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탈영병 미화가 ‘휴먼다큐’인가

동아일보 입력 2003-12-05 18:56수정 2009-10-10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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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가 ‘휴먼다큐-희로애락’의 한 코너에서 탈영 이등병의 이라크 파병 반대 주장을 일방적으로 소개한 것은 방송의 사회적 책임과 공영성을 망각한 처사다. 상명하복을 생명처럼 여겨야 할 현역 군인이 국가의 중대 현안에 대해 분별없는 발언을 쏟아내고, 공중파 방송이 ‘휴먼다큐’라는 명목으로 이를 걸러내지 않은 채 보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와,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해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장병들은 이 프로그램을 보며 허탈함을 넘어 분노와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다.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온 신병이 어머니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귀대하지 않은 채 자신의 22번째 생일 잔칫상 앞에서 유행가를 부르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버젓이 방영됐다.

여론 형성에 막중한 영향을 미치는 방송이 소수의 목소리를 담아낸다는 명분으로 결과적으로 한 탈영병의 치기 어린 행동을 두둔하고 미화한 셈이 아닌가.

해설자의 코멘트처럼 ‘군대 최하위 계급인 이등병이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정책변경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건군 이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 프로그램의 책임 프로듀서는 “영웅심이나 의식화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젊은이의 소박한 양심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이를 휴먼다큐 형식으로 다룬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시청한 네티즌들은 이 코너가 지향한다는 ‘드라이한 감동’ 대신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최근 들어 종교적 이유와 반전 등을 내세워 대체복무를 요구하며 군 입대를 기피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마당에 이런 프로그램은 자칫 병역기피 풍조와 탈영을 부추길 수도 있다. 방송위원회는 나라의 안보를 위해 자녀를 군대에 보내고, 힘든 여건 속에서 묵묵히 군 복무에 임하고 있는 장병들의 사기를 고려해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과 이를 사전에 걸러내지 못한 방송사 수뇌부에 마땅히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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