다. 변비와 잦은 감기로 고생하던 아이들은 흙을 만지고, 정직하게 키운 음식 덕에 잔병치레를 모른다.

농사를 통한 식량자급 단계는 채소→쌀→육류 생산으로 발전한다. 유광규씨(60·서울 강서구 발산동)는 이 중 2단계까지 오른 도시농부다. 10년 전 퇴직 후 강서구 마곡동에서 농약 등을 사용해 벼와 채소농사를 짓다가 1998년 위암 선고를 받고서는 친환경농업으로 전환했다.

“담배나 술도 안 하는데 느닷없이 암에 걸린 것은 별 생각 없이 썼던 농약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저 역시 내 땅에서 직접 만들어낸 것이 아니면 믿지 않게 됐습니다.”

회색 도시 한켠의 자투리 땅에서, 아니면 베란다와 옥상에서 작은 규모나마 농사를 짓는 ‘도시 농부’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20일 비가 오는 가운데 경기 의정부에 있는 주말농장 텃밭을 돌보는 신석현씨(성북구 돈암동) 가족. 이종승기자

손으로 잡초를 뽑는 데 하루 8시간씩 꼬박 일주일이 걸리고, 같은 과정을 여름까지 세 번 이상 반복해야 한다. 퇴비는 음식물찌꺼기로 만든 것을 쓴다. 일반 화학비료보다 35배 비싸지만 내 입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깝지 않다. 오염된 빗물을 피하려고 야채는 비닐하우스에서 지하수로 수경재배한다.

도시농부들은 “나만 잘 먹고 잘살겠다”는 차원을 넘어 자발적 환경운동가가 되기도 한다. 땅과 물과 공기가 내 입으로 들어가는 먹을거리와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유씨는 동네에서 ‘환경감시반장’으로 통한다. 폐비닐이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렸다가는 유씨의 호된 꾸지람을 면치 못한다. 소씨는 남양주시에서 주부 10여명을 모아 ‘바른 먹을거리 소비활동’을 벌이고 있다.

○ 도시는 농업을 부른다

외국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도시농업을 법제화하고 권장, 육성한지 오래다. 안전하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자급하기 위해, 그리고 도시에 필수적인 녹지를 확보하고 도시화로 망가진 생태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독일은 1864년 라이프치히를 시작으로 전국에 ‘클라인가르텐(작은 정원)’이 보급돼 지금은 독일 인구 20명당 1명이 이를 이용한다. 우리의 주말농장에 해당하는 클라인가르텐은 자체 퇴비화설비까지 갖춘 친환경 도시농원이다.

영국에서는 임대텃밭이 인기다. 6평 정도의 텃밭을 임대받으려면 몇 년씩 기다려야 할 정도. 정부는 각 도시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임대텃밭을 확보하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일본도 시민농원이 전국 18만개에 이를 정도로 보편화돼 있다.

한국에서 도시농업 수요는 늘고 있지만 관련법과 관리주체가 없다보니 공유지 무단점유 등 마구잡이식 텃밭개발로 각 기초단체마다 골치다.

도시농업 관련활동은 민간에서 더 활발하다. 유기농 보급운동단체 흙살림은 지난달 농촌진흥청과 함께 쿠바식 도시농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쿠바 수도 아바나는 아스팔트 위에 흙을 깔고 벽돌로 담을 쌓아 유기농을 시작한지 10여년 만에 식량자급도 95%를 달성했다. 아바나의 도시농업은 90년대 초 소련의 경제지원이 끊기면서 생계 목적으로 시작됐지만 지금은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이 앞 다퉈 배워가고 있다.

전국귀농운동본부도 최근 도시인들에게 농사를 가르쳐 줄 수 있는 교육기관을 개설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안철환 출판기획실장(43)은 “도시의 자투리 공간을 녹화하는 것을 넘어 아스팔트 공간도 농지중심으로 개편하는 적극적 도시농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혁명이 도시에서 농업을 밀어 낸지 250년, 도시가 농업을 부르고 있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베란다 텃밭▼

동아일보 자료사진

집안 베란다에서 텃밭을 만들어 간단한 채소를 심어 보자. 농약을 치지 않고 화학비료도 칠 일이 없으니 이른바 유기농 채소다. 보온이나 배수가 좋은 화분이나 스티로폼 상자를 사용해 토마토, 고추, 상추, 쑥갓, 미나리, 시금치, 파 등을 심는다.

스티로폼 상자는 바닥에 물 빠짐용으로 두세 군데 구멍을 내고 망사 혹은 화분용 배수판을 얹는다. 황토와 모래를 6 대 4 정도 비율로 섞은 흙과 교외나 산에서 떠온 부엽토를 섞어 넣는다. 부엽토는 낙엽이나 나뭇가지가 썩어서 생긴 흙. 이때 흙과 부엽토는 7 대 3의 비율이 적당하다. 부엽토를 구하기 어려우면 흙, 톱밥, 마사토, 석회, 유기질비료 등이 섞인 채소용 배양토를 종묘상이나 원예점에서 구한다. 주변의 아무 밭에서 퍼온 흙은 물이 잘 빠지지 않고 나중에 진딧물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한다.

