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점 탐험]11월23일 '싫으면 가지마!'

입력 2003-11-26 16:28수정 2009-09-28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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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점 원정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됐다. 오전 10시 맑은 하늘에 후두둑 떨어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항공편 등 이번 원정 전반을 전담하는 대행사인 ALE(Antartica logistics expedition) 사무실을 찾았다.

최종 계약 점검을 위한 것. 행정을 담당하는 강철원 대원과 촬영담당 이치상 대원과 기자가 첫 공식 미팅 자리에 참석했다.

이번 원정지원 총 책임자인 캐나다인 레이첼 셰퍼드(여·41)가 하나하나 내미는 각종 서류와 계약서에 싸인을 해나가며 한숨이 나왔다. 서울이라면 이런 계약서에 서명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일방적이다. 예를 들어 '악천후로 비행기가 뜰 수 없으면 그것으로 끝. 환불은 없으며 어떤 이의도 제기할 수 없다' '원정 중 사고로 구조 요청을 하더라도 구조대가 늦게 도착하는 것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등이다.

남극대륙이 문명과는 동떨어진 세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계약이었다. 남극에 대한 경험을 앞세워 돈벌이를 하겠다는 속셈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더욱 황당한 일은 탐험대가 남극점 원정도중 48시간 동안 대행사와 연락이 두절되면 무조건 구조 비행기가 뜬다는 사실. 남극에서 비행기를 한번 띄우는데 드는 비용은 무려 20만 달러(약 2억4000만원). 이 비용은 고스란히 원정대에 부과된다. 만일 위성전화 전원이라도 나가 연락을 취할 수 없게 되면 원정 포기는 물론 거금을 물어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는 얘기.

강철원 대원은 미팅 도중 아예 머리를 감싸고 앉아 있었다. '신체포기각서'와 마찬가지인 사망, 부상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제출하고 나서 대원들은 부리나케 란칠레항공사로 뛰어갔다. 벌써 도착했어야 할 원정대 장비와 식량을 실은 화물이 아직도 도착하지 않고 있기 때문.

강철원 대원은 3090㎞나 떨어진 칠레 수도 산티아고까지 날아가 확인해보겠다고 조바심을 냈지만 담당 직원은 '기다려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느긋하다. 낮잠인 씨에스타까지 즐기면서….

밤 11시가 넘어 원정대 화물이 항공편으로 푼타아레나스 세관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오자 대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마음 고생을 한 강철원 대원은 몸살이 나 드러눕고 말았다. 며칠전 장비담당 이현조 대원의 몸살에 이어 두 번째 환자 발생.

전창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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