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한풀이… 한국 공포영화 ‘무서운 변신’

  • 입력 2004년 6월 22일 18시 03분


코멘트
여름 시즌에 접어들면서 한국 공포영화들이 선전하고 있다.

18일 개봉된 김하늘 주연의 ‘령’은 개봉 사흘 만에 전국 관객 37만 5000명을 끌어들였다. 복안(復顔) 전문가의 이야기를 담은 송윤아 신현준 주연의 ‘페이스’는 11일 개봉 이후 열흘 동안 전국 48만 명의 관객을 기록했다. 반면 동시에 개봉된 할리우드 호러 영화 ‘데스티네이션2’는 같은 기간 13만 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완성도에 대한 평단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가 선전하는 이유는 뭘까. 한국관객은 한국 공포물을 편애하는 것일까. 한국관객들의 공포감성을 짚어봤다.

▽‘공포영화 인프라’의 형성=‘여고괴담’(1998년)의 성공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한국 공포영화는 ‘여고괴담2’(1999년)를 거쳐 최근까지 공포영화를 선호하는 관객들의 정서적 기반을 구축해왔다. 2002년 여름 개봉된 하지원 주연의 ‘폰’이 230만 명의 관객을 모은 데 이어, 지난해에는 ‘장화, 홍련’(관객 330만 명)과 ‘여고괴담3-여우계단’(170만 명)이 홈런 행진을 계속한 것.

원혼의 한(恨) 풀이를 다루는 한국 공포영화들은 할리우드 호러 영화와 차별화된다. 국내 공포물의 흥행호조와 관련, 여름시즌이면 국산 공포영화를 즐겨 찾는 ‘공포영화 인프라’가 어느 정도 형성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여기에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한국영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여름에는 한국 공포영화를 보겠다’는 기대심리도 뿌리를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하이틴 호러’의 정착=할리우드에서도 ‘스크림’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등 10대를 겨냥한 호러 영화들이 대세를 이룬 것처럼, 한국도 청소년들을 주 타깃 층으로 잡기 시작했다.

‘령’의 경우 신이, 빈(전혜빈), 남상미 등 청소년들이 자기 또래로 느끼는 조연들을 대거 등장시켜 심리적 동질감을 끌어내려 한 전략이 먹혀들었다는 것이 제작사측의 분석이다. ‘여고 괴담’ ‘장화, 홍련’과 마찬가지로 ‘령’에는 하이틴의 체감적 고민거리인 우정, 성적, 동성애적 코드, 왕따, 부모와의 갈등이 등장한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씨는 “10대들은 스타 출연 등 이벤트적 요소에 따라 영화를 선택하기 때문에 한국 공포영화에 대한 충성도가 그만큼 높다”고 분석했다. 10대 관객들은 영화를 본 뒤 인터넷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막판 반전에 대한 품평을 남기거나 찬반 토론을 벌이는데, 이는 또래 관객을 흡인하는 마케팅 효과를 가진다.

▽‘원혼(z魂) 선호’ 성향=공포영화는 다른 장르에 비해 관객이 속한 문화의 영향과 제약이 크다. ‘모르는 것’보다는 ‘익숙한 것’에서 더 공포를 느낀다는 얘기다. 국내관객들은 영화 ‘월하의 공동묘지’나 TV 시리즈 ‘전설의 고향’ 등을 통해 소복을 입고 구천을 떠도는 원혼에 대한 공포를 학습해 왔다. 그래서 계속 이와 유사한 ‘한(恨) 풀이’ 설정을 찾는다는 것.

이에 비해 자신이 당한 만큼 응징하는 ‘인과적 살인행각’을 담은 할리우드 호러 영화의 복수정서는 지나치게 합리적이다. 서양 호러영화가 살인마의 잔혹한 살해과정에 초점을 두는데 비해, 한국 공포영화는 귀신이 나타나는 타이밍으로 승부하는 것도 이런 정서적 차이에 기인한다.

영화평론가 이상용씨는 “한국관객은 원한, 저주와 같은 이물감 없는 정서에서 공포를 찾는 경향이 짙다”고 풀이했다. 그는 “그렇다고 국내 시장 기호에 맞추려고 뻔한 공포의 법칙과 반전만 답습한다면 한국 공포영화의 르네상스가 오래 지속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