베란다 텃밭의 가장 큰 약점은 햇빛. 집안에서 햇빛을 받는 시간은 하루에 5∼6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햇빛을 충분히 쪼이지 않으면 줄기가 가늘고 열매가 잘 맺지 않는다. 물은 바닥에서 물이 배어나올 듯 말 듯할 정도로 준다.

나물 다듬고 남은 것이나 과일 껍질, 국물을 우려 낸 뼈, 쉰 음식 등을 비닐봉지에 모아 꼭 묶어 놓는다. 이것들이 썩어 물컹물컹해지면 모종삽으로 스티로폼 상자의 흙 속에 넣고 덮어주면 좋은 거름이 된다.

각종 채소의 씨앗은 종묘상에서 구할 수 있다. 또 모종을 살 수도 있는데 한 판에 보통 20∼30개의 모종을 판다.

베란다의 1평 남짓한 공간에 실내정원을 조성해주는 ‘하영그린’(www.hygreen.co.kr)이나 ‘지그린’(www.ggreen.co.kr) 같은 회사도 있다.

▼수경재배▼

사진제공 JS상사

수경재배는 채소를 흙이 아닌 물에서 기르는 것이다. 집에서는 상추, 쑥갓, 시금치, 미나리, 엔다이브 등의 잎채소와 콩나물, 무싹, 메밀싹 등 씨앗을 싹 틔워 먹는 새싹채소를 수경재배할 수 있다.

씨앗이 싹을 틔울 때까지는

물만 주면 되지만 싹이 트고 본잎이 나오면 양액을 타줘야 한다. 물은 수돗물을 하루 정도 받아두었다가 쓴다. 양액은 채소의 발육에 필요한 각종 영양분이 들어간 수경재배용 액체비료다. 종자를 파는 곳에서 양액도 판다.

보통 집에서 새싹채소 정도를 기르려면 유리컵이나 알루미늄 접시, 플라스틱 병 등을 활용하면 된다. 이때 매일 물높이를 확인해서 모자란 만큼은 보충해 줘야 한다. 오래되면 뿌리가 썩기 때문에 2, 3일에 1번, 여름철에는 매일 물을 갈아준다. 그러나 상추나 방울토마토, 애호박 등은 수경재배하려면 준비해야 할 도구와 제작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가정용 수경재배기를 구입하는 것이 편리하다.

JS상사(032-347-0826 www·1004k.com), 한아름채소밭(017-430-2957·www.chaesobat.co.kr), 자연미(032-677-4707·www.jayeunmi.com), 국제공업(02-891-5151·www.topgreen.co.kr) 등에서 구할 수 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주말농장▼

동아일보 자료사진

농사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말농장이 제격이다. 농장주가 이랑 파는 것 같이 힘든 일을 대신해 주고, 시기별 파종법과 수확법을 가르쳐 주는가 하면 씨와 모종, 각종 농기구도 비치하고 있기 때문에 기초지식이 없어도 시작할 수 있다.

주말농장을 고를 때는 우선 농장주가 농사경험이 풍부한지를 살펴야 한다. 초보자들의 경우 농장주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 집과 가까워야 부담 없이 자주 들러 작물을 보살필 수 있으므로 집에서 30분∼1시간 안으로 갈 수 있는 곳을 잡는다.

화장실, 세면장, 주차장,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막 등 편의시설을 갖춘 곳이 좋다. 농작물에 줄 물을 퍼올 수 있는 곳이 군데군데 많은지도 본다.

규모는 3∼5평부터 시작한다. 도시인들에게 5평이 넘는 농사는 무리다. 3평 정도의 밭에서도 한 식구가 먹고도 남는 갖가지 채소를 거둬갈 수 있다.

봄에는 상추 같은 채소류를 심고, 여름에는 들깨, 가을에는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는다.

농협중앙회가 파악하고 있는 주말농장은 전국 348개. 주말농장은 2월부터 분양을 시작하기 때문에 지금은 거의 자리가 찼다. 농협 홈페이지(nature.nonghyup.com)는 농장의 위치와 연락처, 이용료 등을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자신의 집에서 가까운 농장에 빈 자리가 있는지 알아보고, 당장은 아니어도 미리 예약을 해 두면 내년에 우선권을 얻을 수 있다.

이용료는 서울의 경우 연간 평당 1만5000∼2만원, 경기지역은 1만∼1만5000원 정도다. 주말농장이 쉽다고 해도 첫 해 중도 포기 비율이 50%에 가깝다. 특히 여름 장마철이 지나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을 때 ‘1년차 농부’들은 잡초를 솎아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시 농업기술센터(02-3462-5703∼6)와 농협중앙회 농촌복지홍보부(02-397-5622)에서 주말농장 이용법을 안내한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