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용교수 "서양에 단테가 있다면 한국엔 정도전이 있다"

입력 2003-11-25 18:06수정 2009-09-28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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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 정도전
“정도전의 정치사상은 관료 합리주의, 토지 공(公)개념, 분권론 등 근대적 사유의 맹아를 두루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는 근대 정치사상의 시조인 이탈리아의 정치 사상가 마키아벨리(1469∼1527)보다 한 세기 앞선 것입니다.”

최상용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논문 ‘정치가 정도전 연구’에서 삼봉 정도전(三峰 鄭道傳·1342∼1398)을 현대 정치학의 개념으로 분석하고 해석의 지평을 세계사로까지 확대해 그의 위상을 평가했다.

이 논문은 ‘삼봉 정도전 선생 기념사업회’(회장 한영우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주최로 29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리는 제1회 삼봉학 학술회의 ‘정치가 정도전의 재조명’에서 발표된다.

최 교수는 정도전 분석의 틀로 ‘가치 박탈’과 ‘가치 부여’란 정신분석학의 개념을 사용한다. 고려말 구 귀족 세력과의 대립으로 유배생활을 하는 등 상대적 박탈감을 가진 정도전이 이에 대한 보상수단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의 정치적 인격이 형성됐다는 것. 가치 박탈과 가치 부여란 부(富), 명예, 애정, 권력 등 사회적 가치를 잃거나 얻는 것을 말한다.

최 교수는 “17세기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홉스가 역사를 ‘중산층의 반역의 역사’라고 했듯이 정도전 또한 중소지주인 중간층 출신의 지도자로 개인적 가치 박탈의 체험이 고려말 당시 시대 상황과 상호작용하며 변혁적 정치가로서의 입지를 쌓아나가게 됐다”고 해석했다.

최 교수는 정도전의 정치사상에서 근대적 정치 이념의 단초를 볼 수 있다는 주장을 과감하게 제기했다. 즉 △군신(君臣) 또는 부자(父子) 관계처럼 상하 개념을 전제로 하는 ‘주자학적 질서관’에서 막스 베버의 관료 합리주의 △토지사유제를 비판한 ‘공전(公田)론’에서 근현대의 토지 공개념 △재상 중심의 강력한 관료제인 ‘재상론’에서 분권론과 내각제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최 교수는 특히 중세적 가치의 교황당에 대항해 황제당 편에 서서 싸우며 근세의 여명을 내다보았던 동시대 이탈리아의 시인 겸 정치가 단테(1265∼1321)와 정도전을 비교하며 “이탈리아의 단테와 조선의 정도전이 조국의 위기상황에 대응하며 내놓은 처방은 각각 서양과 동양의 근세로 이어질 수 있는 보편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그 동시대성을 강조했다. 이는 본격적인 의미의 근세 정치사상가로 꼽히는 마키아벨리에 1세기 앞서는 것.

한편 정도전 연구의 저변을 확대하고 세계화하기 위해 ‘삼봉학’이란 명칭으로 처음 개최되는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이 밖에도 △‘고려말 정국에서 정도전의 정치적 위상’(이익주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정도전의 공요(攻遼) 계획 재검토’(박홍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정치가 정도전의 자아 정체성 위기와 극복과정’(문철영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 등이 발표된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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