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김병주/기업인들이여 깨어나라

  • 입력 2003년 12월 4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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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는 옛말이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귀신도 아닌 자들에게 돈 뜯기고 뺨 맞고, 굴비처럼 줄줄이 법망에 얽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름 하여 기업인들이다. 귀신보다 힘센 자들은 누구인가. 이름 하여 정치인들이다.

사람이 왜 돈을 건네는가? 평화스러운 사회에서는 반대급부 때문이고, 폭력배가 설치는 사회에서는 신변보호 때문이다.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현실세계에서 정치인과 기업인의 관계는 공생관계이거나 포식자와 먹이 관계다. 돈이 정치를 쥐락펴락하는 금권정치, 정치가 기업 흥망을 좌지우지하는 정치폭력 사회, 모두 바람직하지 못하다.

▼편법 경영으로 약점 잡혀서야 ▼

기업인이 정치인의 손을 쉽사리 뿌리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과거의 탈세 등 약점을 잘 봐 달라는 뜻, 앞으로 이권 배분에서 선처를 바라는 뜻, 회사 돈을 개인 돈처럼 처리할 수 있다는 편의성 때문일 것이다.

만일 기업인이 성실 납세, 공정한 경쟁, 소액주주 이익을 고려한 투명경영에 철저했다면 ‘정치 조폭’들에게 쉽게 갈취당할 수가 없을 것이고, 만부득이 뜯겨도 피해액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 대기업 중에는 이런 기업이 없거나 ‘정치 조폭’의 행패가 지나친 모양이다. 요즘 대중매체에 보도된 사례 몇 가지를 살펴보자.

(1)현대엘리베이터의 경우, 유족을 앞세운 가신들이 ‘국민주’ 발행으로 경영권을 지키겠다고 한다. 이것은 불특정 다수의 소액주주를 지배주주가 농락하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국민기업’이라 치켜세우던 기아자동차의 지난날 수법의 재등장인가?

(2)LG카드의 대주주 가족들이 부도 위기 직전 주식을 처분해 손 털고 나갔다. 지주회사체제, 유한책임을 내세워 도마뱀이 꼬리 자르고 도망치듯 했다. 국내 윤리경영 최상위 기업의 모습이 이러한가?

(3)몇 년 전 ‘왕자의 난’으로 3분된 현대그룹의 경우에도 MH계열의 하이닉스 등 부실기업에 직간접으로 투입된 공적자금이 수십조원에 이른다. 꼬리를 자르고 도망친 도마뱀 몸통은 건재해 보이지만 기업윤리에 허점이 있지 않았는가. 기업지배구조 개편의 과도기를 틈탄 책임회피였다.

(4)정부의 편애를 받는 노조들 위세에 눌려 대들보 기업들이 항복문서를 쓰고 있다. 결과적으로 두산중공업, 현대자동차, 한진중공업 등이 부품·하청 중소기업의 수익을 압박하고 미래 기업 가치를 깎아내려 스스로 묘혈을 파고 있다.

(5)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을 통한 편법 상속 의혹을 받고 있는 삼성은 국내 최대이며 세계 유수의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는 그룹으로서 부끄러운 모습이다.

(6)부도 기업인들의 행적도 신뢰에 어긋난다. 프랑스에 귀화한 대우 회장의 거취는 그에게서 갈취한 정치인들의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것인가?

대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경련은 어떤가. 군사정변 후 정부와 재계의 연결고리로 출범한 조직으로서 초기의 긍정적 기능을 이미 소진하고 이제는 시대착오적 존재로 전락했다. 근래 전경련의 주임무는 정치자금 모금창구인 셈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평양을 찾아가 주석궁에 선물을 바치고 축배 마시도록 주선하는 것이 본분인가. 전경련이 시도 때도 없이 읊조리는 주제가는 금리 인하, 세금 감면, 규제 완화 등 한정돼 있다. 강성 노조에 대응하는 세력으로는 허약하다. 이 점에 있어서 대한상의가 당당하다.

▼이젠 떳떳함으로 승부해야 ▼

우리는 떳떳한 기업인의 출현을 고대한다. 기업인이 떳떳하면 반기업적 매체에 대해 광고 발주 권한을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 노동자는 단결로, 때로는 죽음으로써 힘을 얻는다. 왜 죽음을 각오하고 사업하는 떳떳한 기업인은 없는가? 형세 불리하면 공장 문에 빗장을 걸어라. 그것이 참교육이다. 한국에는 왜 오마하의 현자(賢者) 워런 버핏, MS의 빌 게이츠, GE의 제프리 이멜트가 없는가. 모델 기업인이 있어야 청소년에게 먹혀드는 시장경제 교육이 가능하다. 재벌 돈에 순치된 학자들을 동원해 봐야 약발이 받지 않는 세상이다. 기업은 돈보다 정신과 행태 변화로 승부해야 한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에 대항해 “한국의 기업인들이여, 깨어나라, 떳떳하라, 싸워라”를 외치고 싶다.

김병주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교수 pjkim@ccs.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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