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세러피]'매트릭스3' '매트릭스 쇼크'…운명을 생각한다

  • 입력 2003년 11월 27일 16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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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트릭스’ 시리즈가 던지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과 개인의 갈 길이 어떤 프로그램에 따라 미리 운명지어져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선택의 문제인가’ 하는 것이다. 현재 상영 중인 시리즈의 완결편 ‘매트릭스3:레볼루션’은 ‘소스(Source)’를 향해 가는 네오(키아누 리브스)의 행로를 따라 양쪽으로 진동하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간다.

이 영화가 던지는 운명론에 대한 논쟁은 사람의 행동과 감동을 조절하는 요소들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모두 ‘뇌’라는 ‘소스’, 즉 제어의 중심을 갖고 있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심지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모두 뇌의 작용이다. 뇌 안에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신경망들은 전기자극과 화학물질로 이루어진 데이터를 서로 전달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거기 반응하게 한다. 화학물질을 만드는 것은 뇌세포핵 안에 있는 유전자들이다. 인간의 행동과 마음은 유전자 코드와 뇌세포의 화학물질이라는 프로그램의 구현인 것이다.

모든 정신적인 질환이나 고통도 역시 화학물질의 불균형상태로 설명이 가능하다. 극단적으로 단순화해서 말하면 “사랑은 도파민 0.24mg과 세로토닌 0.03mg의 조합이야. 이별을 하고 나면 세로토닌이 0.008mg 이하로 떨어지지”라는 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매트릭스3:레볼루션’에서 기계군단 센티넬은 신경세포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고, 네오가 찾아간 기계도시의 중심에 있는 인간 에너지 수집 장치는 유전자를 이루는 DNA의 이중나선과 닮아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은 뇌가 결정해 주는 대로 따라가는 수동적인 존재에 불과한가. 네오가 기차역에서 깨어났을 때 만난 라마-칸드라는 프로그램이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의아해 하는 네오에게 “사랑은 단어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단어가 의미하는 관계입니다”하고 말한다.

사랑이 단어라는 말은 틀리지 않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감동하는 문학작품들도 모두 문자 혹은 단어의 조합일 뿐이다. 그것이 마음을 움직이는 까닭은 단어와 단어 사이의 관계가 각자에게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매트릭스’라는 영화 또한 빛과 소리의 조합에 불과하지만 이를 본 수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거울에 비춰 읽어내려 노력하는 것은, 그 단순한 조합체가 끝(이야기의 완결)과 살덩어리(스타일)와 균형(철학적 사유)이라는 새로운 ‘트리니티(삼위일체)’를 생성해냈기 때문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화학물질의 조합일 뿐인 감정이나 생각이나 말이 자신과 세상을 구원할 수도, 망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은 그것이 서로 연결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교환됨으로써 끊임없이 제3의 의미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생명체의 규칙이라는 매트릭스 안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뇌 안의 화학물질을 조절하는 유전자는 수백만 년 전부터 대를 이어 전달되어 온 것이며 결코 내가 내 의지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태내에서부터 노출되어 온 수많은 환경조건들, 그리고 내가 미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입력된 기억들이 ‘코드화’되어 뇌 안에 담겨 있고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네오가 자신의 선택과 믿음으로 소스의 중심에 도달하여 시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새로운 경험, 새로운 관계, 새로운 통찰, 그리고 사려 깊은 선택 같은 것들은 뇌 안의 물질과 프로그램을 재조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누군가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면? ‘감정의 의미를 만들어내고, 경험을 받아들이고, 선택을 하고, 의지를 발휘하는 과정 역시 뇌 안의 프로그램이 움직여야 가능한 것 아닌가?’

그럴지도 모른다. 아마 ‘애니 매트릭스’의 ‘제2의 르네상스’ 편이 보여준 무한반복의 만다라 이미지처럼, 대답 없이 돌고 도는 질문만이 그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정신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궁극적으로 뇌와 마음의 평화로운 공존을 꿈꾸지만, 그것이 그리 쉽지는 않아 보인다.

유희정 정신과 전문의경상대병원 hjyoomd@unitel.co.kr

▼곁들여 볼 비디오/DVD▼

○ 애니매트릭스

‘매트릭스’ 시리즈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애니매트릭스’를 봐야한다고 주장하는 팬들이 있을 정도이며 ‘매트릭스 1.5’로 불리기도 한다. ‘매트릭스’의 창조자인 워쇼스키 형제 감독이 기획을 맡고 일본 한국 미국의 애니메이션 작가들을 모아 만든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오시리스 최후의 비행’ 등 모두 9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 공각기동대

기계가 지배하는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일본 애니메이션. 서기 2029년,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기억과 의지를 조작하는 해커가 출현하고 사이보그 테러진압부대인 공각기동대와 전투를 벌인다. ‘매트릭스’ ‘제5원소’ 등이 이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감독 오시이 마모루.

○ 다크 시티

매일 밤 자정이 되면 거대한 도시가 정지되고 모든 인류는 수면상태로 빠져든다. 초고층 빌딩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세워진다. 잠에서 깨어난 한 사내는 자신이 왜 낯선 호텔에서 잠들어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진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거짓이라면?” “내가 ‘나’가 아니라면?” 등의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SF영화. 감독 알렉스 프로야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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