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에서 깨끗한 정신의 미학을 길어 올렸던 임영조 시인(1943∼2003). 28일은 예순한 살의 길지 않은 삶을 살다간 그의 1주기가 되는 날이다. 평소 그와 함께 산을 오르던 시인 오세영씨 등이 추모문집 ‘귀로 웃는 시인 임영조’(천년의시작)를 펴냈다. 19명의 문인이 임 시인의 삶과 시에 대한 회상, 추모시와 조사를 썼다. 임 시인이 남긴 체험적 시론(詩論)과 수필도 함께 수록됐다.
오세영 이숭원 정채원 이영식 안정옥씨 등 이번 추모문집에 글을 쓴 문인들은 28일 오전 10시반경 경기 파주시 광탄면 ‘종로성당 나자렛 묘역’에 잠들어 있는 임 시인의 묘소를 찾아 그를 추모한다.
미당 서정주는 생전 임 시인이 잘 웃는 것을 보고 ‘귀로 웃는다’는 뜻의 ‘이소(耳笑)’라는 아호를 지어주었다. 임 시인은 1994년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 사당동에 방 한 칸을 얻어 ‘이소당(耳笑堂)’이라고 이름 지은 뒤 본격적으로 시업(詩業)에 나섰다. 시인 이영식씨가 이번 문집에 ‘세상에 귀로 웃는 집이 있겠는가/그러나 귀로 듣지 않고/귀로 웃는 사슴 한 마리 있었다’로 시작하는 추모시 ‘귀로 웃는 집’을 쓴 것도 이 같은 일 때문이다.
그는 인생의 후반기 10여년 동안 자기 시의 경지를 비약적으로 상승시켜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서라벌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특별상을 잇달아 받았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곧은 촛불 같은 시심은 그의 시세계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암 발병으로 임 시인은 유고작 ‘해동갑’을 남기고 타계했다. ‘해동갑’은 어떤 일을 해가 질 무렵까지 해나가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제 다 와 간다, 아내여/두어 마장만 더 가면 정동진/우리는 지금 일출을 보러 간다/(…)/아직도 가는 길이 낯설다 해도/여기가 어디냐고 묻지는 말자/(…)/무게도 달지 말고 계산도 말자/달아봤자 땀에 전 내복 같은 생/(…)/미처 못 가본 세상 정동진으로/세월의 열차 타고 가는 길이다/몰래 마실 가듯 해동갑하듯/거의 다 와간다, 아내여.’
권기태기자 kkt@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