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웃는 시인’ 임영조가 보고싶다…추모문집 나와

  • 입력 2004년 5월 27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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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작고한 임영조 시인. 그는 “고목도 봄이 되면 세상에 신작을 발표하듯 새 잎을 낸다”고 시 ‘지천명’을 쓴 이후 10여년간 열정적인 시작 활동으로 네 권의 시집을 펴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작고한 임영조 시인. 그는 “고목도 봄이 되면 세상에 신작을 발표하듯 새 잎을 낸다”고 시 ‘지천명’을 쓴 이후 10여년간 열정적인 시작 활동으로 네 권의 시집을 펴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지리산 삼도봉 어떤 능선/한순간 퍼붓는 눈발 속에/우리는 뿔뿔이 흩어 졌지요/항상 걸음이 잽싼 당신은/시야에서 사라진 지 이미 오래/(…)/사는 일도 등산이라면/(당신은) 이미 정상에 올랐구려/길 찾아 헤매는 우리를 남겨놓고/당신은 이제 안식을 얻었구려.’(오세영, ‘정상에 오른 당신’ 중)

평범한 일상에서 깨끗한 정신의 미학을 길어 올렸던 임영조 시인(1943∼2003). 28일은 예순한 살의 길지 않은 삶을 살다간 그의 1주기가 되는 날이다. 평소 그와 함께 산을 오르던 시인 오세영씨 등이 추모문집 ‘귀로 웃는 시인 임영조’(천년의시작)를 펴냈다. 19명의 문인이 임 시인의 삶과 시에 대한 회상, 추모시와 조사를 썼다. 임 시인이 남긴 체험적 시론(詩論)과 수필도 함께 수록됐다.

오세영 이숭원 정채원 이영식 안정옥씨 등 이번 추모문집에 글을 쓴 문인들은 28일 오전 10시반경 경기 파주시 광탄면 ‘종로성당 나자렛 묘역’에 잠들어 있는 임 시인의 묘소를 찾아 그를 추모한다.

미당 서정주는 생전 임 시인이 잘 웃는 것을 보고 ‘귀로 웃는다’는 뜻의 ‘이소(耳笑)’라는 아호를 지어주었다. 임 시인은 1994년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 사당동에 방 한 칸을 얻어 ‘이소당(耳笑堂)’이라고 이름 지은 뒤 본격적으로 시업(詩業)에 나섰다. 시인 이영식씨가 이번 문집에 ‘세상에 귀로 웃는 집이 있겠는가/그러나 귀로 듣지 않고/귀로 웃는 사슴 한 마리 있었다’로 시작하는 추모시 ‘귀로 웃는 집’을 쓴 것도 이 같은 일 때문이다.

그는 인생의 후반기 10여년 동안 자기 시의 경지를 비약적으로 상승시켜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서라벌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특별상을 잇달아 받았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곧은 촛불 같은 시심은 그의 시세계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암 발병으로 임 시인은 유고작 ‘해동갑’을 남기고 타계했다. ‘해동갑’은 어떤 일을 해가 질 무렵까지 해나가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제 다 와 간다, 아내여/두어 마장만 더 가면 정동진/우리는 지금 일출을 보러 간다/(…)/아직도 가는 길이 낯설다 해도/여기가 어디냐고 묻지는 말자/(…)/무게도 달지 말고 계산도 말자/달아봤자 땀에 전 내복 같은 생/(…)/미처 못 가본 세상 정동진으로/세월의 열차 타고 가는 길이다/몰래 마실 가듯 해동갑하듯/거의 다 와간다, 아내여.’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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