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보상청구]日의원들 “가혹행위 이정도였었나…”

입력 2004-06-04 18:46수정 2009-10-0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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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1리 소록도(小鹿島).

‘천형’이라는 한센병(나병)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조용한 섬. 지난달 28일 일본인 변호사 18명이 이곳을 찾았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초 일본 정부에 의해 강제 격리돼 평생 힘든 노역을 해야 했던 소록도 노인들을 대리해 일본 정부에 대한 보상청구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 지난해 7월 이후 이번이 5번째 한국 나들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보상청구에 참여한 노인들은 초기 28명에서 현재 117명으로 늘어났다.

▽일본인 변호사들의 활동=이들은 2명씩 팀을 이뤄 노인들이 살고 있는 집을 돌아다니며 일제에 의해 강제 격리 수용된 경위와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했다.

도쿠다 야스유키(德田靖之·60) 변호사는 80대 노인 2명을 만났다. 오래된 옛 일을 묻고 답하는 일인 데다 통역을 거치다 보니 진척이 더뎠다. 2명에 대한 녹취록을 만드는 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노인 한 사람은 사타구니 바로 밑 왼쪽다리가 잘려나간 장애인. 도쿠다 변호사가 “한센병으로 다리를 잃었느냐”고 묻자 노인은 “일본인 직원들에게 심한 매질을 당했는데 치료를 받지 못해 다리를 절단했다”고 말했다. 일행은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낮 12시까지 한센병 노인 28명에 대한 녹취록을 만든 일본인 변호사들은 오후 3시 뭍으로 나갈 때까지 소록도 곳곳을 둘러봤다. 1930년대에 지어진 붉은 벽돌집의 시체해부실, 검시실, 단종대(斷種臺·남성불임수술대) 등….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있노라/장래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25세 젊은이가 불임수술을 당하며 썼다는 시(詩)가 적혀 있는 액자를 바라보면서 일본인 변호사들은 숙연해졌다. 원생끼리 결혼을 하면 부부 숙소에 들어가는 대신 남자가 불임수술을 받아야 했다. 환자가 죽으면 시신은 해부된 후 화장됐다.

김명호 자치회장(55)은 “한때 6000여명이 살던 이곳에 지금 702명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평균 연령 78세, 한 해 노환 사망자만 50∼60명. 그는 “일본 변호사들의 관심이 고맙지만, 우리 정부의 무관심에 씁쓸하다”고 말했다.

▽강우석 할아버지의 회고=1942년 5월 16일 17세에 이곳에 온 강우석씨(79)는 소록도 60년을 이렇게 회고했다.

“내가 발병하자 부모님은 경찰에 불려갔고, 집에 돌아온 부모님은 내게 소록도에 가고 싶은지를 물었다. 나는 병을 고치고 싶어서 소록도행을 선택했다. 그러나 소록도는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강제수용소였다. 원생들을 좁은 방에 10명씩 몰아넣었다. 작업도중 다리를 심하게 다쳤지만 작업을 빼주거나 치료해주지 않았고, 결국 1945년 다리를 절단했다. 수술 때 마취를 하지 않아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늘 배고파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밥을 짓기 위해서는 땔나무가 필요했지만, 섬에서는 나무를 자르지 못하게 했다. 낙엽만 주워도 벌로 ‘단종’수술을 받아야 했다. 강제노동이 힘들어 도망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잡히면 몽둥이로 죽도록 맞았다. 바다에 뛰어 들어 자살하는 사람도 많았다.”

1963년 강제 수용제도는 폐지됐지만 그는 몸도 상하고 마땅히 갈 곳도 없어 여기에 남았다. 작년에야 찾아온 두 명의 동생뿐이다. 부모님과 다른 형제들은 모두 세상을 떴다고 했다.

소록도=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

▼일본의 ‘한센병’ 보상과정▼

일본은 1907년 ‘나병 예방법’을 제정하고 한센병 환자를 강제 격리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 법은 식민지 한국에서도 그대로 적용돼 소록도에 강제수용시설이 만들어졌다. 일본에서 이 법은 1996년 폐지될 때까지 90년 가까이 시행됐다.

나병 예방법이 폐지된 뒤 일본 변호사 200여명은 1998년 ‘한센병 예방법 위헌 국가배상 변호인단’을 구성하고 이 법이 인간의 존엄 등을 규정한 일본 헌법에 위반된다며 국가배상 소송을 냈고 2001년 5월 승소했다.

판결 직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朗) 일본 총리는 항소 포기를 선언했고 ‘한센병 환자 보상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돼 1만여명의 환자와 유족들에게 환자 1인당 800만∼1400만엔씩 보상금이 지급됐다.

대한변호사협회 박영립(朴永立) 인권위원장은 “태평양전쟁에 대한 일본의 전후 배상 소송은 시효(時效)가 지났다는 이유로 대부분 기각됐는데, 한센병 환자 소송은 ‘특별법’ 제정으로 근거가 생겨 시효 문제에서 자유롭다”며 “승소하면 일제 군국주의의 피해에 대한 최초의 법적 보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센병이란▼

과거에 ‘문둥병’ ‘나병’으로 불리던 질환. 한센균에 의한 전염성 질환으로 유전과는 관련이 없다. 호흡기로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균이 있더라도 면역력이 약한 극히 소수의 사람에게만 발병한다. 병에 걸려도 2주∼2개월 약을 먹으면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는다.

우리나라엔 현재 1만8000여명의 한센병 환자가 등록돼 있지만 대부분 치료에 의해 한센균이 죽은 ‘음성 환자’여서 정상인과 다름없이 생활할 수 있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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